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 없이 달린 30년, 그 길을 되돌아보며[주간경향 창간 30주년 기획]

역대 편집장에게 들어보는 주간경향 30년사

왜 YS(김영삼)였을까? 오랫동안 품었던 의문이다. 1992년 6월 5일. 주간경향의 전신인 뉴스메이커 창간호에 찍혀 있는 발행일이다. 올해로 30년이 됐다. YS는 창간호 표지 인물이다. 표지만 봐서는 어느 기사가 커버 스토리인지 알기 어렵다. 활자 크기만 놓고 봤을 때 창간호가 제일 강조하고 있는 기사는 “비화추적/‘정신대 여고생’ 45년만의 폭로 故박순천·황신덕 말 못할 사연”이라는 제목의 기사다. 대표적인 여성 야당 정치인, 교육계 인사인 두 사람이 일제 강점 말기 자신의 제자들을 정신대에 보냈다는 폭로기사다.

1992년 6월 창간한 뉴스메이커는 2008년 9월 792호부터 Weekly경향으로 제호를 변경한 뒤, 다시 907호(2011년 1월)부터 현재의 제호인 주간경향을 사용하고 있다. 사진은 뉴스메이커 창간호와 현재의 제호인 주간경향으로 바뀐 907호 표지

해당 호를 살펴보면 YS 관련 기사가 없는 건 아니다. 창간호이니만큼 당시 유력 차기 대권 주자 두 사람, YS와 DJ(김대중) 인터뷰가 실려 있다. 소설가 박범신, 연극인 손숙씨가 각각 인터뷰하고 지상중계하는 형식이다. 각 기사에 2쪽씩 할애했다. 한국현대사에서 두 정치인이 차지하는 위상을 생각해보면 “정치인이라고 호락호락 지면을 내주지 않는다”는 매체의 고집이 엿보인다. 그렇다고 해도 의문은 여전하다. 왜 표지 인물이 YS였을까. 그해 연말 치러질 대선의 승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서?

YS가 창간호 표지에 나온 사연은

창간호 편집장을 맡은 장옥 경향신문 사우회 부회장(77)을 지난 5월 19일 만나 이 오랜 의문의 답을 찾았다. “당시가 올해처럼 대선 때였다. 그래서 김대중, 정주영, 김영삼 셋이 나왔는데 창간호를 만드니까 타이밍이 맞는 거다. 예비주자이니 인터뷰를 했는데 일반 기자가 갈 수 없고 내가 부장을 맡고 있으니 직접 갔지. 김대중은 동교동 집필실에서 인터뷰했다. 그때 김대중을 좋게 봤다. 빨갱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직접 만나보니 합리적이고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었다. 30분 예정으로 들어갔는데 2시간 동안 인터뷰했다.”

두 번째로 만난 건 정주영이었다. 사달은 마지막으로 김영삼 인터뷰 추진과정에서 벌어졌다. 인터뷰를 안 하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왜 그러냐 하니 ‘왜 나를 꼴찌로 하냐’는 거야. 오기가 대단하더라고. ‘한 책에 나가니 순서가 어디 있냐’고 항변했지만 안 통했다. 약이 오르더라고. 당시 나도 40대 후반 때였으니 팔팔했다. 그때 정치 쪽으로 뛰던 임모 기자를 불러 이야기했다. 뒤 좀 파 보라고. 그 기자가 부산까지 내려가 취재해온 바에 따르면 YS의 서울대 철학과 학력이 가짜라고 했다. 3쪽짜리 ‘조지는’ 기사를 썼는데 회사와 청와대, 기무사까지 난리가 났다. 기사를 빼라고. 죽어도 못 빼겠다고 버텼다. 결국 회사 사장까지 나섰다. 사표를 써서 사장방에 들어가서 ‘마음대로 하세요’ 하고 던지고 나왔다.”

결국 창간호에 실릴 예정이었던 기사는 실리지 못했다. 표지엔 김영삼 당시 통일민주당 대표의 얼굴만 실려 ‘알리바이’만 남게 된 셈이다.

쉼 없이 달린 30년, 그 길을 되돌아보며[주간경향 창간 30주년 기획]

뉴스메이커라는 제호는 창간 전 신문에 공모했다. 전국각지에서 수백장의 엽서가 들어왔다. 당시 회사는 뉴스메이커와 시사경향이라는 두 제호를 두고 고민했다. “당시 간부진 회의에서 뉴스메이커는 인물 위주가 돼야 하지만 인물도 기업도 메이커가 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해서 뉴스메이커로 기울었다. 그 이름을 제안한 사람이 누군지까지는 기억 안 나지만 상금 100만원을 수령한 것으로 기억한다. 경찰관 입회 아래 추첨하고 창간할 때 상당히 거하게 했던 기억이 난다.”

