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청년 서울살이 ‘개고생?’

최저기준도 안 되는 열악한 주거실태… 1인가구 36%가 주거빈곤층

광주광역시 출신의 남자 대학생 권숙현씨(28)는 서울에서 7년째 살고 있다. 지금은 공무원시험 준비를 위해 동작구 노량진 학원가에 살고 있지만 지난해까지는 대학이 있는 동대문구에 살았다. 7년간의 서울생활 동안 여러 차례 이사를 거듭하며 권씨의 주거환경은 차츰 나빠져 왔다. 대학 입학과 함께 처음 상경했을 무렵만 해도 작은 원룸이나마 빌려 살았지만 하숙집을 거쳐 고시원으로 옮겨오면서 권씨만의 공간은 점점 오그라들었다. 가장 큰 이유는 월세부담 때문이었다. 권씨는 “처음엔 화장실도 부엌도 (개인 전용으로) 다 있었는데, 공동으로 쓰는 게 당연해지다가 이제는 세탁기와 냉장고까지 공용으로 쓰고 있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서울시 청년허브의 청년실태 자료와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자료에 따르면 서울에 살고 있는 244만명의 청년 중 43.5%인 약 110만명이 권씨와 같은 타 지방 출신이었다. 특히 이들 ‘지방청년’ 대부분의 가구형태인 1인가구의 경우 열악한 주거실태를 보이는 한편, 서울 안에서도 자치구에 따라 계층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정부가 정한 최저 주거기준인 ‘14㎡ 이상, 독립된 부엌 보유’ 기준에 못미치거나 지하·옥탑·고시원 등 비주택 주거공간에 살고 있어 주거빈곤층에 해당하는 비율은 이들 지방 출신 1인가구일수록 더 높았다. 서울 거주 전체 청년 가운데에서는 22.8%가 주거빈곤층인 데 비해, 1인가구의 경우 36.3%가 주거빈곤층에 해당된 것이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골목길에서 행인이 담장에 붙어 있는 고시원과 원룸 전단지를 보며 걷고 있다. | 김기남 기자

동작구·관악구 주거빈곤율 가장 높아
특히 지방청년들이 밀집한 자치구일수록 주거환경뿐만 아니라 임금수준도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내 자치구 중 청년인구 비율 1·2위인 관악구(36%)와 동작구(29.2%)는 청년 1인가구의 주거빈곤율도 동작구(55.8%)와 관악구(51.3%)가 자리를 바꾸어 1·2위를 기록했다. 게다가 청년 1인가구의 주거빈곤율이 가장 높은 동작구와 관악구를 비롯해 40% 이상인 금천구(48.5%), 중랑구(41.9%) 등 4개 구는 다른 구에 비해 청년층에 대한 임금수준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6개 구 가운데 구로구만이 평균 시급이 서울 평균인 5543원을 넘겼을 뿐, 나머지 5개 구는 모두 시급이 평균에 못미치는 5400원대에 머물렀다.

반면 ‘강남 3구’라 불리는 강남·서초·송파 3개 구는 상대적으로 높은 부동산 가격을 반영하듯 청년층의 주거빈곤 비율도 가장 낮았다. 강남구(20.9%), 서초구(23.7%), 송파구(25.3%)는 노원구(16.2%)를 제외하면 서울의 전체 자치구 중 청년 1인가구 주거빈곤율이 최저 수준이었다. 특히 강남구와 서초구는 평균 시급도 서울에서 2·3위를 차지해 청년층의 주거와 일자리라는 두 측면에서 관악구·동작구와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관악구는 신림동 일대 고시촌에 정착한 청년인구가 많아 청년인구 밀도도 가장 높았다. 그에 비해 청년층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아르바이트 일자리 시급은 세 번째로 낮았다. 관악구에 사는 대학생 김민균씨(26)가 불편한 교통에도 불구하고 강남 일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가까운 신림역 주변에도 술집이나 식당 같은 일자리는 많지만 강남역이나 압구정, 가로수길 쪽에 비하면 시급이 500원 정도 차이난다. 방학 동안 하루 10시간 정도 일한다고 치면 한 달에 최소 10만원 정도가 차이나는 셈이다.” 경남 창원 출신인 김씨 역시 대학은 마포구에 있고 아르바이트는 강남구에서 하지만 방값이 싼 동네를 찾아 집을 옮긴 경우다.

관악구 거주 지방청년의 높은 주거빈곤율은 신림동 고시촌에서 고시생이 떠난 자리를 지방청년이 메우는 것으로 설명된다. 로스쿨 제도가 도입된 후 사법시험 모집인원 수가 급감함에 따라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고시생 중 상당수가 신림동을 떠났다. 반면 줄어든 수요 때문에 몇 년째 머물러 있는 월세를 좇아 지방청년들은 계속 유입되고 있다. 다른 지역에 비해 비주택 주거공간인 고시원이 밀집한 상태는 그대로 유지된 반면, 지방청년의 인구비율은 높아진 것이다. “이쪽 동네도 이젠 고시생 없는 고시원이 꽤 많아요. 나이는 다들 젊은데 거의 다 서울사람은 아니죠. 지방에서 혼자 올라와서 돈 없으니까 이 동네로 몰리는 거죠.” 김씨는 자신이 사는 고시원에서도 고시생은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비슷한 연령대의 청년층이지만 고시생에서 직장인·대학생으로 주민 구성이 달라지면서 생긴 가장 큰 변화는 교통이다. 신림동의 부동산 중개업자 이수근씨(63)는 몇 년 새 변한 아침 풍경을 전했다. “몇 년 전만 해도 출근시간대에 버스 타는 사람 수가 지금만큼 많지는 않았지. 고시생들은 낮에도 이 동네에서 공부하니까. 고시생 대신 방값 때문에 이사온 젊은 사람들이 늘어나니까 아침에 정류장에 서 있는 사람들도 많아지더라고.”

저렴한 월세 때문에 관악구에 거주하지만 직장이나 학교는 다른 자치구로 다니는 경향은 통계로도 나타났다. 관악구는 청년층의 상주인구에 비해 주간 활동인구는 4만8700명이 적어 그 격차가 가장 큰 자치구였다.

지방 출신 청년 1인가구 71% 2년 안에 이사
지방 출신 청년들을 출신지역에 따라 분류하면 주민등록 인구가 많은 영남 출신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부산(3.8%)과 대구(2.1%), 울산 및 경남·북(7.3%) 출신을 합해 약 32만명이 영남 출신 청년이었다. 하지만 인구 대비로 따지면 호남 출신 청년이 타 지역에 비해 많았다. 광주(1.6%)와 전남·북(8.4%)을 더해 약 24만명의 청년이 서울에 살고 있어 해당 지역에 살고 있는 청년층 인구 91만명과 비교하면 26.3%가 고향을 떠난 셈이다. 출신 지역별 청년인구는 충청권 출신(대전·충남·충북) 청년이 약 15만명, 강원권 출신이 약 7만5000여명, 제주 출신이 1만4000여명으로 뒤를 이었다.

주거빈곤층에 포함되는 청년들을 비롯해 서울 거주 청년 1인가구의 절대다수가 지방 출신 청년이라는 점에서 이들을 위한 주거환경 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최저주거기준을 충족하는 거주공간을 확충하는 한편 소득이 불안정한 청년기에 맞춰 임대기간이 안정적으로 보장되는 공공임대주택을 늘리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청년허브는 “지방에서 온 청년들에게 가장 큰 부담이 전월세 비용이기 때문에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집은 최저주거기준에도 못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지방청년 1인가구 중 2년 안에 집을 옮기는 비율이 70.9%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불안정한 주거상황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