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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만난 사람]조선 황실가옥에서의 하룻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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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근당 이건공사는 조선조의 전통왕가 건축양식을 전혀 훼손하지 않으면서 현 위치인 자은산 기슭으로 건물 자체를 그대로 옮겨 오는 것이었다. 대들보, 서까래, 기둥 등 목재는 그 당시 춘양목으로, 기와, 주춧돌, 기단석, 토방돌까지도 200년 전의 것을 그대로 사용했다.

옛 사람들은 집을 지으면서 자연의 경치를 빌린다는 뜻으로 ‘차경(借景)’이란 말을 흔히 썼다. 염근당 방에서 바라본 전경.


햇살을 머금은 꽃들과 새순을 내미는 나무들. 봄빛 풍경이 조선왕가의 풍경과 참으로 잘도 어울린다. 정히 옷매무새를 매만지고 마음도 다잡는다. 정숙하고 고요히 걸음을 옮기니 널찍한 왕가의 안마당에 따스하고 평안한 봄의 기운이 넘친다.

전통왕가의 철학과 사상을 옮기다
염근당은 고종의 영손인 황족 이근(李芹)의 고택으로 황실가(皇室家)의 전통 한옥이다. 1800년대에 창건되고 1935년에 99칸으로 중수(重修)되었으며 조선조 역대 왕의 종묘제례(宗廟祭禮)를 관장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조선왕가역사문화재단의 남권희 이사장은 사붓사붓 걸음을 옮기며 염근당의 이건에 얽힌 이야기와 조선왕가의 면모를 하나둘씩 풀어낸다.

“한양 사대문 안에는 임금의 궁궐을 둘레로 수많은 황족들의 왕가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염근당 역시 서울시 명륜동에 소재하고 있었습니다. 이곳 연천의 자은산 기슭으로 이건을 결정하고 조선조 왕가 본연의 미와 특성을 그대로 살리려 노력하였습니다. 이건 및 복원 공사는 2008년 6월부터 2011년 5월까지 꼭 3년의 기간이 소요되었습니다. 이번 5월이면 꼭 1주년이 됩니다.”

염근당 이건공사는 조선조의 전통왕가 건축양식을 전혀 훼손하지 않으면서 현 위치인 자은산 기슭으로 건물 자체를 그대로 옮겨 오는 것이었다. 대들보, 서까래, 기둥 등 목재는 그 당시 춘양목으로, 기와, 주춧돌, 기단석, 토방돌까지도 200년 전의 것을 그대로 사용했다.

조선왕가역사문화재단 남권희 이사장이 염근당의 이건에 얽힌 이야기와 조선왕가의 면모를 풀어냈다.



“기와 한 장,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에도 선조의 지혜와 숨결을 담았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역사 속 왕가를 최대한 살리고 싶었습니다. 또 자연친화와 환경보존의 중요성을 이미 알았던 조상들의 지혜를 그대로 되살려 우리 후손에게 물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일까. 봄볕을 받은 홍자은의 풍경은 아름답고 정갈하다. 고요한 터에 자리한 염근당을 시작으로 사반정, 효경문, 전각문, 자은정까지 둘레둘레 천천히 걸으니 조선왕가의 단아하고 기품 있는 기운이 느껴지며 편안해진다.

“우리의 전통한옥 기술은 자연합일과 자연회귀 사상이 체계화된 과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족의 정서적 원형을 그대로 살리고 시각적 아름다움, 한옥의 과학적인 시스템을 그대로 재현하면서 멋과 품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특히 그러한 선인들의 정신을 담기 위해 환경호르몬에 전혀 오염되지 않은 나무와 돌, 황토흙만을 사용하였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그러한 고집으로 곳곳에는 조선왕가의 숨결과 기품이 담겨져 있는 듯하다. 세월의 더께가 쌓인 기와의 빛깔은 고색창연하고, 소나무 원목의 창문과 닥나무로 만든 전통한지에도 우리의 전통과 정서가 고스란히 배어난다.

뒷산에서 바라본 염근당의 자태.



