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보다 못한 ‘고대녀’ 출교운동 나섰다

성추행 의대생 징계 촉구에 재학생 소극적… 재입학 불가능한 출교 처분해야

2006년 고려대 측에 의해 출교조치를 당했던 출교생들이 성추행 의대생 출교운동에 나섰다. 8월 26일 출교생들과 21개 고려대학 내 단체는 고려대 본관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성추행 고려대 의대생들의 출교조치를 강력히 요구한다”는 뜻을 밝혔다. 출교생 안형우씨(28·국어교육과 졸업)는 기자회견에서 “학교 측은 성추행범에 대한 교화 가능성을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출교당했을 때는 교화 가능성을 말하지 않았다. 학교에 저항하는 행위가 성추행보다 더 나쁜 것이냐”고 발언했다.

기자회견의 사회를 맡은 출교생 김지윤씨(27·사회학과 4학년)는 당시 출교생 중 유일한 재학생이다. 현재는 문과대학 학생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씨는 3년 전 한 토론회에서 한승수 당시 국무총리를 곤혹스럽게 한 질문을 날려 유명세를 탔다. 이를 계기로 김씨는 ‘고대녀’라는 별칭을 얻었다.

퇴학 조치만으로 피해자 학습권 보장 못해

2006년 고대생 출교사태의 당사자인 ‘고대녀’ 김지윤씨는 “학생운동에 대해 14일 만에 출교를 결정하면서 성추행범에게는 70일 넘게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 것은 위선”이라고 말했다. / 백철 기자

5년 전의 출교는 김씨에게 일종의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출교 당시 김씨는 다른 출교생들과 함께 고려대 본관 앞에서 삭발식을 했다. 어윤대 당시 고려대 총장이 출교생들의 면담 요구를 묵살한 직후였다. 삭발식에서 김씨와 출교생들은 “학교는 학생을 죽이는 징계를 결정하고 나서 자기들끼리 4·19 기념식 축배를 들었다. 무엇이 참다운 4·19 정신이냐”라고 외쳤다. 지금 이 사건은 ‘고대 교수 감금사태’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김씨는 분명한 어조로 “성추행 의대생들은 출교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피해자의 뜻을 대변하는 피해자 가족들이 가해자들의 출교를 원하고 있다. 현재 학교 측이 출교가 아닌 퇴학을 결정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는데, 퇴학조치는 피해자의 학습권을 온전히 보장하는 조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씨를 비롯한 출교생들이 ‘퇴학’이 아닌 ‘출교’를 요구하는 이유는 고려대 학칙에 있다. 학칙상 퇴학과 출교의 의미가 사뭇 다르다. 둘 다 학교에서 ‘제적’된다는 점은 같지만 퇴학은 재입학이 가능한 반면, 출교는 ‘영구제적’이라는 점이 다르다.

고려대 학칙 제22조에 따르면 퇴학생은 정원에 결원이 있을 경우 퇴학된 날로부터 1년이 경과된 이후에 재입학할 수 있다. 재입학신청서 등 서류를 갖추어 해당 단과대학 학장에게 재입학 신청을 하면 총장의 허가로 다시 학교에 다닐 수 있다. 반면 학칙의 같은 조항에는 “출교처분된 자는 재입학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퇴학의 경우, 지도교수의 요청에 따라 징계를 해제받을 수도 있다. 고려대 학생상벌 시행세칙 제15조에 따르면, 지도교수가 징계학생에 대한 특별지도 결과보고서와 징계 해제에 대한 의견서를 해당 단과대학 학장에게 제출한 뒤 학장이 총장에게 징계 해제 건의를 하면 해당 학생의 퇴학조치가 해제되게 된다.

김씨는 재학생들이 좀 더 단호하게 성추행 의대생들에 대한 출교를 외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재학생들이 앞장서서 학교 측에 단호한 대처를 요구해야 한다. 하지만 출교를 명확하게 얘기하지 않는다면 가해자들을 퇴학시키는 선에서 마무리지을 방침을 세우고 있는 학교 측의 입장에 힘을 실어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70일 넘게 징계 미루는 학교 위선적’
김씨는 고려대 측의 위선도 비판했다. 그는 “학생운동에 대해서는 14일 만에 출교를 결정하면서 성추행범에 대해서는 70일 넘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학교 측이 위선적이라고 생각한다. 학교 측의 늑장대응 때문에 피해자에 대한 뜬소문만 많아지고 결과적으로 피해자에게 더 큰 상처로 돌아오지 않을까 염려된다”고 말했다.

