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스크린]터널3D-압축적 근대화에 대한 복수

BoXoo 엔터테인먼트

제목 터널3D

감독 박규택

출연 정유미, 연우진, 송재림, 정시연, 손병호, 이시원, 이재희, 도희, 우희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개봉일 2014년 8월 20일

아이가 그림을 그렸는데, 시냇물을 검게 그렸더라, 한 20년 전쯤 들었던 탄광촌 이야기다. 그리고 지금. 대부분 폐촌이 되었다. 쇠락한 마을.

<터널3D>의 홍보자료에는 ‘청춘호러’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청춘남녀들을 내세운 호러다. 1980년대 미국에서 유행한 슬래셔/하이틴 호러물의 주인공들은 고등학생들이다. 하이틴 호러물에는 일정한 공식이 있다. 사회에서 미성년자에게 금기시하는 행동을 하는 조연부터 하나씩 ‘괴물’에 의해 제거된다. 섹스나 마약은 1순위다. 음주도 마찬가지. 그래도 순정파에 가까운 주인공 커플은 괴물과 사투 끝에 살아남는다. 한국의 하이틴 호러의 상상력은 아직까지 교실에 갇혀 있다.

그래서인지 <터널3D>의 주인공들은 20대 중·후반 남녀다. 영화의 주인공은 탄광촌 입구에서 놀러온 젊은이들 일행에 참여하는 은주다. 미스터리한 인물로 상정되었다. 영화의 보도자료에는 ‘재벌2세’라고 설명되어 있지만, 쇠락한 탄광주의 아들쯤 되는 기철이 친구들을 데리고 놀러온다. 탄광은 리조트로 재개발되고, 폐쇄된 탄광의 갱도에서는 파티 행사가 열린다. 파티는 개눈을 박고 나타난 전 탄광관리자 김씨 아저씨의 깽판으로 중단된다. 주인공들 주변을 배회하면서 ‘탄광에서 떠나라’고 경고하는 김씨 아저씨를 우연하게 살해한 일행은 시체를 폐갱도에 유기할 계획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출입이 금지된 폐갱도에 고립된 주인공들. 그 다음은? 하나씩 죽어간다.

영화의 몇몇 장면들은 인상적이다. 탄광에서 고립된 기철이 꾸는 꿈에서 그의 여자친구 유경이 퀭하게 뚫린 눈으로 그에게 달려드는 장면이 나오는데, 한 5~6년 전부터 유명한 ‘자유로 괴담’에 등장하는 ‘눈 없는 여자’를 스크린에서 보는 3D 객체로 옮겨놓았다. ‘왜 눈 없는 여자일까’라는 대목에서는 애인을 배신하고 다른 여자와 바람 피는 기철의 죄의식과 두려움을 상징하는 것쯤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탄광 주변에서 흘렀을 ‘검은 물’은 이 영화가 천착하고 있는 핵심 소재다. 유경의 귀신 눈에서 쏟아져내리는 것이 검은 물이다. 폐쇄된 갱도를 헤매던 유경은 광부들이 작업을 끝내고 사용했음직한 목욕탕에 도착하는데, 그 목욕탕의 거울 속에서 자신들이 살해해 버렸던 김씨 아저씨와 조우한다. 그리고 넘어진 그녀 위로 목욕탕 천장의 샤워기에서 대량의 ‘검은 물’이 쏟아져내린다.

책 <근대성의 유령들>에서 영상원 김소영 교수는 1960년대와 70년대 한국 공포영화에 등장하는 귀신들을 ‘전근대의 복수’라는 개념으로 읽어낸다. 근대화 과정에서 미신이라는 미명으로 배척된 무당이나 귀신을 쫓아내는 데 동원되는 불교적 퇴마술과 같은 것들이다.

터치스크린

<터널3D>도 이런 구도에서 읽어낼 수 있다. 한국의 압축적 근대화의 밝은 부분이 서울에 우후죽순으로 들어선 고층빌딩들이라면, 압축적 근대화의 어두운 부분에서 뿌리처럼 급속히 땅속을 파고들어가 만들어진 것이 강원도 일대의 탄광들이다. 세대가 바뀌고, 그 근대화의 뿌리는 잊혀졌다. 유경이 거울 속에서 만나게 되는 전 탄광관리자 김씨의 유령은 한국의 압축적 성장의 맨얼굴이다. 영화가 담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영화 감독은 “무서운 것을 위로하는 영화”라고 답한다. 영화의 시작 장면에서 사고로 고립된 두 탄부가 듣는 노래가 ‘나를 잊지 말아요’다. 다시 말하자면, ‘근대화 과정에서 배제된 이들의 상상적 복수를 통한 인정투쟁’이다. 좋은 주제였는데, 캐릭터의 개발이나 연출력이 달린다. 아쉽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