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구럼비는 인간을 사랑했지만 인간은 구럼비를 버렸다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로 파괴된 너른 통바위 이야기

제주 강정마을은 정부의 해군기지 추진으로 4년 넘게 공권력에 시달려 왔다. 여균동 감독은 강정마을을 지키기 위해 찾아온 ‘자발적 평화유배자’ 중 하나다. 그는 해군기지 건설을 “민주주의 절차를 무시한 국가폭력”이라고 말한다. <편집자 주>

9월 7일 오후 3시 30분쯤 해군기지 건설 예정지 제주도 강정마을에서 굴착기 한 대가 구럼비 바위를 깨고 있다. 독자 고승민씨가 경향신문에 보내온 사진.

제주도 강정마을 구럼비 바위에 관한 조그만 이야기를 해볼 참이었습니다. 아니 구럼비 바위를 거닐며 혼자 생각해본 거짓말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때가 되면 좀 더 많은 자료와 사진들을 모아 이야기책으로 만들까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책을 만드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구럼비를 재미있게 알리면 좋겠다는 소박한 마음이었습니다. 차일피일 미뤘지요. 트위터에 ‘구럼비 바위 이야기’라고 해서 장난삼아 몇 개 올려본 게 전부입니다.

몇백만년 동안 묵묵히 인간과 공존
게으름 탓에 언젠가 해야지 하다가 큰코 다쳤습니다. 어느 날 펜스가 쳐지고 저는 망연자실했습니다. 활동가 한 분이 1㎞를 헤엄쳐 가서 찍어온 사진에 가슴이 무너졌습니다. 구럼비 바위를 부숴서 공사차량이 다닐 수 있게 길을 만들었습니다.

구럼비 바위는 몇백만년 동안 묵묵히 사람과 함께 한 너른 통바위입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며 명상하며 희망하며 걸을 수 있는 너럭바위들의 한덩어리 집합체입니다. 그걸 깨서 공사차량이 다니게끔 길을 만들어놓았습니다.
가슴이 무너져내린다는 말을 실감했습니다. 한동안 멍하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눈물도 나지 않았습니다. 실성한 사람처럼 온종일 트위터에서 강정마을 관련 글에 몇 마디 답만 달고 있는 무력한 내 모습을 보고 있었습니다.

구럼비 바위의 부서진 부분은 내가 가장 많이 다니며 이야기를 한 곳입니다. 내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기도 했지요. 이제 사라졌습니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먼 훗날 뼈저리게 알게 되겠지요. 땅을 치고 후회해도 구럼비의 원모습은 되돌아오지 않을 겁니다. 몇백만년 된 바위가 인간의 눈에는 생명이 없는 돌덩이로 보이겠지만 그건 인간의 오만입니다. 인간보다 오래된 존재에 대한 예의 없는 폭력입니다.

여러 사람들이 구럼비를 찍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제겐 몇 장의 사진만이 남겨져 있습니다. 바위마다 각각의 이름이 혹은 사연이 혹은 언어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나한테는 그들의 말을 들을 만한 내공이 없는 관계로 억지로 내가 먼저 말을 붙여보려 했습니다. 눈에 띄는 모양이 있기도 하고 햇살에 따라 다르게 보여지기도 합니다.

문자가 날아옵니다.
“강정속보!!! 30분 전부터 포클레인 2대가 구럼비를 깨고 있습니다. 비상!!”
“강정속보!!! 10시 50분까지 강정 코사마트 사거리로 무조건 집합!! 오늘 11시 미사는 공사장 정문에서!! 탄압하면 저항입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문득 9월 2일 새벽이 떠오릅니다. 사이렌 소리가 요란했습니다. 소설에서나 읽고 영화에서나 들었던 그 사이렌이 마을회관에서 마을 전체로 울려 퍼집니다. 끊임없이 퍼집니다. “경찰과 해군이 구럼비로 쳐들어옵니다. 마을주민들은 중덕삼거리로 모여주십시오. 다시 한 번 알립니다!” 사이렌이 울립니다.

