폐장 분위기로 끝난 ‘마지막 드래프트’

축구계는 드래프트 폐지와 함께 자유계약제의 연착륙을 위해 아이디어를 모으고 있다. 마지막 드래프트의 흥행 실패처럼 프로축구 ‘취업난’이 가속화되는 것을 막는 게 첫 목표다.

“패스합니다.” “패스할게요.” 2015 프로축구 신인선수 선발 드래프트가 열린 지난 12월 9일 서울월드컵경기장 리셉션홀. 2006년 이후 9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마지막 드래프트 현장에는 찬바람만 쌩쌩 불었다. 프로축구연맹은 마지막 드래프트의 상징성을 감안해 장소를 아산연구원에서 서울월드컵경기장으로 옮기며 분위기를 띄우려 노력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각 구단들의 감독들이 눈이 빠져라 드래프트 참가자 명단을 체크하며 이름을 불렀던 예년과 달리 올해는 억지로 참석한 막내급 직원들의 포기한다는 목소리만 메아리를 쳤다. 드래프트 현장 뒤편에서 두 손을 모아쥐고 기다리던 대학 감독들과 학부모들의 얼굴은 점차 어두워져 갔다.

이날 드래프트에는 526명이 프로선수의 꿈을 안고 지원했다. 그러나 찬바람이 쌩쌩 부는 분위기대로 그 꿈을 이룬 이는 84명이 전부였다. 취업률로 따진다면 16%. 그것도 각 팀당 3명씩 보장되는 자유선발(25명)과 신생팀 서울 이랜드의 우선지명(11명)을 빼면 드래프트 현장에서 선발된 선수는 48명(9%)으로 줄어든다. 지난해 드래프트에서만 110명(23.1%)이 선발된 것과 비교한다면 초라한 결과다. 한웅수 연맹 사무총장은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지만, 생각보다 구단들이 선수를 뽑지 않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12월 9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5 프로축구 신인선수 선발 드래프트에서 자유선발 선수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526명 중 현장에선 48명만 뽑혀
드래프트 흥행 실패는 어느 정도 예고된 결과였다. 연맹이 지난해 연봉 공개를 단행하면서 각 구단들은 살림살이를 줄이는 데 힘쓰고 있다. 이런 흐름에 따라 선수단 규모도 한층 작아졌다. 흔히 빅팀이라 불리는 수원 삼성이나 FC서울, 울산 현대조차 30여명 초반이 전부다. 매년 뽑는 신인 숫자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여기에 각 구단이 유망주를 선점해 뽑는 자유계약과 함께 구단별 산하 유스클럽에서 키운 선수들을 우선 지명할 수 있으니 굳이 드래프트에 나온 선수들에 목을 맬 이유가 없었다. 뽑을 선수는 이미 다 뽑았다는 얘기다.

드래프트에 나온 선수들을 뽑자면 비싼 돈을 지불해야 하는 구조도 흥행 실패에 영향을 미쳤다. 드래프트 1순위는 3년 계약에 연봉 5000만원, 2순위는 4400만원 등 지명 순위에 따라 연봉 계약을 해야 하는데, 이는 자유계약선수에게 3600만원(계약금 미지급 2000만~3600만원)만 주면 되는 현 규정과 비교해 비효율적이다. 이번 드래프트에서 어느 정도 연봉을 보장하는 1~6순위 선발 선수가 22명에 불과한 반면 연봉 2000만원만 지불하면 되는 번외지명으로 26명이 뽑힌 것이 그 증거다. 이날 드래프트에 지원한 제자들을 응원하러 참석한 울산대 유상철 감독은 “구단들이 당장 성적을 내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신인들을 뽑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프로축구(MLS)에서 드래프트를 경험했던 마틴 레니 이랜드 감독도 “우리는 창단 팀이라 많은 선수가 필요해 적극적으로 드래프트에 나섰지만 다른 팀들은 입장이 다를 것”이라며 “미국에선 드래프트를 화려한 행사처럼 치르는데, 한국은 마지막이라 그런지 너무 분위기가 가라앉았다”고 아쉬움을 내비쳤다.

내년부터는 전면 자유계약제가 도입되니 굳이 올해 신인선수를 무리해서 뽑을 이유가 없었다. 지금껏 연맹은 축구 생태계 보호를 명분으로 드래프트를 고수했지만 축구계가 ‘직업 선택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 15조를 이유로 자유계약제 부활을 요구하면서 입장을 바꿨다. 당장 내년부터 K리그 23개 구단(1부리그 12개·2부리그 11개)은 중·고교와 대학교 현장으로 스카우트를 파견해 선수를 발굴할 수 있게 된다. 과거 FC서울이 중학교에 재학 중이던 기성용(25·스완지시티)과 이청용(26·볼턴 원더러스) 등을 키워낸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발빠른 구단들은 이미 자유계약제 재도입을 예고한 3년 전부터 재능 있는 선수들을 선점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도 했다.

드래프트 폐지에 따라 기존 유스클럽 우선지명 시스템도 중용될 전망이다. 각 구단에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미리 눈여겨본 선수들을 프로로 키워내는 것이다. 지난해 K리그 클래식과 FA컵 2관왕을 이뤄낸 포항 스틸러스는 포철동초·포철중·포철고로 이어지는 유스클럽 시스템에서 키워낸 선수 숫자가 전체 선수단(33명)의 절반에 육박한다. 특히 내년부터는 K리그 1·2부리그 전체에 구단별로 경기에 뛸 수 있는 인원수를 25명으로 제한하는 ‘25인 로스터’가 도입돼 여기서 예외 적용을 받는 프로산하 유스클럽 육성 선수의 가치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올해 창단을 선언한 서울 이랜드가 시도한 공개 테스트도 더욱 빈번해질 것으로 보인다. 당장 드래프트에서 기회를 잡지 못한 선수들을 포함해 실업축구인 내셔널리그와 아마추어 K3 챌린저스리그에서 검증된 선수들을 위한 재도전 무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내년부터 자유계약제, 선수선발 줄 듯
축구계는 드래프트 폐지와 함께 자유계약제의 연착륙을 위해 아이디어를 모으고 있다. 연맹도 내년 1월부터 각 구단들과 함께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해 대책 마련에 나설 계획이다. 마지막 드래프트의 흥행 실패처럼 프로축구 ‘취업난’이 가속화되는 것을 막는 게 첫 목표다. 더욱이 내년부터는 구단과 계약한 선수라도 25인 로스터에 포함되지 않으면 경기를 뛸 수 없어 개선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신명준 연맹 차장은 “아무래도 자유계약제를 도입하면 부족한 포지션만 선발하게 돼 선수 선발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구단과 선수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선에서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자유계약제 아래 발생할 수밖에 없는 각종 비리나 뒷돈 거래를 차단하는 것도 중요하다. 옛 자유계약제 시절에는 수도권 ㄱ구단이 한 대학에서 선수를 데려오는 과정에서 3억원의 뒷돈을 지급했다가 경찰 수사를 받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한웅수 연맹 사무총장은 “모든 제도가 완벽할 수는 없다”며 “자유계약제에서 선수들을 데려오는 경쟁이 붙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불법적인 행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민국 경향신문 스포츠부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