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 쌍용차 사태 그 후]“해고자들 ‘일상의 복원’ 가장 중요”

쌍용차 해고자와 가족을 위한 심리치유센터 ‘와락’ 연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

물화(物化).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은 물건처럼 사고 팔린다. 돈을 좇아 사람을 쓰고 버리는 것도 쉬워졌다. 정리해고가 그 단적인 예다. 그러나 물건과 달리 마음이 있는 인간은 물화에 상처받는다. 2009년 쌍용차 사태가 그랬다. 갑작스럽게 2500여명이 정리해고를 당했고, 그 과정에서 공권력의 폭력적인 진압이 있었다. 물화의 극단에서 상처받은 몇몇은 죽음을 선택했다. 2년 동안 17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정혜신 마인드프리즘 대표 / 김석구 기자

“사람에게는 마음이 있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는 물화된 사회에서 사람의 ‘마음’을 이야기한다. 사람의 마음을 ‘와락’ 안아줄 수 있는 환대와 보살핌을 강조하며 마음을 알 때 세상도 변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지난 3월부터 쌍용차 해고자와 그 가족들을 위한 심리상담을 이어오고 있다. 오는 10월 30일, 쌍용차 해고자와 그 가족들을 위한 심리치유센터 ‘와락’이 문을 연다. ‘와락’은 평택1호점을 시작으로 부산영도점, 강정마을점 등으로 퍼져나가는 꿈을 꾸고 있다.

심리치유센터 ‘와락’을 기획하게 된 이유는.
“쌍용차 해고자와 그 가족들이 겪는 심리적 고통은 한 개인의 부분적 문제가 아니라 가족, 집단, 나아가 지역사회의 문제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이들의 심리적 상처는 그 범위가 굉장히 깊고 넓다. 지난 3월부터 쌍용차 해고자와 그 가족들을 대상으로 심리상담을 해오면서 조금 더 집중적이고 안정적인 환경에서 치료를 지속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와락’을 준비하게 됐다.”

얼마 전 희망퇴직자가 또 자살했다. 17번째 죽음이었고 자살이었다. 여전히 심리적으로 위험한 상황에 있는 해고자들이 많은 것 같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다. 이게 인구 10만명당 30여명의 비율이다. 쌍용차 해고자는 2500명 중 17명이 죽었다. 있을 수 없는 자살률이다. 상담을 시작하면서 내가 계속 했던 이야기가 ‘더 죽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상담을 했던 사람들 중 자살을 시도한 사람이 절반이 넘었고, 심각한 자살충동에 시달린 사람들도 거의 80%였다. ‘와락’이 시급하게 필요한 이유다.”