8월 26일 고려대 본관 앞에서 성추행 의대생들의 출교조치를 요구하는 기자회견. 출교생 안형우씨가 발언하고 있다. / 박철 기자

기자회견 이전까지 재학생 단체 중 성추행 의대생들의 징계를 요구하는 단체는 ‘고려대 반성폭력 연대회의’(연대회의)가 유일했다. 연대회의는 학내에 여성주의 문제에 공감하는 학생들이 만든 임시 단체다.

현재 연대회의는 ‘합당하고 정당한 징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연대회의에서 활동 중인 김푸른솔씨는 “피해자 입장에서 출교를 말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할 수 있는데, 재학생 입장에서는 표현에 있어서 신중할 필요가 있다. 징계 수위보다는 피해자의 학습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주력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고려대 총학생회 측 역시 직접적으로 ‘출교’를 외치는 데에는 부담감을 표했다. 조우리 총학생회장도 기자회견에 참석은 했지만, 발언을 하진 않았다. 조 회장은 기자에게 “06년 출교생들과 지금 의대생들에 대해 학교가 이중잣대를 가지고 있다는 문제인식이 있어서 이 자리에 나왔다. 출교냐 퇴학이냐라는 문제보다는 학교 측이 성추행 사건에 대해 빠르고 적극적인 해결방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고 전했다.

한편 고려대 의료원 관계자는 “8월 안으로 결정을 내릴 것”이라며 “퇴학으로 보도가 나왔지만 퇴학인지 출교인지 확정된 것은 없다”고 답했다. 징계위원회 위원장인 엄창섭 고려대 의대 교수에게 전화통화를 시도했지만 “구체적 사안은 말씀드리기 곤란하다”는 답만 돌아왔다.

고대생 출교 사태는?

소위 ‘감금 사태’는 2006년 4월에 벌어진 일이다. 2006년 초 고려대는 병설보건대를 본교로 통합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고려대 측은 병설보건대 시설과 교수들을 본교로 통합시킨 반면, 학생들은 병설보건대 신분을 유지시켰다. 심지어 본교 학생들이 병설보건대 학생들에게 학생회 투표권을 부여하려 하자, 고려대 측은 공지사항을 통해 고려대 학생이 아닌 병설보건대 학생들에게 투표권을 줄 수 없다고 못박았다.

2006년 4월 5일. ‘감금 사태’의 당일이다. 보건대 학생 60여명이 고려대 본관 앞에서 집회를 열고 본교 학생들과 함께 처장단에 진정서를 제출하러 간 날이었다. 통합과정에서 소외된 데 이어 학생회 투표권까지 학교로부터 부정당한 데 따른 결과였다. 당시 처장단은 본관으로 찾아온 보건대 학생들에게 “고대생만 떠들어라” “2·3년제와 4년제가 어떻게 같냐”는 말을 하며 진정서를 받지 않았다. 학생들과 처장단의 줄다리기는 17시간 동안 계속됐고, 고려대 측은 이 일을 ‘교수 감금사태’로 발표했다.

고려대 측의 징계는 신속했다. 사건 발생 12일 만에 징계위가 꾸려졌고, 2일 만에 7명 출교, 5명 정학, 7명 견책이 결정됐다. 애초에 시위를 주도했던 보건대 학생들은 보건대 차원에서의 징계위에서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았다.

징계 대상이 된 19명은 전원 본교생들로, 2004년 고려대 본관 점거농성, 2005년 이건희 회장 명예박사학위 수여 반대집회를 주도했던 학생들이었다. 이 때문에 당시 학내 운동권에 대한 ‘표적 징계’가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다. 집회가 시작된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난 한밤중에 고려대 본관에 도착해 아무런 발언도 하지 않았던 학생도 징계 대상에 포함됐다. 이후 7명의 출교생들은 고려대 당국과의 지난한 법적 다툼을 통해 징계를 철회시키고 재학생 신분을 회복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