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20대 세대론 여전히 유효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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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운동을 넘어선 새로운 방향 모색중

홍대 인근 두리반에서 ‘싸우는 20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주제의 집담회가 1월 11일 열렸다. ‘20대’, ‘우리’. 그러니까 20대 당사자 운동과 관련한 토론이다. ‘88만원 세대’ 후 세대론은 뜨거운 감자다. ‘88만원 세대’의 공저자인 우석훈 교수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88만원 세대’는 20대가 받아들이기 쉽게 만든, 일종의 당의정이라는 표현을 했다. 세대론이라는 ‘당의(糖衣)’가 가리고 있는 쓴 현실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비정규직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이들 세대의 운명이다. 스펙을 쌓기 위한 토익책을 놓고 자신의 미래인 비정규직과 연대하기 위해 ‘짱돌’을 들라. 우 교수의 바람은 아직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당사자 운동은 아직 불붙지 않았다. 이날 열린 행사는 ‘20대 세대론 이후’를 모색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1월 11일, 홍대 인근 칼국수 집 두리반에서 20대 집담회에 참석한 토론자들이 발언을 하고 있다. |정용인 기자

1월 11일, 홍대 인근 칼국수 집 두리반에서 20대 집담회에 참석한 토론자들이 발언을 하고 있다. |정용인 기자

여전히 계속되는 20대의 ‘싸움’
“2008년도의 어느 날, 경영난을 겪던 대학을 드디어 대기업이 인수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두산’이 인수했다는 소식에 일부는 우려를 했지만, 그때는 구체적으로 지금과 같은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노영수씨는 중앙대에서 퇴학 처분을 받았다. 타워크레인에 올라가 학과 구조조정안이 의결되는 이사회를 비판하는 고공시위를 벌였기 때문이다. 노씨는 “봄 농활을 다녀왔는데 ‘너 퇴학’이라는 문자를 받았다”며 웃었다. 씁쓸한 웃음이다. “두타 앞에서 학교를 비판하는 퍼포먼스를 하다가 고발당했다. 또 두산중공업 기획실 쪽 사람들이 와서 우리 투쟁을 감시하다가 사찰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국예술종합대학교(한예종) 학생 김주현 씨의 싸움 대상도 1차적으로 학교당국이었지만 배후에는 ‘정권의 외압’이 있었다. “한예종이 2~3년에 한 차례씩 정기감사를 받아왔다. 그런데 2009년 3월의 종합감사는 유례없이 강도가 높았다. 결국 5월 18일, 총장과 일부 교수의 중징계, 이론과 축소, 통섭교육 중지 등 12건의 주의, 개선, 징계처분을 요구하는 감사결과가 나왔다.”

이튿날 황지우 당시 총장은 항의 기자회견을 열고 총장직을 사퇴한다. 감사가 ‘한예종의 근간을 흔들려는 모종의 계획’ 아래 진행된 것이라고 판단한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했다. 영상이론과 학생이던 김씨는 그해 비대위 위원장을 맡았다. “500여 명이 모여 밤새 투쟁방향을 논의했다. 결국 오전 7시, 감사결과는 학교 자율성·교수권을 침해한 행위라는 결론을 내고 집단행동에 들어갔다.”

노씨나 김씨나 ‘싸움’을 했다. 하지만 그 ‘투쟁’은 운동권 중심의 80~90년대와 달랐다. 싸움에 대한 ‘상대방’의 대응양식도 달랐다. 타워크레인에 올라간 중앙대 노씨는 학교 측으로부터 2500만원 손해배상 청구를 받았다. “그 이전부터 조짐이 있었다. 학교본부 앞 나무에 플래카드 천을 찢어 붉은색 검은색 천으로 도배해 놨는데, 학교 측에서 철거하기 위해 크레인을 불렀으니 대집행 비용 200만원을 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20만원에 해결한 적도 있다.”