이번 자살자의 경우 외부와의 연락을 끊은 채 혼자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공장을 떠난 2500명 중 연락이 안 되고 있는 사람들을 ‘와락’으로 이끌어내는 것도 시급한 문제인 것 같다.
“고인의 홀어머니가 ‘정신과 상담을 받고 싶었는데 이런 게 있는지 몰랐다’며 ‘있는 줄 알았으면 갔었을 텐데’라며 우시더라. 위험하게 혼자 고립된 사람들이 너무 많다. 알려야 한다. 연락을 끊고 지내는 사람들을 찾아내고 그 사람들에게 파고들어 소통의 끈을 만들어야 한다. 가가호호 방문하고 연락이 안 된 사람들의 연락처를 확보할 것이다. ‘와락’이 ‘죽어버릴까’라는 극단적인 생각이 드는 순간에 ‘마지막으로 한 번 가봐?’라고 떠올릴 수 있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와락’이 병원처럼 심리치료만을 하는 곳은 아닐 것 같다.
“가장 핵심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일상의 복원’이다. 전문적·의학적 치료부터 일상적 치유의 영역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준비하고 있다. 전문가가 상담하는 의료적인 부분도 중요하지만 더 보편적이고 넓고 깊은 치유의 근간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일상의 복원이 가장 필요하다. 쌍용차 해고자들 대다수가 부부관계, 이웃관계, 이런 일상이 다 무너진 사람들이다. 그들이 ‘와락’이 자신들을 위한 공간이며 ‘와락’에 가면 보살핌을 받는다는 느낌을 받도록 할 것이다. ‘나도 옛날에 이렇게 살았지, 이렇게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존재지’라는 자극을 일상에서 많이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일상의 복원’을 위해 중점을 둔 프로그램이 있다면.
“식당이다. 치유의 시작이자 핵심은 일상의 기본인 밥을 먹는 것이다. ‘와락’에서는 따뜻하고 정갈한 밥을 늘 공급할 것이다. 엄마가 따뜻한 밥을 해주듯이 기본적인 보살핌을 받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쌍용차 투쟁에 앞장서며 시위나 집회 현장을 자주 돌아다녔던 조합원들에게는 원칙이 있었다. 어디를 가든 밥값 5000원 이하로 먹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식당에만 가면 물어보는 게 밥값 얼마냐는 것이다. 제대로 밥을 먹지 못하면서 2년 동안 떠돌아다녔던 사람들이다. 어떤 조합원은 집과 통장이 가압류되면서 2년 동안 하루 한 끼만 먹으며 생활했다. 80평 정도의 공간이 있는데 상담실, 놀이치료실 외에는 와락 카페, 와락 레스토랑 등 모두 일상의 공간이 될 것이다.”

‘와락’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있었다.
“많은 분들이 함께 만들어가고 있고 이분들이 모두 치유자로 개입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금을 해주신 분들 중 제일 처음 2000만원 종잣돈을 마련해 주신 분들이 ‘진실의 힘’ 고문 피해자 분들이다. 지옥을 경험한 분들이라 사람의 고통에 대해 굉장히 민감하다. 센터 공사나 청소는 ‘김제동과 몸뚱아리들’이 지원해주고 있다. 그 밖에도 트위터 등에서 모금해주시는 분들도 많고 기업 CEO들의 후원도 있다.”

CEO들의 후원은 좀 의외다.
“고객들 중 CEO나 기업 임원들이 많다. 기부를 한 CEO 중 노사 갈등을 심각하게 경험한 분도 있었다. 그분이 하는 말이 해고문제를 정책적 입장에서 회사의 방침으로만 생각하고 처리해 왔지 해고자들의 마음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죄의식을 느낀다는 말을 하는 분들이 있다. 나는 사람의 마음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고 움직이는지를 안다면 세상이 훨씬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평택 외의 곳에도 ‘와락’ 센터를 만들어갈 생각인가.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PTSD)이 너무 많이 생겨나고 있는 상황이라 치유 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하다. 와락 강정마을점, 와락 부산영도점도 생길 수 있다. 쌍용차 해고자 상담을 몇 달째 하다보니 치유가 필요하다는 연락이 전국에서 온다. 강정에서도 오고 한진에서도 오고 유성에서도 왔다. 연락을 받으면 한달음에 가고 싶다. 그러나 마음의 상처는 내가 한두 번 이벤트처럼 상담해준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지속적으로 갈 수 있어야 하는데 물리적으로 어렵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지금은 평택에만 집중하고 있다. 평택 와락이 치유시스템을 잘 만들어 잘 구동이 된다면 이 시스템을 그대로 가져가 필요한 곳에 이식을 하면 된다. 결국 여기가 잘 되어야 여러 곳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국가나 사회가 할 일을 대신하고 있다.
“공권력이 투입되면서 생긴 무지막지한 일이다. 결국 국가가 나서야 하는데 그동안 기다릴 수가 없어서 많은 사람들의 힘을 모아서 시작했다. PTSD는 정치·사회적인 맥락에서 발생하는 질병이다. 전쟁터에 다녀왔던 사람들, 테러를 겪은 사람들, 폭력적 진압을 겪은 사람들, 고문을 당한 사람들 모두 PTSD를 앓고 있는 것이다. 저지른 자가 수습을 해야 하는데… 지금은 거기까지 가기 위한 과정이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