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 야구 필승카드는 ‘1+1’

류중일 감독은 준결승과 결승에서 양현종, 김광현 카드를 맞춤형으로 쓰겠다는 복안이지만, 이 두 카드를 대만전에 이어 결승전에 ‘한번에’ 쓰는 방법도 있다.

야구가 아시안게임에서 맨 처음 정식 종목이 된 것은 1994년 히로시마 대회 때였다. 당시 한국 대표팀은 대학 선수들로 구성됐다. ‘황금세대’라 불렸던 92학번들이 주축이었다. 조성민, 임선동, 차명주 등 92학번을 중심으로 앞뒤 학번인 문동환, 손민한 등이 마운드를 이끌었다. 포수에 최기문·진갑용, 내야수에 김종국·홍원기·백재호·김재걸 등이 포함됐다. 외야수에는 ‘리틀 쿠바’라 불렸던 박재홍을 중심으로 심재학·마해영·조경환 등이 힘을 보탰다.

결승 상대는 역시 일본이었다. 0-2로 뒤진 5회말 3점을 따내며 역전에 성공했지만 이후 실책 등이 나오면서 결국 5-6으로 역전패했다. 아쉬운 은메달이었다.

2010년 11월 19일 중국 광저우 아오티 야구장에서 열린 한국과 대만의 광저우 아시안게임 야구 결승전에서 한국 대표팀이 승리를 확정짓자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11번째 드림팀, 3명 빼고 모두 20대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는 프로 선수들의 출전이 허용되면서 이른바 ‘드림팀’이 출격한다. 프로팀에서 뛰고 있던 임창용(해태), 조인성(LG), 진갑용(두산), 이병규(LG), 김동주(두산) 등이 포함됐지만 정작 주목받은 선수들은 메이저리그에서 뛰던 ‘해외파’ 선수들이었다. 박찬호(LA 다저스)를 필두로 서재응(뉴욕 메츠)이 포함됐다. 나중에 애리조나로 떠나게 되는 김병현 역시 이때 대표팀에서 뛰었다. 정작 경기 결과는 싱거웠다.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박찬호는 7이닝 1실점으로 완투승을 따냈다. 7이닝만으로 완투승이 된 것은 결승에서 일본에 13-1로 콜드게임 승리를 거뒀기 때문이다.

이후 한국 야구 대표팀의 역사는 ‘드림팀’의 역사였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과 2002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이 이어졌다. ‘영광’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2003년 삿포로에서 아시아선수권 겸 2004 아테네 올림픽 예선이 열렸으나 결국 대만에 패하면서 올림픽 출전이 좌절됐다. 2006년 WBC에서는 4강이라는 기적을 일궈냈지만 그해 말 열린 카타르 도하 아시안게임에서는 또다시 3위에 그치면서 ‘도하 참사’라는 오명을 들어야 했다.

그리고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 또다시 ‘드림팀’이 꾸려졌다. 차례대로 숫자를 붙이면 이번 ‘드림팀’은 11번째 대표팀이다. 류중일 감독이 이끄는 24명의 대표팀은 9월 15일부터 소집훈련을 시작하고 22일 태국과의 조별 예선 첫 경기를 시작으로 금메달을 노리는 여정을 시작한다.

대표팀은 대만, 태국, 홍콩 등과 함께 B조에 포함됐다. A조에는 일본, 중국, 몽골, 파키스탄이 포함됐다. 각 조 1·2위 팀이 크로스 토너먼트를 통해 결승 진출 팀을 가린다. 대표팀은 22일 태국전을 시작으로 24일 대만전, 25일 홍콩전을 치른다. 준결승은 27일, 결승전은 28일이다.

이번 대표팀의 가장 큰 특징은 ‘세대교체’다. 대표팀 24명 중 30세가 넘는 선수는 임창용과 안지만(이상 삼성) 봉중근(LG) 등 3명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20대 선수로 구성됐다. 병역혜택을 기대하는 선수의 숫자도 13명으로 전체의 절반이 넘는다.