전통적 운동담론이 사라진 대학가에서 벌어진 새로운 양태의 싸움이다. 한예종 김씨는 “‘밤샘토론’에서 제일 논란이 된 것이 진보세력과의 연대 문제였다”고 말한다. 과연 한예종의 싸움은 정권과 맞지 않은 일부 진보인사를 배제하는 데서 비롯된 문제인가. 한예종 비대위는 진보라고 할 수 있는가.

노동현장도 상황은 비슷하다. 30대 초반이지만 이날 ‘싸우는 20대’에 패널로 초청된 우상수씨는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였다. 그의 싸움은 어떤 노동운동 이념이나 조직에 추동된 것이 아니다. “해고 전까지는 노동운동을 모르는, 일만 열심히 하는 노동자였다.” 25일간의 현대자동차 생산라인 점거싸움도 계획된 것이 아니었다. “몰리다보니 올라가서 점거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호소했다. “비정규직이라는 단어는 일본이나 아시아 변방에만 있는 말로 알고 있다. 여기 토론회에 참석한 여러분도 사회에 나가면 비정규직으로 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사람은 1회용품이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두리반’에 모인 사람들의 저항. 이들의 싸움도 기존 운동담론으로 포착하기 힘들다. ‘포크(음악)노동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단편선씨는 농성 1주년 기자회견 당시 “한 ‘찌질이’로서 내년에도 열심히 노래하고 술마시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 1일 노동절, 홍대의 인디밴드를 비롯한 이들 문화생산자는 두리반에 모여 <51+>라는 자립음악회를 열었다. 애초에 “500명이 모이면 성공”이라고 했는데, 3000명 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진보는 20대 현실 포괄할 수 있는가
‘두리반’은 대안적인 공간이 되었다. 그들은 ‘자치’를 모색했다. 10여 개의 자치와 연대 규약이 자연스럽게 마련되었다. 문화를 매개로 한 이들의 자치투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엄기호씨가 펴낸 책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에 쪽글 형태로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던 대학생 정혜교씨는 소위 “김예슬이 될 수 없는 ‘지잡대’ 20대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우리가 싸우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단지 싸움의 대상이 다를 뿐.”(<주간경향> 898호 커버스토리 기사 참조) 그는 진보세력에 대한 불만도 털어놓았다. “진보의 스펙트럼은 지금보다 넓어져야 한다. 기존의 진보는 자신의 이념적 범주에 들어오지 않는 외연적 존재를 이데올로기 주입이나 계도의 대상으로 삼으려 한다.”

이날 집담회의 암묵지는 ‘세대론 이후’를 모색하는 것이다. 세대론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는 ‘세대간 단절’이다. 집담회에 앞선 인사말에서 ‘기성세대’인 한석구 진보신당 사무총장은 농담처럼 “과거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구질구질한 노인네들이라는 구박에 주눅이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20대 대학생 블로거 박가분씨는 “기존의 세대담론이 배제된 하위계층을 포괄하지 못한다는 비판은 하위주체들의 끝없는 계층화라는 역설을 불러오며, 결국 탈정치화를 정당화하는 위험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역시 20대 블로거인 송준모씨는 “세대투쟁 담론은 학문적 실증성의 측면에서도 검증되지 않았고, 유럽사회의 경우 복지국가에 대한 신자유주의의 정치적 공격도구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날 모두 발제를 한 <이것은 왜…>의 저자 엄기호씨는 “20대 세대론은 사회를 분석하기 위한 도구가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자체를 가지고 뭔가를 도모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대안은? 그는 ‘장소를 향한 투쟁’을 강조했다. 자본의 전략은 놀 수 있는 ‘사회적 공간’은 만들어줬지만 실제 자신의 몸을 누일 수 있는 ‘장소’는 박탈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게임 속에서 자신의 캐릭터를 사용한 왕국을 만드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해졌다. 하지만 두리반이나 중앙대, 현대차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장소는 박탈당하지 않았는가. 싸움은 이제 사회적 공간 창출이 아닌 대단히 원시적이고 물리적이며 지리적인, 그런 개념 속의 장소를 향한 감수성을 키워나가는 방향이 되어야 한다.” 세대론 이후 어떤 식으로 운동이 되살아날 것인가. 그 방향을 시사하는 하나의 주장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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