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올해의 사건… 획일 역사관 강요 ‘교과서 국정화’

학계·교사·시민사회 반발 외면한 채 속전속결로 확정고시 강행

11월 3일 교육부는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는 확정고시를 강행했다. 7월에서 8월에 걸쳐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번갈아 나서며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시행하겠다는 입장을 강하게 피력한 지 석 달을 겨우 넘긴 시점이었다. 정부와 여당이 한몸으로 나서 속전속결로 확정고시를 강행하는 순간까지도 좌우를 가리지 않고 시민사회의 반발과 비판이 잇따랐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위한 태스크포스팀을 비밀리에 만들어 외부에서 운영해온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들끓는 반대여론을 향한 귀를 닫은 채 일방적인 결정을 내린 것이다.

바뀐 것은 중학교 ‘역사’와 고등학교 ‘한국사’ 과목 교과서가 검정에서 국정으로 전환됐다는 것이다. 이들 과목은 2017년 3월부터 국정교과서로 배워야 한다. 교육부 산하 국사편찬위원회는 집필진을 구성했지만 누가 집필진에 들어가 있는지 공개하지 않았다. 검정교과서 집필진에 대해서는 주소까지도 공개하게 규정되어 있지만, 국정교과서 집필진에 대해 공개를 규정하는 법률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누가 교과서를 집필하는지도 공개하지 않고 교과서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교육부는 집필진이 집필한 교과서를 검토한 뒤 수정·보완하는 역할을 맡은 편찬심의위원회의 구성도 비공개로 하겠다고 밝혀 그동안 내놓은 교과서 집필과 편찬 및 심의 과정을 투명하게 하겠다는 입장과는 전혀 배치되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고시를 강행하자 학계의 반대 움직임은 더 거세졌다. 학계에서도 역사학 전공 연구자를 포함한 전국 대학과 연구단체 교수들은 고시 이전부터 집필 거부 및 국정화 반대 성명에 나섰다. 집필 거부에 나선 연구자 수만 700여명, 반대 성명에 동참한 연구자 수는 2000여명에 달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 교사를 비롯한 전국의 교사 2만1379명도 국정교과서에 반대하고 나섰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청소년들이 11월 7일 서울 세종로 정부청사 앞에서 국정화 반대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보수진영의 ‘좌편향’ 문제제기로 출발
국정교과서를 둘러싼 논란은 기존의 검정교과서가 ‘좌편향’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정부와 여당, 일부 보수진영의 문제제기에서 출발했다. 2007년 6월 교육부의 전신인 교육인적자원부가 ‘다양하고 창의적인 질 높은 교과서를 만든다’는 취지로 중·고교 교과 중 국어·도덕·역사교과서를 검정으로 전환한다는 내용의 교과서 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한 이후, 학교 교육현장에서는 민간 교과서 출판사가 펴낸 검정 역사교과서가 자리 잡아 왔다. 그러나 2014년 1월부터 새누리당이 역사교과서를 종전의 단일 국정교과서로 되돌리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며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불씨를 지피기 시작한 것이다.

국정교과서에 찬성하는 측이 근거로 내세우는 기존 검정교과서의 ‘좌편향’ 사례는 북한 김일성 주석의 항일행적인 ‘보천보 전투’를 긍정적으로 소개했다는 것과 김대중·노무현 정부 기간에 대한 긍정적 기술이 이전 정부에 비해서 월등히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 등이다. 또 ‘대한민국’의 ‘건국’을 단순히 ‘정부 수립’으로 표현하는 현행 검정교과서가 ‘건국’의 의의를 격하시키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그밖에 미 군정과 이승만 정부에 비판적인 서술이 나오는 반면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이나 노동운동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태도로 근·현대사를 서술하는 경향이 대부분의 검정교과서에서 나타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에 비해 반대 측은 찬성 측의 ‘좌편향’ 논리가 오류를 포함하고 있으며, 설령 검정교과서에 일부 오류가 있다 하더라도 교육현장에서 자유롭게 교과서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시장에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맞선다. 현행 검정교과서에 보천보 전투를 비롯해 주체사상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까지 나오는 것이 사실이지만, 북한 정권과 주체사상에 대해 기본적으로 비판적 입장을 바탕으로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교육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학습요소들은 이미 교육부가 권장한 집필 기준안에 포함돼 있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건국’의 시기 역시 헌법에 나타난 ‘임시정부의 법통’을 고려하면 찬성 측이 주장하는 시기가 오히려 부당하다는 반박이 나온다.

중학교 ‘역사’ 교과서는 세계사까지 포함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쪽은 건국 시기를 1948년으로 못박으려는 국정화 찬성 측이 오히려 정권의 교과서 집필 개입을 방조해 교과서와 역사교육의 객관성을 해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전 교육과정인 2009 교육과정에 비해 교과서 국정화 방침이 포함된 2015 교육과정에서는 임시정부의 활동에 대한 서술을 축소하고, 반민특위가 실시한 친일행적자에 대한 특별조사활동을 삭제했다. 이러한 일련의 개입이 현 정권과 보수 일각의 입장만을 반영한 결과라는 비판이 나온다. 보수진영 내부에서도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쪽에서는 ‘좌편향’의 대안이 국정화일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여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가 2013년 11월 발간한 정책리포트에서도 “헌법재판소에 의해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국정제가 반드시 유지되어야 할 필연적 이유가 있는지, 그리고 국정제가 교과서제도에 대한 지나친 국가 관여를 초래하여 과잉금지원칙 위반인 것은 아닌지 등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고교 역사교과서에서는 ‘한국사’ 교과서만이 국정화로 바뀐 반면, 중학교 ‘역사’ 교과서는 한국사를 포함해 동아시아사와 세계사를 모두 담고 있는 교과서여서 비교적 잘 알려진 고교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폐단보다 중학교 역사교육 현장에서 겪게 될 문제가 더 클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교과서 집필과 편찬을 총괄하는 국사편찬위원회는 말 그대로 ‘국사’ 편찬기구인 데다 과거 중·고교 ‘국사’ 교과서가 국정이던 시절에도 별도의 세계사 과목은 사회교과로 분류돼 국편과는 별도로 교과서 제작이 이뤄졌다는 점을 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당장 1년밖에 안 되는 기간에 만들어지는 역사교과서이다 보니 졸속 편찬이 우려되는 가운데 한국사 외에 동·서양사 전공 대부분의 교수들이 집필 거부에 나섰다는 점을 감안하면 역사교육의 부실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교과서 강행고시 이후 시민사회는 헌법소원을 통해 고시를 무효화하려는 한편 좌우를 넘어서 국가와 정권의 과도한 개입을 저지하기 위한 시민불복종 운동을 펴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나가고 있다.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 네트워크’가 12월 19일까지 6차에 걸친 국정화 저지 시민대회를 여는 한편 일부 교육청과 함께 국정교과서 대신 학교 교실에서 사용할 대안 인정교과서 제작 움직임도 활발하다. 국정교과서 반대 측이 내세우는 구호 중에는 박근혜 대통령 자신의 말도 있다. “역사에 관한 일은 국민과 역사학자의 판단 문제이고 역사는 정권이 재단해서는 안 된다. 어떤 경우든 역사를 정권이 재단해서는 안 된다.”(2005년 1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연두 기자회견 발언)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