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땅 네팔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외국인 노동자로 한국 다녀간 셰르파마을 니마에게서 온 편지

정희정은 니마와 카카오톡 친구다. 이 글은 SNS를 통해 니마와 주고 받은 대화와 사진을 재구성해 작성했다.<편집자주>

저는 네팔에 사는 니마 겔젠 셰르파(Ngima geljen sherpa)라고 합니다. 나이는 29세, 전문 산악 가이드이고, 에베레스트 정상에 6번 다녀왔습니다. 제 성 ‘셰르파’는 티베트어로 ‘동쪽 사람들’을 뜻합니다. 티베트 동부에서 500년 전쯤 네팔 히말라야 산기슭으로 이주해 사는 고산족의 이름이며, 이제는 ‘히말라야 등반을 돕는 현지인’을 일컫는 보통명사로도 쓰이고 있습니다.

제게는 산을 타면서 사귄 한국인 친구들이 많습니다. 박영석 대장님과도 특별한 인연이 있었지요. 2011년, 박영석 대장은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 가시기 전에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니마, 이번에 안나푸르나 다녀온 다음엔 로체(Lhotse·8501m) 남벽을 같이 오르자.”

그러나 박 대장은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등반 도중 일행과 함께 실종되고 말았습니다. 저는 현장에 급파된 수색대의 일원으로 박 대장을 찾기 위해 힘썼지만, 실패했습니다. 가슴 아픈 일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즐겨찾던 사찰도 지진의 피해를 입어 무너져버렸다. / 니마 제공

실은 산에서 친구들을 많이 잃었습니다. 기후변화 때문에 만년설이 녹아내려 눈사태와 산사태가 더 잦아졌고, 셰르파들이 목숨을 잃는 사고도 자주 발생합니다. 바룬체 봉(Baruntse·7220m)을 오르다 벼랑 끝에 처마 모양으로 얼어붙은 눈더미인 코니스(cornice)가 떨어져 내려 친구 두 명을 저 세상으로 보내야 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2010년 10월 23일, 사고가 일어난 날짜도 지금껏 잊을 수가 없고, 그들을 생각하면 너무 슬픕니다.

실종된 박영석 대장 수색대로 활동
가족은 제게 위험한 등반을 그만두라고 뜯어말렸습니다. 저는 젊고 모험을 좋아하기 때문에 산을 더 타고 싶었지만, 어머니의 눈물 어린 호소 때문에 산악 가이드를 그만두고 한국으로 일하러 갔습니다. ‘외국인 노동자’가 되어 한국에서 3년 동안 일했습니다. 여러 공장을 옮겨다니며 농산물 가공, 콩나물통 운반 등의 일을 했는데, 산을 타는 것보다 몸이 더 힘들었습니다.

3년간의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지난봄, 네팔로 돌아왔습니다. 다시 산을 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찾아온 강진 때문에 제 삶의 계획은 온통 뒤죽박죽이 되어버렸습니다. 지난 4월 25일 규모 7.9의 강진에 이어 5월 12일 규모 7.3의 강진이 또다시 발생하면서 제 나라와 고향은 처참하게 무너져버렸습니다.

제 고향 차우리카르카(chaurikharka)는 에베레스트로 가는 중요한 관문입니다. 에베레스트 트레킹의 출발지점인 루클라(Lukla)에서 비행기로는 35분 거리이며, 걸으면 2시간 정도 걸리는 곳입니다. 고향 마을에는 집이 400채 정도 있는데 절반이 부서졌습니다. 종교시설 3곳, 학교 4곳도 다 무너졌습니다.

니마의 고향, 차우리크할카(chaurikharka) 마을의 집과 학교 등 대부분의 건물이 이처럼 무너져버렸다. / 니마 제공

고향 마을은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식당과 숙소를 운영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 형도 역시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번 지진으로 집과 레스토랑이 모두 무너져버렸습니다.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어졌으니 생계가 막막해졌습니다.

곧 6월입니다. 네팔에서는 6월이면 우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지진으로 이미 산사태가 많이 발생했고, 비가 오면 더 많은 산사태가 일어날 겁니다. 바위와 토사가 흘러내리고 강의 물길을 막으면서 대형 홍수가 날 가능성도 큽니다. 이미 기후변화로 히말라야산맥 빙하의 해빙 속도가 빨라진 상황이어서 위험성이 더욱 커졌다고 합니다. 빙하호수의 둑이 터지면서 일어나는 ‘빙하호 홍수(GLOF)’도 무섭습니다. 빙하가 녹으면서 해발 4000m 이상의 고지 여기저기에 호수가 만들어졌는데, 그 호수의 물이 점점 불어나게 되면 언제 넘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빙하호가 범람하면 급경사를 타고 내려오면서 점점 물살이 강해질 것이고, 모든 것을 쓸어가 버릴지 모릅니다.

한국에 있으면서 부러운 것 중 하나가 에너지 문제였습니다. 한국에서는 전국 어디서나 전기 걱정이 없더군요. 화려한 밤풍경을 보면서, 뜨끈뜨끈한 찜질방에 가서 시간을 보내면서 부럽기도 하고 놀라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네팔은 수도인 카트만두와 관광지를 제외하고 지역에서는 제한 송전을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네팔 사람들은 늘 정전 시간표를 필수적으로 가지고 다닙니다. 카트만두는 그나마 전력사정이 좋지만, 최근 지진 이후에는 카트만두도 정전이 되었습니다.

고향으로 가는 길목, 심한 산사태로 나무들은 뿌리째 뽑혔고 암석들이 굴러 떨어져 길이 막혀버렸다. / 니마 제공

태양광 충전기, 구호품으로 유용
햇빛으로 휴대폰과 소형 가전기기를 충전할 수 있는 휴대용 충전기가 있다면, 정전이 되어도 걱정이 없을 것입니다. 에베레스트를 등정하려면 두 달 내내 산에서 지내야 합니다. 태양광 충전기는 충전할 곳 없는 산에서도 아주 유용한 물건입니다. 어쩌면 생명을 구하는 긴급 구호 연락에 필요한 전기를 만들어줄 수도 있을 겁니다.

몇 년 전 한국인 친구로부터 선물받은 태양광 충전기를 유용하게 잘 사용했는데, 이제는 망가져서 작동이 안 됩니다. 네팔 사람들을 돕고 싶다면 가장 필요한 텐트나 옷가지 외에 태양광 충전기와 같은 선물도 좋을 것입니다. 저도 다시 꼭 갖고 싶으니까요.

기후변화의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지만 그 피해를 가장 많이 받고 있는 가난한 나라, 지진 때문에 그나마 일궈놓은 기반도 송두리째 사라져버린 네팔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한국인 친구들에게 무너진 고향 마을 재건을 위해 도와달라고 부탁했더니 모금을 해서 보내줬습니다. 고맙습니다. 네팔을 돕기 위해 모금과 구호활동을 벌이고 있는 많은 한국인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엄홍길 대장님은 네팔에 셰르파의 자녀들을 위한 학교를 짓는 등 네팔을 돕고 계신데, 요즘은 지진 피해를 입은 지역을 다니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저희 고향 마을에도 좀 찾아와주세요. 나마스테.

<정희정 서울시 에너지시민협력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