“세계에 뽐내도 좋을 만큼 훌륭한 우리의 건축기술과 문화를 그대로 재현하고 평안한 안식의 공간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전통한옥은 비어 있음, 그 여유로움의 가치로 현대인에게 편안한 휴식을 제공합니다. 옛 사람들은 집을 지으면서 자연의 경치를 빌린다는 뜻으로 ‘차경(借景)’이란 말을 흔히 썼습니다. 잠시 잠깐 자연과 하나로 합일되기 위한 겸손한 마음에서 비롯된 사상이기도 했습니다. 이는 집을 단지 물성을 지닌 건축물로 보지 않는 우리 선인들의 지혜입니다. 그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우리의 전통한옥이 서양의 어느 건축물보다 아름다우면서도 거스름 없는 과학적 건축미를 이루어낸 것입니다. 건물 벽체와 바닥 역시 천연 황토의 질감을 그대로 살렸으며, 이 역시 자연과의 교감의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자연의 기운으로 참 휴식을 얻다
“디지털 사회의 편리함은 현대인에게 많은 피로와 스트레스 등의 대가를 치르게 합니다. 따라서 오히려 아날로그적인 느림과 여유로움의 미학이 필요할 때입니다. 잠시 심신을 그저 놓아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옛 선인들의 휴식은 모든 것을 놓아두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이 시대에 우리에게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은 쉼과 내려놓음의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자연과 하나 되는, 자연의 기운으로 참 휴식을 즐기는 것이 필요합니다.”

뒷산의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말끔하게 머릿속이 정리되고 마음이 차분해진다. 새로운 자양분을 섭취한 듯 몸과 마음이 가볍다. 천천히 봄꽃 화들짝 피어난 산길을 내려와 염근당 건물 곁으로 자리한 자연치유센터를 둘러본다.

낮에 본 조선왕가와 야경의 조선왕가 모습은 느낌이 다르다.



“조선조 왕가의 한옥은 ‘자연합일’과 ‘자연회귀’라는 우리 조상들이 남겨주신 위대한 자연과 생활과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곳 자연치유센터는 그러한 선조들의 삶의 정신과 지혜를 실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공해 속 찌든 도심을 떠나 맑은 자연 속에서 평화롭고 건강한 삶을 위한 재충전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연치유센터에는 한의학 역사자료실과 갤러리, 레스토랑과 카페 ‘도토리나무’ 등 휴식공간이 자리하고 있다. 조선시대 황실의 전통비법으로 내려오는 비방으로 왕비와 빈들이 즐기던 천연 그대로의 약재로 테라피를 즐길 수 있게 했다.

대자연의 숨결과 정취 만끽
처마 끝으로 보이는 소나무의 가지에 휘영청 걸린 달빛, 안마당에 서면 머리 위로 쏟아져내릴 듯이 총총한 별,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 풀벌레들의 소리, 대자연 숨결의 조화가 어우러지는 조선조 왕가에서 하룻밤을 지낸다.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는 다음 시대의 희망이자 미래에 대한 교과서이기도 합니다. 조선조의 황실 가옥인 조선왕가는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엿보고 그 삶 속에 녹아 있는 문화를 재조명하는 공간입니다. 정신과 육체가 조화를 이루고, 자연에 순응하며 합일된 삶을 산 우리 선조들의 삶의 지혜와 문화를 이 공간을 빌려 오래도록 후세에 전하고 싶을 뿐입니다.”

이곳 조선왕가 염근당 상량문의 마지막 구절에는 ‘일화석필사신부분택영존(一花石必使愼付芬澤永存)’이라 적혀 있다. 이는 ‘꽃 한 송이 돌 하나라도 반드시 신중히 지키어 아름답고 향기로운 은액이 영원히 보존되게 하소서’란 뜻으로 해석된다. 자연 그대로의 터에 작은 꽃 하나, 돌 하나, 나무 한 그루를 베어 서두름 없이 땅을 다지고, 한 너른 마음으로 비움과 채움의 절묘한 조화를 바탕으로 한 채의 집을 지었을 옛 선인들의 철학과 사상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구절이다.

따뜻한 온돌에 몸을 누이니 이내 마음이 차분해진다. 조선조 황실 가옥에서의 하룻밤, 말 그대로 자연과 하나 되는 참다운 휴식으로 안성맞춤이다. 맑은 자연 속에서 평화롭고 건강한 삶을 살아간 옛사람들의 지혜와 철학이 새롭다. 누구든 전통한옥의 그윽한 정취를 만끽하고 하룻밤 묵는다면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시간으로 충분할 듯하다. 어디선가 작은 풀벌레 소리가 들려온다.

글·사진|이강<여행작가·콘텐츠 스토리텔러> leeghang@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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