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세월호 200일 남은 사람들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연대감을 끊어내려는 세력’의 도덕적 흠집내기, 피로감과 경기불황에 대한 공포가 세월호 문제를 고립시키고 있다. 정치권도 세월호는 가라앉히고 싶은 이슈다. 그러나 진상을 규명하려는 사람들과 진상을 숨기려는 자들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남은 이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해 기억하고 연대해야 한다.

세월호 진상규명은 지금 정치권의 최우선 과제가 아니다. 여당은 물론 야당도 마찬가지다. 여당에게 세월호 참사는 최대한 가라앉히고 싶은 이슈다. 특별법도 가급적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나마 여론에 밀려 여기까지 온 셈이다. 지방선거와 재·보선까지 연패한 야당은 당장 그들 당의 사활이 최우선 과제다. 야당은 내년 2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다. 현 비대위든 전대 이후 차기에 도전할 지도부든 세월호 진상규명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문희상 비대위원장 입장에서는 여야 협상을 통해 특별법을 만든 후 다음 리더십이 자리잡기까지 최대한 조용히 넘기고 싶어하는 눈치다. 반대로 전대를 준비하는 차기 당권주자들은 특별법을 만들고 입법하는 과정까지 현 지도부가 해결해줬으면 할 터이다. 더군다나 여권발 개헌론은 세월호 입법 이후에도 이슈를 수면 아래로 묻히게 할 우려가 있다. 박권일 칼럼니스트는 “특별법 이슈 자체가 논쟁이나 논란이 수면 밑으로 들어가 있는 상태다. 그런 것들을 다시 논점을 잡아 이야기를 하면 모르겠는데, 그렇지 않고 개헌론에 끌려가다 보면 묻히고 잊혀져 세월호 문제가 고립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10월 21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광화문 농성 돌입 100일 째를 맞아 ‘4.16 약속지킴이’ 제안자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 김기남 기자

세월호가 정치권의 주요 이슈에서 사라지고 시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것은 유가족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다. 광화문광장에 시민들의 발길이 뜸하다고 느낄 때, 진도체육관에 자원봉사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가는 것을 볼 때마다 유가족들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동수 아빠 정성욱씨는 10월 15일 광주에서 열리는 세월호 재판에 다녀왔다가 너무 썰렁한 법정 풍경에 한숨이 나왔다. 방청석에는 가족들 외에는 없었다. 취재도 NHK가 전부였다. 정씨는 “한국 사회에서 세월호는 거의 잊혀졌다고 봐야 하지 않나. 다들 이제 관심이 없다. 빨리 끝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빨리 잊혀질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재욱 엄마 홍영미씨는 빠르게 외면하는 정치권의 모습에 화가 났다. “정치인들이 너무 빨리 잊는다. 박근혜 대통령은 안산분향소에 한 번 찾아오고 그 후로 찾아오지 않았다. 국회의원도 마찬가지다. 분향소를 다시 찾는 정치인이 몇이나 되나. 지금 국회의원 중에 노란 리본 배지를 달고 있는 국회의원은 또 얼마나 될까.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다들 잊어버리고만 싶어한다.”

관심에서 멀어지는 것 가장 두려워
11월 1일은 세월호 참사 200일이다. 지난 200일 동안 세월호 참사는 ‘연대감을 복원하려는 세력’과 ‘연대감을 끊어내려는 세력’의 싸움이었다. 200일이 지난 지금 세월호 참사는 ‘연대감을 끊어내려는 세력’의 잠정적 승리처럼 보인다.

연대감을 끊어내려는 쪽은 유가족들을 진영논리로 가르거나 도덕적으로 흠집을 내어 연대감을 끊어내려 했다. 정성욱씨는 지난 대리기사 폭행사건의 당사자 중 한 명이다. 정씨는 그때 일에 대해 “뭐라고 표현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잘못은 했다고 생각하지만, 보수언론 등을 중심으로 한 심한 공격에 크게 놀랐다.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고 끌어내리려는 게 눈에 보이니까 힘이 많이 들었고, 결국 그 때문에 여론도 많이 떨어지지 않았나. 술에 취해 시비가 붙는 일은 분명 잘못했지만, 이렇게 크게 이슈화가 되다 보니 세월호 유가족들이 ‘공인 아닌 공인’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리기사를 ‘국정원’ 직원으로 오인한 것은 어쩌면 유가족들에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참사가 일어나고 팽목항에 있을 때부터 정보관들은 늘 유가족들을 따라다녔다. 진도체육관에서는 정보관과 같이 잠을 자기도 했다. 서울로 올라왔을 때는 진도에서처럼 밀착해 있지는 않았지만 이동할 때마다 유가족들 곁에는 어느 틈에 정보관들이 나타났다. 누구 아빠는 어디로 갔고, 누구 엄마는 어디로 갔는지 소재파악을 다 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당시 상황에서 반사적으로 ‘국정원’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박진 활동가는 ‘연대감을 끊어내려는 세력’의 ‘도덕적 흠집내기’가 성공한 것은 한국 사회의 기형적 도덕성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사회가 유가족들이 ‘온전한 피해자’로 있을 때만 지지했다고 지적하며 “한국 사회는 그런 점에서 너무 말이 안 되는 지점에서 도덕성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각 지역을 찾아가는 국민간담회에서도 대리기사 폭행사건을 두고 ‘실망했다’는 말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다. 박 활동가는 유가족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실수를 할 수 있는 것인데, 대중들이 이 비극의 주인공을 얼마나 도덕적으로 옳고 완벽한가를 따져묻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단식을 한 김영오씨도 ‘위대한 영웅’이 아니라 다만 자기 딸을 잃어버린 ‘평범한 아빠’다. 그는 “김영오씨가 이혼을 하고 이혼 후 딸들에게 어떤 아빠였는지 검증하는 것 자체가 한국 사회가 굉장히 야만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10월 16일 해양수산부·해양경찰청 국정감사에서 세월호 항해사가 증언하는 모습을 세월호 유가족이 지켜보고 있다. | 경향신문

