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계 남북교류 앞장서는 원택 스님

원택 스님은 제3차 남북정상회담의 특별수행단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그는 “이미 16년 전 두 차례 평양을 방문한 바 있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의 평양은 전혀 다른 도시”라고 설명한다.

9월 19일 평양 옥류관에서 원택 스님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13일 조계사에서 열린 제36대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의 취임식에 눈에 띄는 순서가 있었다. 북한 조선불교도연맹(이하 조불련) 강수린 위원장의 축사를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이하 민추본) 본부장 원택 스님이 대독했다. “민족의 화해 단합과 통일의 이정표인 판문점 선언과 ‘9월 평양 공동선언’의 이행에 용맹정진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라는 대목은 종교 교류 이전에 남북의 정치적 합의 이행이 선행돼야 한다는 북측의 선언적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신임 총무원장 원행 스님은 이미 종교계를 중심으로 남북 교류·협력에 나서겠다는 점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원택 스님은 북의 축사가 인편으로 직접 전달됐다고 설명했다. “지난 11월 1일 중국 선양에서 강수린 위원장을 직접 만났다. 3시간 정도 함께 식사하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아직은 서로 간의 신뢰를 쌓는 과정이라 남과 북이 전쟁 없이 평화를 쌓아 가는 데 불교계도 협력하고 노력하자는 원론적인 대화가 오갔다”고 당시의 분위기를 전했다. 원택 스님은 강 위원장이 상당히 정제되고 주제 외의 이야기는 절제하는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아직은 흉금을 터놓을 만큼 가까워지지 못했다는 방증일 것이다.

그러나 강 위원장의 축사 전달은 의례적인 만남에서 한 발자국 더 나간 것으로 보인다. 당시 북측은 조계종뿐 아니라 천태종, 진각종, 관음종, 원불교 측 관계자들과도 시차를 두고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불교계 남북교류사업에서 북측이 다양한 남쪽 상대들과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다각도로 시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 원택 스님은 “교류를 앞두고 각 단체들마다 경쟁적인 분위기가 될 수 있다. 북의 일사불란한 자세에 비해 자칫하면 우왕좌왕할까 두렵다”고 걱정했다.

조불련 위원장의 축사 대독

원택 스님이 민추본 본부장을 맡은 것은 지난 3월 초.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기 직전이었다. 임기는 2년으로 그동안 세 차례의 정상회담이 있었다. 한때 전쟁위기설까지 퍼졌던 한반도 분위기에 비해 평화를 위한 보이지 않는 노력은 계속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원택 스님은 지난 9월 8일부터 평양에서 열렸던 제3차 남북정상회담의 특별수행단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이미 16년 전 두 차례 평양을 방문한 바 있었다. 당시 윤이상 악단 악기 지원사업 때문에 방문했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의 평양은 전혀 다른 도시”라고 설명한다. 특히 여명거리와 과학자거리의 고층아파트들은 북의 변화를 실감케 했다. 평양에 대한 인상 중 달라진 점을 능라도 경기장의 공연모습에서도 찾았다. “전에 본 ‘아리랑’ 공연은 전투적이고 상무적이었다. 이번 ‘빛나는 조국’은 통일과 평화 발전을 지향하는 내용이라 비교가 됐다. 특히 1200여명의 여고생들이 나와 가야금을 20여분 합주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분명히 달라지지 않은 점도 있었다고 지적한다. “16년 전이나 지금이나 북 주민에 대한 자유로운 접촉은 금지됐다. 아직은 만남 자체가 통제된 분위기다”라며 이런 분위기가 달라질 때 진정한 변화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다.

평양에서 전달된 보도사진 중 김정은 위원장과 원택 스님이 악수하는 모습이 세간의 화제가 된 바 있다. “방북 이틀째 되는 날 목련관 만찬장 입구 쪽에 자리가 있었다. 김 위원장이 들어오고 문재인 대통령이 김희중 대주교를 소개한 후 ‘유명한 성철 스님의 상좌’라고 안내해서 악수하게 됐다. 손이 두껍고 푹 싸이는 기분으로 따뜻한 느낌을 받았다”며 김 위원장에 대한 인상을 이야기했다.

김정은 위원장과의 악수 화제

북한방문 중 또 다른 감격은 갑작스런 백두산 방문이었다고 한다. 그 전날 취침시간이 가까워서야 일정을 통보받고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삼지연 공항까지 40분, 삼지연 공항에서 비포장도로로 50분 정도 걸렸다. 서울에서 평양까지 50분 남짓 걸려 갔으니 왕래가 자유로워지면 하루만에도 백두산에 다녀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지 물에 손을 담그니 뼛속까지 시원함이 스며들고 머릿속까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거리상으로 남과 북은 멀지 않고, 같은 말과 비슷한 정서를 갖고 있지만 원택 스님이 느끼기에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시대가 되기에는 더 많은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라 전망했다. “남북 지도자가 다시는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평화로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지도자들의 선언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서로를 불신하고 지난날의 잘못만을 따진다면 어떻게 미래를 향해 나갈 수 있겠는가. 이제는 평화를 위해 국민 모두가 애써야 할 때”라는 것이 원택 스님의 생각이다.

남북관계의 진전을 바라면서 불교계, 특히 조계종에서 주력하는 현안들은 분명했다. “우선 조계종에서 진행했던 신계사 복원사업이 중단된 채 3년이 지났다. 목조건물이라 방치하면 상할 염려가 있다. 현장을 확인하고 수선해야 될 것이다. 내금강 쪽 유점사와 마하연 등 고찰 복원문제도 걸려 있고, 문화재 발굴 조사사업도 조계종에서 준비하고 있는 사업이다. 서산대사가 수행하고 의승군을 일으켰던 묘향산 보현사와 함께 추모제를 올리는 일도 추진하고 있고, 왕래가 확대되면 금강산 신계사에서 템플스테이를 하고 북의 신도들이 남쪽 절에서 템플스테이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모두가 학수고대하는 사업이다”라고 설명했다.

원택 스님은 생전의 성철 스님으로부터 금강산 마하연 선방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스님께서 38세 때 마하연 선방에서 수행하셨는데, 100명이 넘는 수좌들이 참선하며 지내느라 함께 살았어도 서로 얼굴도 못 알아보는 일이 있었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때처럼 마하연 선방이 복원되고 남과 북의 사람들이 함께 참배하고 수행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고 했다.

원택 스님에게 세상일보다 더 중한 것은 스승의 자취가 깃든 백련암을 지키는 일이다. “지난 10월 28일이 큰스님 열반 25주기였다. 제자들과 스님을 오래 모신 신도들의 이야기를 묶어 <성철 큰스님을 그리다>라는 책 한 권을 냈다. 서점에는 내지 않았는데 청하는 사람이 많아 7000권을 찍었다. 아직도 마음 깊이 큰스님을 모시고 사는 이들이 그렇게 많다”고 전한다.

그의 스승 성철 스님은 1989년 종교인연합회에 ‘통일을 바라며’라는 글을 발표했다. 그 마지막 단락에서 “한라산에 솟은 달이 천지못에 비치우니/ 어허라！좋을시고/ 삼천리 한 땅이요 칠천만이 한 형제이니/ 한려수도 돌아보고 만물상을 구경가세”라고 노래했다. 원택 스님이 바라는 내일의 모습도 그러할 것이다.

<김천 자유기고가 mindtempl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