그날 경찰과 해군은 펜스를 쳤습니다. 불의한 폭력과 침략에 맞서던 주민과 평화유배자들(자발적으로 강정마을을 찾은 사람들) 35명이 잡혀가고 4명이 구속됐습니다. 4년 6개월 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도발에 맞서온 주민들은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허허로운 저항이었습니다. 때리면 맞고, 잡아가면 잡혀가고, 벌금 나오면 벌금 내면서 경찰과 군대 앞에 맨살을 드러낸 채 서 있었습니다. 과연 이렇게 주민을 적처럼 공격하고 무릎을 꿇리는 안보가 뭔지, 국책사업의 목적이 뭔지, 평화로운 마을의 행복을 앗아가는 군대가 지키려는 것이 무엇인지 의심스럽습니다.

평화로운 마을의 행복 앗아가
강정마을에 해군기지 건설이 결정된 것은 민주주의 절차를 무시한 국가폭력이었습니다. 주민 1500명 중 80여명의 찬성으로, 그것도 충분한 토론도 없이 한 달 만에 추진된 사업입니다. 믿기지 않지만 그랬답니다. 그 후 주민들 800여명이 모여 ‘80명의 찬성’을 주도한 마을 이장을 탄핵하고 주민투표를 새로 했습니다. 여기서 90% 넘는 주민들이 해군기지 건설 반대 의사를 전했지만 국책사업이라는 미명으로 무시됐습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환경영향평가 없이 사업이 승인됐고, 꼼수와 폭력으로 주민은 피폐해져 갔습니다. 안보를 빙자한 국책사업 앞에서는 국민의 주권이나 행복추구권, 민주적 절차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명절 때 합동으로 제사를 지내던 마을공동체의 모습도 해군기지 논란 이후 사라졌습니다. 올해 추석에 오랜만에 평화유배자들과 마을주민들이 함께 합동차례를 지냈습니다.

(왼쪽) 강정마을 주민들은 맑은 날 한라산을 보면 제주도 설화 속 창조자인 ‘설문대할망’이 누워 있는 모습이 보인다고 한다. 여 감독은 “처음 여기에 왔을 때 설문대할망이 앉아 있던 곳이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실제로는 꽤 커다란 의자 모습이다. <br>(오른쪽) 천년을 높이 날던 나비가 비로소 쉴 곳을 찾아 천년을 앉아 있다가 무늬가 되어버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바위. 여 감독은 “트위터 친구들이 장자의 나비바위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 여균동 감독 제공

(왼쪽) 강정마을 주민들은 맑은 날 한라산을 보면 제주도 설화 속 창조자인 ‘설문대할망’이 누워 있는 모습이 보인다고 한다. 여 감독은 “처음 여기에 왔을 때 설문대할망이 앉아 있던 곳이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실제로는 꽤 커다란 의자 모습이다.
(오른쪽) 천년을 높이 날던 나비가 비로소 쉴 곳을 찾아 천년을 앉아 있다가 무늬가 되어버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바위. 여 감독은 “트위터 친구들이 장자의 나비바위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 여균동 감독 제공

심지어 최근에는 이 지역에서 문화재가 발굴되기도 했습니다. 강정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곳은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다. 제주도에서 유일하게 쌀농사가 되는 지역이다. 지금이 살기 좋았다면 천년 전에도 살기 좋았을 것이고, 바다에 인접한 지역에 많은 조상들이 살았을 것이며, 문화재도 분명히 숨 쉬고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해군기지 부지에서 청동기부터 초기 철기, 조선 후기까지의 다양한 유물이 나왔습니다. 황평우 전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도 “이는 국가사적인 제주 삼양동 선사 유적지와 맞먹는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위에 펜스가 쳐졌습니다. 불도저로 그 위에 철심을 박았습니다. 폭력적 삽질로 만들어지는 해군기지의 현실입니다.