홈에서 열리는 데다 프로야구가 시즌을 중단해가면서까지 치르는 대회다. 금메달 가능성이 높지만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국제대회 때마다 ‘복병’ 역할을 하는 대만 대표팀에는 미국 마이너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 대거 포함됐다. 메이저리그 밀워키에서 올 시즌 13경기에 등판한 기록이 있는 왕웨이청을 비롯해 장샤오칭(클리블랜드), 정런허(시카고 컵스) 등 선수들이 대만 대표팀에 합류할 가능성이 높다. 야구는 원래 ‘시즌’에 적합한 종목이어서 ‘단판 승부’로 펼쳐지는 토너먼트에서는 단순한 전력 차이 외에도 여러 가지 변수가 따른다.

일본 대표팀 역시 프로 선수들이 포함돼 있지 않더라도 만만치 않다. 지난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때도 실업리그라고 할 수 있는 사회인야구 주축 선수들에게 뼈아픈 끝내기 패배를 당한 바 있다. 일본 실업리그는 프로야구 드래프트에서 좋은 조건을 받기 위해 프로 대신 잠시 거쳐가는 곳이라는 의미도 지닌다.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끝내기 홈런을 터뜨린 쵸노 히사요시는 이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해 신인왕을 따낸 것은 물론 요미우리의 간판타자로 성장했다.

예선 1위면 두 투수는 준결승서 휴식
전문가들은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간다’는 신중한 접근을 강조한다. 매 경기 확실한 승부수로 경기를 풀어야 한다는 뜻이다. 박병호-강정호가 버티는 중심타선의 힘은 믿을 만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나성범-손아섭 등이 버티는 좌타라인도 만만치 않다. 전체적으로 타격에 있어서는 파워와 빠르기를 함께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돌다리를 두드려야 할’ 부분은 역시 마운드다.

리그 전체적으로 ‘에이스’급 투수가 드문 가운데 대표팀 좌완 에이스라고 할 수 있는 김광현(SK)과 양현종(KIA)에게 기대를 걸어야 한다. 이 둘이 흔들릴 경우 불펜 투수들의 조기 투입으로 버텨야 하는데, 이 또한 마음 푹 놓고 경기를 지켜볼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류중일 감독의 마운드 운영이 더욱 신중해야 하는 이유다.

아시안게임 야구 대표팀 마운드 운영의 열쇠는 ‘일정’에 있다. 허구연 MBC 해설위원은 “일정을 잘 활용해 마운드 운영에 선택과 집중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표팀이 조별예선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상대는 역시 대만이다. 대만과 24일 경기를 치르고 난 뒤 27일 준결승, 28일 결승전을 치른다. 일단 류중일 감독은 준결승과 결승에서 양현종, 김광현 카드를 맞춤형으로 쓰겠다는 복안이지만, 허 위원이 말한 대로 이 두 카드를 ‘한번에’ 쓰는 방법도 있다. 류 감독이 한국시리즈 등 중요한 경기에서 주로 쓰는 ‘1+1’ 전략이다. 선발투수 2명을 이어 붙이는 카드다.

조 편성에 따라 A조 2위는 중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 허구연 위원은 “일단 예선 대만전에서 필승카드를 사용해 조 1위를 굳히게 되면 준결승 상대는 쉬워진다. 필승카드를 다시 결승전에 쏟아부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광현+양현종 또는 양현종+김광현 카드로 대만전을 승리하게 되면 다시 이 카드를 결승전에 투입할 수 있다. 일반적인 4일 휴식 뒤 등판이 아니라 3일 휴식 뒤 등판이지만 투구수를 조절하면 충분히 가능한 카드다. 한국시리즈나 월드시리즈 같은 경기에서 3일 휴식 뒤 등판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2007년 11월 대만에서 열린 베이징 올림픽 1차 예선에서 김경문 감독은 류현진, 박찬호를 이어던지게 하는 전략으로 대만을 제압했다.

다만, 에이스급 투수의 혹시 모를 ‘혹사’에 따른 기존 구단의 ‘불만’이 나올 수 있다. KIA로서는 병역미필 선수인 나지완이 대표팀에 합류했지만 SK는 미필 선수가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게다가 SK는 아시안게임 이후에도 치열한 ‘4강싸움’을 펼쳐야 하는 상황이다. 류중일 감독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하지만 리그를 중단한 채 치르는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기 위한 최선의 전략이라면 충분히 도전해볼 만하다. 단지 남은 시즌 팀의 성적이 문제가 아니라 프로야구 산업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경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용균 경향신문 스포츠부 기자 noda@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