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약자에게 위로를, 강자에게 비판을

교황 프란치스코는 무엇을 남겼나…

한국 지도층도 ‘자기개혁 모범’ 배워야

교황 프란치스코가 4박5일의 짧은 방한 일정을 마치고 로마로 돌아간 지 벌써 일주가 지났다. 그러나 교황 열풍은 여전히 식을 줄 모른다. 요즘 대한민국은 ‘명량’의 이순신과 프란치스코 교황으로 들썩이고 있다. 서로 아무 관계도 없을 것 같은 이순신과 교황, 이들은 어떻게 대한민국의 신드롬이 되었을까.

‘명량’은 위인 이순신보다는 인간 이순신에 초점을 맞춘다. 인간 이순신은 두려움을 느낀다. 그는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는 힘에 희망을 건다. 바로 자기 자신의 희생이다. 그는 현 시대에 필요한 지도자로 부각된다. 세월호 참사, 군대 내 사고 등 끊이지 않는 비극적 사고에도 대한민국 지도자들은 책임 있는 자세와 희생의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 지도자들에 대한 불만과 실망이 큰 만큼, ‘명량’에 열광하는 정도는 커지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8월 15일 오후 충남 당진 솔뫼성지 내 김대건 신부 생가터를 찾아 헌화한 뒤 의자에 앉아 기도하고 있다. | 공동취재단

대한민국이 열광한 실천적 리더십
프란치스코 교황은 검소한 생활과 낮은 곳을 살피는 행보로 귀감이 돼 왔다. 한국에서도 낮은 곳을 향하는 그의 행보는 계속됐다. 세월호 유가족들을 비롯, 장애인, 위안부 할머니 등 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들과 함께했다. 특히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을 위로하는 데 정성을 쏟았다. 유민 아빠의 손을 직접 잡는가 하면, 십자가를 메고 38일 동안 800㎞를 걸은 승현 아빠에게 직접 세례를 주기도 했다. 미사에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제주 강정마을 주민, 밀양 송전탑 주민, 용산참사 피해자 등을 초청해 이들의 상처를 보듬었다.

교황은 돌아갔지만 그의 행보는 파격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가장 소외되고 약한 자들과 호흡하는 교황의 실천적인 리더십은 이 시대의 지도자들에게서 쉽게 발견할 수 없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열광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한국의 정치·종교 지도자들이 탁상공론을 일삼는 동안, 교황은 팽개쳐진 국민의 상처를 진정으로 위로하고 어루만졌다. 지금 국민들은 과거의 위인도, 외국인 종교 지도자도 아닌 대한민국의 지도자들이 진정한 신드롬의 주인공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박근혜 정권을 무안하게 만든 발언
지금까지 교황이 한국을 밟은 적은 모두 세 차례다. 1984년 전두환 정권 때, 1989년 노태우 정권 때 교황 요한 바오로2세가, 그리고 올해 2014년 박근혜 정권 때 교황 프란치스코가 한국에 왔다. 교황의 방한은 묘하게도 한국에 나쁜 정권이 있을 때였다. 교황 방한이 정치적으로 이용당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없을 수 없었다. 84, 89년에는 그런 염려를 뒷받침하는 이야기가 많았다. 이번 방한을 앞두고도 조바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박근혜 정권이 교황 방한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애쓴 흔적은 많았다. 그러나 교황 방한이 정권에 의해 정치적으로 이용당했다는 소리는 어느 쪽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교황 덕분에 박근혜 정권의 초라한 모습이 더 노출되었다는 지적은 풍성하다. 교황은 청와대에서 행한 연설에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더 강화되기를 바란다”고 말함으로써 박근혜 정권을 무안하게 만들었다. 그런 말은 사석에서 들어도 불쾌하게 여길 수 있는 말이다. 또 교황은 세월호 유가족을 방한 기간 내내 매일 만났고,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을 귀국행 비행기에서도 착용하였다. 누군가 노란 리본을 제거해 달라고 요구했다는 일화를 교황이 공개함으로써,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악의 세력의 못된 행각까지 폭로하였다. 한마디로 이번 교황 방한은 정치적으로 전혀 이용당하지 않았다.

교황은 오히려 박근혜 정권의 맨얼굴을 한국인에게 폭로하는 효과를 낳았다. TV 화면에 비친 교황과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은 완벽한 대조효과라고 부를 만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흰색과 검은색이 같은 화면에 나란히 비친 것처럼 말이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염수정 추기경은 흰색과 검은 색처럼 서로 대조적인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다. 교황은 먼 나라를 찾아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유가족을 위로했지만 염수정 추기경은 명동성당에서 가까운 광화문 단식장소를 한 번도 찾지 않은 사람이다. 그는 2009년 용산참사 때에도 현장을 한 번도 찾은 적 없다. 교황 옆에 서 있는 염수정 추기경의 모습이 초라하게 보인 것은 필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한국주교회의를 찾은 교황은 “악마로 하여금 여러분이 부자들을 위한 부유한 교회, 잘 나가는 이들의 교회가 되게 만들도록 허용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라고 주교들에게 강력히 경고하였다. 한마디로 교황은 종교적으로도 이용당하지 않았다. 교황과 달리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노란 리본을 단 주교는 거의 없었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꽃동네를 찾은 교황은 “부유하게 사는 수도자의 위선이 교회를 망친다”고 발언함으로써 곁에 있던 오웅진 신부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교황은 한국 사회의 정치·종교 지도층에게 은은하고 강력한 경고를 던진 셈이다. 한국천주교회에서 잘 나가는 사람들은 교황의 말씀에 남몰래 고개를 숙여야 했다. 교황의 높은 인기는 특히 한국 주교들에게도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천주교 개혁과 주교들의 개혁에 대한 신자들과 국민의 기대치가 한껏 높아졌기 때문이다.

방한 기간 동안 교황이 보여준 낮은 자세에 국민이 환호하고 있다. 가톨릭은 교황 효과로 냉담 신자들이 복귀하고, 입교자도 느는 등 위상이 높아질 것을 기대한다. 그러나 천주교에 쏠리는 관심을 어떻게 교회 안에서 소화할지 고민도 있다. 천주교계가 실질적인 공동체의 발전을 이뤄내지 못할 경우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 국민은 교황에게 열광한 것이지 한국천주교회나 한국 주교들에게 열광한 것이 아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참수당한 미국인 기자 제임스 폴리의 부모에게 위로전화를 했다. 교황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이들 부부를 위로했다.

‘약자에게 위로를, 강자에게 비판’을 선사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한국 사회는 많이 배워야 한다. ‘위로부터의 개혁’을 몸소 보여준 교황에게 한국의 지도층은 자기개혁의 모범을 배워야 할 것이다. 자기개혁의 과제는 이제 우리 몫이다.

김근수 <교황과 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