4년 6개월 간의 주민들의 끈질긴 버팀과 싸움으로 이제 강정마을 문제는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됩니다. 심지어 노엄 촘스키 교수까지 나서서 강정의 싸움을 ‘거룩한 싸움’이라고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정부의 대양해군 전력강화, 석유수송로 보호라는 명분에 의심을 갖는 사람도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제주 해군기지가 미군의 동북아 해군기지가 될 것이라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위키리크스에도 재주 해군기지를 바라보는 미국의 입장이 나타났습니다. 제주 해군기지가 동북아 화약고의 역할을 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제주도에 해군기지가 생기면 중국과의 긴장관계가 형성될 것입니다. 중국인들의 제주 관광이 줄어들 것입니다. 한 중국 학자는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중국인들의 제주관광을 금지시켜야 한다는 발언도 했습니다. 또한 군사기지가 들어서면 근처에 퇴폐향락업소가 자리잡을 것이고, 강정마을은 삭막한 군사도시로 전락하게 될 것입니다. 아니 제주도 전체가 군사요새화되고 평화로운 삶은 송두리째 사라질 겁니다. 누가 그러더군요. 제주도의 역사가 군사적으로 이용당했던 역사라고. 이제야 평화의 섬으로 되살아나는가 싶더니 결국 그 역사가 반복되나 봅니다.

제주 해군기지 문제를 통해 많은 질문을 던져보게 됐습니다. 국책사업에서 지자체와 주민의 역할은 무엇인가? 대양해군의 꿈은 현실적인가? 국책사업과 문화재 보호가 충돌하면 어찌해야 하나? 사회구성원의 동의 없이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하는 사업을 추진해도 되는가? 수도 없이 많은 질문이 쌓여가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주민의 행복과 희망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질문들보다 더 절실한 것은 지금 이 시간에 구럼비 바위가 쪼개져나가는 걸 막아야 한다는 겁니다.

구럼비의 상처·눈물 닦아줄 방법은
지금 강정 구럼비 바위 넘어 중덕삼거리까지 펜스와 감시카메라가 설치됐습니다. 주민들과 평화유배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기 위함입니다. 땅을 빼앗겼다는 게 실감납니다. 펜스 넘어 구럼비에 철심이 박히고 산산이 쪼개져나가는 걸 망연히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가슴이 무너지고 온살이 찢겨져 나가는 아픔에 온종일 발을 구르고 공사장 정문에서 온몸으로 절규해도 철벽을 치고, 덤프트럭은 시커먼 매연을 뿜으며 구럼비로 향합니다. 구럼비의 상처와 눈물을 쓰다듬고 닦아줄 방법이 없습니다.

현재 해군은 중덕삼거리 부근 농성장 및 시설물을 자진철거할 것을 통보하면서 행정대집행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바닷속 모래를 준설하고 그 위에 콘크리트 구조물을 붓고, 구럼비 바위 발파작업을 한다는 흉흉한 소문, 이로 인한 불안감과 두려움이 강정마을을 맴돌고 있습니다.

국가와 해군은 항상 경직된 모습으로 주민들을 대했지만, 오랫동안 고초를 겪은 주민들의 의식은 점차 달라지고 있습니다. 올해 오랜만에 합동 차례를 지냈습니다. 이제 주민들은 민주주의, 안보, 평화, 생태, 역사 등 거대한 단어 앞에 주눅들지 않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주인공으로 생각하고 있고, 외지에서 강정으로 찾아오는 사람들도 주인으로 대접해주는 벽이 허물어진 평화의 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강정으로 주민등록을 옮기고 정착하는 사람도 늘고 있습니다. 국가와 자본의 침탈은 마을을 파괴시킬 수 없으리라 믿습니다.

9월 24일엔 서울에서 강정마을 후원 주점이 열렸습니다. 공권력에 의해 제기된 각종 경제적·법률적 부담을 떠안은 주민들의 고통을 덜기 위해 서울에서 열리는 평화번개입니다. 벌금대납 시민행동 ‘쫄지만 캠페인’도 전개될 예정입니다. 국회와 제주 도의회에서도 야당들이 힘을 합치고 있습니다.

10월 1일에는 평화비행기가 하늘을 수놓을 겁니다. 평화버스, 평화자전거, 평화의 배 등 희망을 찾는 시민들이 평화의 마을 강정에서 구럼비의 신음을 들으러 올 겁니다. 구럼비 이야기를 들으러 올 겁니다.

구럼비를 되찾고 싶습니다. 매일 백배서원을 하던 분들이 정갈하게 구럼비에서 아침을 맞이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맨발로 게으른 걸음으로 구럼비 바위가 전하는 목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강정을 지켜나가고 싶습니다. 강정에 우리의 얼굴이, 우리의 무늬가 있습니다.

여균동<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