창간 30주년을 맞아 역대 편집장 명단을 정리해봤다. (아래표 참조) 장옥 초대편집장이 제작할 때 뉴스메이커는 격주간 발행이었다. 장 편집장이 3호까지 진두지휘를 맡았다. 4호부터는 동아해직투위 출신인 조양진 편집장(작고)이 맡았다. 4호부터 31호까지 조 전 편집장이 맡았고, 95호까지 이실 주간이 주도해 제작했다.

왼쪽부터 장옥 경향신문사우회 부회장, 조양진 전 미디어오늘 대표이사(작고), 이실 전 경향신문 주필, 김흥업 한국언론인포럼 부회장, 김세환 전 효성그룹 홍보실장, 김종식 화가, 조병철 전 세계일보 주필(작고), 고유석 전 경향하우징 대표이사, 신동호 현대사기록연구원 연구위원장, 유인경 방송인, 원희복 언론중재위원(민족일보 기념사업회 이사장), 윤석원 전 경향신문 사업국장, 조호연 EBS 이사, 윤호우 경향신문 논설위원, 류형열 전 경향신문 스포츠부 선임기자, 조찬제 경향신문 논설위원, 조홍민 경향신문 신문국 사회에디터,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장, 권재현 현 주간경향 편집장

신동호 전 편집장(현대사기록연구원 연구위원장)은 뉴스메이커 창간 직후인 7호부터 제작에 참여한, 말하자면 ‘뉴스메이커/주간경향’ 역사의 산증인이다. 신 위원장의 기억에 따르면 격주간지로 창간한 뉴스메이커는 창간 1년쯤 후부터 주간지 형태로 발행했다. 당시 가격은 2000원. 30년 전임을 고려하면 결코 싼 가격은 아니다. 초기 제작의 책임자는 편집장과 주간으로 이원화돼 있었다. 취재·편집기자를 총괄하는 편집장 위에 다시 주간이 있어 전체 편집 방향을 결정했다. 잡지에 실린 인력표를 보면 신 위원장은 266호(1998년 4월)부터 고유석 주간 아래에서 팀장 역할을 맡아 편집을 총괄하다가 272호(1998년 5월)부터 단독으로 편집장을 맡았다. “사실 중간에 애매한 시기가 몇 번 있었다. 내가 당시 수석기자격이라서 굉장히 애를 먹었다. 취재를 하는 것도 아니고 편집장 노릇을 온전히 하는 것도 아니고, 당시 출판국장에게 기획안을 가져가면 아니라고 하는데 그렇다고 뭔가 대안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고….” 경향신문이 독립언론으로 전환하면서 신 위원장은 차장대우로 승격돼 정식 편집장을 맡았다. 2년 동안 근무했다. 중간에 경향신문 뉴미디어팀장으로 발령 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2004년까지 누적해 근 6년 가까이 편집장을 맡았다. 신문 논설위원으로 정년퇴임하기 전까지 오랫동안 주간경향 편집위원으로 일했다. “사실 편집장을 할 생각은 별로 없었다. 너무 오래 했다. 당시엔 주간지가 월요일 마감, 화요일 발행 체제였다. 편집장 역할을 하느라 주말도 거의 못 쉬었다. 몇년간 그러니 피로도 누적되고 더할 생각이 없으니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일요일에 당시 외국에 나가 있어 부임도 못 할 사정인 유인경 후배한테 편집장 발령이 났다.” 매주 잡지가 나오긴 했지만, 제작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간난신고’는 결코 간단치 않았다는 회고다.

사이버 망명·국정원 사찰 폭로 끌어내

신 전 위원장 말고도 두 번씩 편집장을 한 이들은 또 있다. 원희복 언론중재위원(민족일보 기념사업회 이사장)과 윤호우 현 경향신문 논설위원이다. 723호(2007년 3월)부터 뉴스메이커팀에 합류한 기자는 이들 편집장과 같이 일한 적이 있다. 이명박 정부 시기와 겹치는 원희복 편집장 시절 기억나는 건 ‘사이버 망명’이라는 담론을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2008년 촛불시위 이후 다음 아고라로 대표되는 인터넷게시판·커뮤니티에 대한 사찰과 탄압이 강화되자 일부 누리꾼들이 해외 서버에 게시판·커뮤니티를 개설해 탈출하는 엑소더스 현상이 나타났다. 그걸 두고 당시 표제 기사에서 ‘사이버 망명’이라는 표현을 썼다. “나는 하여튼 뉴스메이커라는 잡지는 사람과 집단에 대한 해부를 중요시해야 한다고 봤다. 당시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슈퍼클래스, 이명박 정부 시기이니 대한민국 보수세력을 심층적으로 분해하는 기획을 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당시 했던 표제 기사 중 가장 기억나는 기획은 뭐였냐는 질문에 대한 원 위원의 답이다.