‘경제적 공포’를 동원하는 것 또한 연대감을 끊어내는 데 성공했다. ‘대리기사 폭행사건’으로 여론이 싸늘해진 것은 겉으로 드러난 현상일 뿐, 그 이면에는 ‘먹고 사는 것’에 대한 공포가 누적돼 있다는 지적이다. 박권일 칼럼니스트는 “대리기사 폭행사건은 하나의 계기가 됐을 뿐, 기본적으로 중도층에는 세월호 피로감과 경기불황에 대한 공포가 있었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로 경기가 침체됐다는 이야기는 세월호 사건 직후부터 제기됐다. 그리고 이는 시간이 가면서 확대재생산됐다. 세월호 이전부터 수년간 경기는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문제에 대해 손쉽게 ‘세월호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박 칼럼니스트는 “중산층이나 자영업자들의 심리가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한 반감으로 돌아섰다기보다는 경제적 공포와 불안감 때문에 돌아섰다고 봐야 한다. 다만 지금까지는 불만이 있으면서 이를 대놓고 이야기하지 못했다면, 대리기사 폭행사건 이후로 대놓고 이를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 뿐이다”라고 말했다.

망각만 안 한다면 ‘2라운드’ 해볼 만
‘경제적 공포’로 연대의 고리가 끊어지는 것은 한국 사회가 안전판이 없는 사회라는 것을 방증한다. 강퍅한 경쟁사회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슬픔의 유효기간은 짧다. 박진 활동가는 ‘세월호 피로도’에 대한 논의를 들으며 SJM 용역 폭력사태를 떠올렸다. 그때 SJM 노동자들에게 폭력을 쓴 용역들은 대개가 대학생이다. 그들은 당시 “내 삶의 피로감이 너무 커서 노동자들의 고통이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200일 이후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연대감의 복원이다. 얼마 전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키 작은 어린이가 달리기를 못하는데, 반 아이들이 손을 잡고 함께 들어갔던 것이 화제가 됐다. 박진 활동가는 이를 ‘빼앗긴 연대감의 복원’이라고 설명했다. 아주 단순하고 비정치적인 사건에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억압돼 있던 연대감이 복원된 것이다. 박 활동가는 세월호 참사 또한 그러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세월호 가족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위해서 사실 그 연대감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세월호 참사로 그 연대감을 경험하면서 치유가 됐다. 세월호 참사가 끔찍한 비극이기도 하지만, 유가족들에게 자신들의 마음을 조금씩 내놓으면서 연대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한 치유의 시간이었다. 그런데 한쪽에서는 끊임없이 이 연대감을 끊어야 하는 사람이 있고, 이들은 힘을 갖고 있다. 순식간에 끊어지며 무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가 나아지려면 사람들이 연대감을 끊으려는 사람들을 향해서 연대감을 지키려는 강한 의지를 보여야 한다.”

외아들 영석이를 잃은 광화문광장 상황실장 오병환씨는 세월호 참사 직후 안산을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다. 안산에 가면 아이가 없는 부재의 시간을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다. 주변에서는 특별법 처리가 끝나면 오씨가 나쁜 생각을 할까봐 걱정이 많았다. 한 지인은 오씨가 아들의 유골함을 앞에 두고 “아빠가 싸움하고 나서 그 다음은 내가 결정할게”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걱정을 했다. 그러나 70일이 넘게 광화문광장에서 생활하면서 오씨는 몸은 고되지만, 찾아오는 시민들을 보고 기운을 얻는다. 그는 아직까지는 한국 사회에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많다고 믿는다. 아들이 꿈에 한 번만 찾아와서 “아버지, 걱정하지 마라. 엄마와 행복하게 살아라”고 말해주는 것이 그의 소원이다.

여야 합의로 세월호 특별법이 만들어지면 이제는 다시 세월호 국면 2라운드가 시작된다. 정치권에서는 각자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세월호 진상규명을 최우선 과제로 삼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정치일정상 힘을 받을 수도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내년 전대에서 새로 된 대표 입장에서는 세월호 문제를 강하게 밀고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일 것이고, 여당 또한 김무성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과 본격적인 거리두기를 할 상황이 올 수가 있다. 그렇다면 정치권에서도 세월호 진상규명이 탄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여론의 힘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박진 활동가는 “세월호 참사는 진상규명하려는 사람들과 진상을 숨기려는 사람들 간 힘겨루기다. 곧 있을 2라운드에서 국민들이 잊지 않고 기억해주면 충분히 해볼 수 있는 싸움이고, 특별법이 만들어졌다고 해서 가족들만의 외로운 싸움으로 남겨두면 그저 법·제도 안에서 누가 얼마만큼의 권한을 가지고 있느냐 정도의 싸움으로 그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