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 “고민 상담하러 왔는데요”

대학상담센터에 학생들 몰려… 내용은 취업·학업·연애 순

서울시립대 4학년 이모씨(27)는 ‘면접 울렁증’이 있다. 3학년이던 지난해부터 취업을 하기 위해 여러 회사의 인턴 모집에 지원했지만 결과는 모두 신통치 못했다. 마지막 면접장에만 들어가면 긴장하기 때문에 목소리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던 탓이다. 다행히 인턴 채용 시 면접을 안 보는 한 회사에서 인턴생활을 경험하긴 했지만 본격적인 구직활동을 시작할 올해부터가 문제다. 더 이상은 면접을 망칠 수 없다는 각오로 이씨는 대학 내 상담센터를 찾았다.

전년 대비 상담 증가율 24% 넘어
대학 내 상담센터를 찾는 대학생들의 발길이 늘고 있다. 학생들을 위한 생활상담센터를 운영 중인 각 대학의 상담건수 집계내역에 따르면 최근 성격·취업·연애 등의 고민으로 상담을 신청하는 건수가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립대·경희대·한양대·경북대 등 지난해까지의 개인 상담건수 집계를 공개한 대학들의 전년 대비 상담건수 평균 증가율은 24.2%에 달했다.

상담센터를 찾는 학생들의 고민은 저마다 제각각이지만 그 배경은 대동소이했다. 취업·진로 문제와 연애·대인관계 문제가 가장 주요한 원인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면접만 보면 지나치게 긴장하는 이씨의 성격 문제도 결국은 강한 취업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이전까지는 누구를 대하고 얘기 나누는 일에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 ‘취업을 못하면 끝장’이라는 생각 때문에 유난히 면접장에서는 어쩔 줄을 모르겠더라고요. 상담을 받으면서 마음의 부담을 더는 연습을 하고 있는데,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타지역에서 서울로 진학해 혼자 살고 있다는 이씨는 매주 한 차례 상담을 받으며 고민을 나눌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씨가 다니는 서울시립대의 학생상담센터 상담건수는 2012년 1740건에서 2013년 1890건으로 소폭 증가했다가 지난해에는 2569건으로 35.9%나 증가했다. 다른 대학의 상담센터들도 비슷한 추세를 보인다. 경희대 학생생활연구소의 개인 상담건수는 2013년 1732건에서 지난해 1899건으로 9.6% 늘었고, 경북대도 2959건에서 3255건으로 10% 증가했다. 국민대 49%, 한양대 39%, 숭실대 30% 등 30% 이상의 높은 증가율을 보인 대학들도 있었다. 집계가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서울 주요 대학의 관계자들도 학생들이 상담센터를 찾는 횟수는 늘고 있는 추세라고 입을 모았다.

대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캠퍼스 내 상담센터 앞을 학생들이 지나가고 있다. | 정지윤 기자

대학생들이 대학생활 중 겪는 가장 큰 고민은 진로·학업·연애 순으로 나타났다. 서울대 대학생활문화원의 2014년 대학생활 의견조사에서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문제는 5점 척도 중 3.48점으로 나온 진로 문제였고, 이어서 학업(3.08점), 이성친구 문제(2.80점) 순이었다. 경희대 학생생활연구소의 상담 내용 분류에서는 성격 문제(30.2%), 우울이나 불안 등의 정서 문제(19.3%), 대인관계 문제(16.8%)가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성균관대 건강센터 김정옥 과장은 “취업과 진로 등에 대한 스트레스로 상담이 필요한 학생이 많다”며 “상담을 원하는 학생이 많아 한 달 이상 기다려야 했던 문제가 있어서 정신건강 진료를 확대해 시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상담을 원하는 대학생이 늘면서 제때에 상담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1~2주에서 길게는 두 달까지 차례를 기다려야 하는 등 상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형편이다. 상담센터를 운영 중인 대학에서 교내 사업 우선순위에서 밀려 상담인력 보강에는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규모가 작은 4년제 대학이나 2년제 전문대에서는 아예 상담센터가 별도로 설립돼 있지 않아 취업지원 부서에서 실시하는 진로상담을 제외하면 전문 상담인력이 전혀 없는 경우도 많다.

희망 학생 많아 몇 주씩 기다리기도
서울의 한 4년제 종합대학에 다니는 이소연씨(23)는 중간고사 기간 이후까지 들어차 있는 상담센터의 상담 일정을 보고 발길을 돌렸다. 수업시간과 취업 스터디 등으로 빡빡한 이씨의 시간표에서 겨우 틈을 내 상담을 신청하려 했다. 하지만 가능한 시간에 이미 상담 일정이 꽉 차 있는 것은 물론, 개인 상담이 아닌 집단 상담 프로그램도 모집 초기에 마감돼 빈 자리가 없었다. 이씨는 “나보다 상담이 필요한 학생들도 많을 테니 기다려야 하는 건 받아들일 수 있지만 요즘처럼 대학생들의 스트레스가 극심한 시기에 학교가 (학생들의) 심리적 문제를 너무 가볍게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대학의 상담센터가 설립되지 않거나 상담 수요에 비해 인력 확충에 인색한 이유는 설립을 강제하는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대학 운영상의 필수기구가 아닌 권장기구로 입지가 낮은 탓에 적극적인 예산 확보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상담 전문가나 상담 관련 전공교수를 얼마나 배치해야 하는지를 비롯해 상담인력 자격요건 등에 관해서도 구체적인 기준이 정해지지 않았다. 대학교육협의회에서 주관하는 대학평가에 학생상담체계를 구축한 경우 가산점이 주어질 뿐이어서 대학이 자발적으로 상담센터를 설립하게 만드는 유인도 부족하다.

상담센터를 찾는 대학생들과 이런 현상을 바라보는 전문가들 모두 쉽게 해결되지 않아 ‘답이 없는’ 문제가 커지는 상황을 우려했다. “옛날처럼 죽어라 노력만 해서 취직이 되는 게 아니잖아요. 기업들 모집정원은 정해져 있고 거기다가 계속 줄고 있는데, 그런 건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거니까…. 내 힘으로 내 마음조차 맘대로 안 되니 상담을 받으면 나아질까 해서 들른 겁니다.” 대학생 이소연씨는 “하다 하다 안 되면 점이라도 보러 가는 심리랑 비슷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심영섭 대구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상대적인 박탈감과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현실, 대인관계의 미숙함 같은 여러 요인 때문에 대학생, 특히 고학년으로 갈수록 더 많은 스트레스와 분노를 호소하는 경향을 보인다”면서 “대학생들이 사회의 각종 병리적 사건·사고와 높은 자살률 등을 지켜본 결과 상담소 문을 두드리는 것을 과거처럼 주저하지 않게 된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