원 위원의 뒤를 이어 조호연 EBS 이사(전 경향신문 논설주간)가 편집장을 맡았다. 조 이사는 824호(2009년 5월)부터 847호(2009년 10월)까지 제작하고, 이어 출판국장을 맡으면서 경향신문사의 잡지 발행 전체를 총괄했다. “지금도 내가 Weekly경향에 이어 출판국장을 맡은 시기를 불가사의한 기간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맡았을 때 주간지 판매부수가 2만6500부였는데 6개월 사이에 7000부를 늘렸다. 출판국장이 돼서도 전체 매출액이 42억원이었는데 1년 뒤 84억원으로 2배가 됐다. 부수 늘고 광고 늘어난 것이 꼭 내가 잘해서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당시 이명박 정부의 탄압을 받던 경향신문사를 돕겠다는 순수한 시민들의 마음을 얻은 게 주효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조 이사의 재임 시절, 가장 큰 사건은 박원순 당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연재코너였던 ‘이종탁이 만난 사람들’ 인터뷰를 통해 폭로한 국정원 사찰이었다. 국정원과 당사자 간의 소송으로까지 비화한 이 사건은 결국 박 이사가 정치권으로 나가는 계기가 됐다.

1992년 5월 4일 경향신문에 실린 뉴스메이커 창간 광고 / 경향자료

황교익씨가 맛칼럼니스트가 된 사연

주간경향 지면을 통해 알려지게 된 유명인사도 여럿이다. 황교익씨는 음식평론가 등의 수식 대신 ‘맛칼럼니스트’라는 타이틀을 지금도 쓴다. 주간경향 음식인문학 기행을 연재하며 작명(作名)한 타이틀이다. 704호(2006년 12월)부터 780호(2008년 6월)까지 편집장을 역임한 윤석원 전 경향신문 사업국장의 회고다. “전 직장(농민신문사)에 같은 해 입사해 친구처럼 지냈다. 1995년 경향신문사에 옮긴 뒤로도 전 직장에 자주 놀러가곤 했는데 당시 PC통신 같은 곳에 맛집을 찾아다니는 식도락 동호회가 유행이었다. 황교익이 그런 모임에 나가면 지존 대접을 받는다고 자랑하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가 지면 개편 때 황씨를 염두에 두고 음식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을 담은 연재 글을 제안했다. 맛칼럼니스트라는 이름을 붙여준 뒤 연재를 시작했다. 그걸 발판으로 방송사 맛평가단 같은 데 진출해 오늘날 그의 유명세가 만들어졌다.” 윤 전 편집장은 지금도 맛칼럼니스트 황씨 등 네다섯명 지인들과 3개월에 한 번씩 만나는 자리를 갖고 있다고 전했다. 모이는 장소는 매번 바뀌는데 황씨가 ‘전국구 맛집’을 직접 예약한다고.

뉴스메이커/주간경향의 편집책임을 맡은 주간·편집장의 수는 집계해보니 20명 내외였다. 역대 편집장의 취임과정이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었다.

“뉴스메이커/주간경향이 30년이 됐다는 건 청년이 됐다는 것이거든. 그런데 내일모레 80을 바라보는 나는 노년이 됐다. 세월이 또 이렇게 가는구나 생각한다. 어쨌든 경향에서 다른 잡지들은 모두 사라졌는데 이렇게 유지하고 있는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 나로서는 내 새끼나 마찬가지니깐….” 장옥 초대편집장의 소회다. 1992년 당시 시사지를 창간한다는 소문이 사내에 떠들썩했는데 갑자기 자신을 창간부장으로 발령내 얼떨결에 일을 시작한 게 엊그제 같다고 했다.

“온라인 시대가 될수록 뉴스도 누가 어떤 말을 했다는 식의 멘트로 가볍게 소비되지만 그럴수록 좀더 깊은 이면의 숨겨진 이야기들, 깊이 있는 분석, 통찰력에 대한 독자들의 갈증이나 수요는 더 높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온라인 시대에도 주간지의 영역은 더욱 커질 수 있다고 본다.” 1033호(2013년 7월)부터 1133호(2015년 7월)까지 100권의 주간경향 편집을 책임졌던 류형열 전 편집장의 말이다. 탐사·심층기획을 특징으로 하는 주간지의 고유영역을 잘 개척·발전시켜 나간다면 미래에도 시사주간지의 길은 틀림없이 열려 있으리라는 덕담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