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가구 시대, ‘집방’과 주거현실 사이

방송에 나오는 집을 통한 대리만족… 대출 힘든 청년 1인 가구에는 그림의 떡

집이 다시 방송가의 떠오르는 소재가 되고 있다. ‘집콕’ 생활이 길어지는데다 1인 가구가 계속 증가하는 사회적 요인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살 집을 대신 찾아주거나, 이미 살고 있는 집을 더 쾌적하게 정리해 주기도 하고, 구질구질한 낡은 집 대신 진정 꿈꾸던 집으로 변신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대리만족을 느끼게도 한다. 의식주의 한 축인 식생활을 부각시켰던 ‘먹방’과 ‘쿡방’이 저무는 사이 ‘집방’이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MBC <구해줘! 홈즈> 출연진들이 의뢰받은 주택을 둘러보고 있다. / MBC

꼭 20년 전인 2000년 방영을 시작한 MBC의 <러브하우스>는 이런 집방의 원조 격이었다. 2년가량 방영되는 동안 이 프로그램은 큰 인기를 끌면서 좁고 낡은 집에서 사는 어려운 형편의 이웃들이 깔끔하게 새로 꾸민 집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모습을 선보였다. 다만 당시에도 ‘그나마 자기 집이라서 고칠 수도 있는 것’이라는 한탄 섞인 시청자 반응도 있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더 나은 집을 구해 이사하거나 살던 집을 정리해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내용을 담은 최근의 집방 프로그램들은 현실의 한계 안에서 그나마 가능한 대안을 찾는 데 충실한 쪽으로 진화한 셈이다.

의뢰인 경제 능력에 맞춰 집 구해줘

방영 회차에 따라 호평과 불만이 엇갈리기도 하지만 MBC <구해줘! 홈즈>는 비싸고 좋은 집만 보여주는 대신 집을 구하는 데 목돈을 들이기 어려운 청년세대가 원룸 같은 소형 주거공간을 구하는 모습도 고르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현실을 잘 반영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방송은 연예인들이 두 팀으로 나눠 각자의 좋은 집 구하는 요령을 공유하며 의뢰인에게 잘 맞는 집을 찾아 추천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겨우 의뢰인이 감당할 수 있는 보증금과 월세 범위 안에 들어가는 집을 찾았다 싶으면 어쩔 수 없이 평수를 포기해야 한다. 하나를 택하면 다른 하나를 잃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생생하게 드러나는 셈이다.

이러한 집방은 보는 관점에 따라 평가가 갈린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 지금 사는 집이 좁고 답답하다는 생각만 든다. 특히 방송에 나온 넓고 깨끗한 집을 보면.” 한 케이블채널에서 일하는 박모 PD(33)는 방송에서 내보낼 수 있는 주거조건에도 최소한의 기준이 있기 때문에 집방과 현실이 대비돼 보이기만 할 뿐이라고 말했다. 1인 가구인 그는 대학생 시절부터 줄곧 혼자 살아오면서 이른바 ‘지옥고’라 불리는 지하·옥탑방·고시원을 모두 전전해 봤다. 그는 지금이야 일자리도 있으니 대출을 받아 작은 원룸에 전세로 들어갔지만, 방송에는 서울의 원룸 전세 보증금만 해도 억대가 넘어가서 대출이 어려운 청년 1인 가구엔 ‘그림의 떡’이 되는 현실이 나오지 못하는 점을 지적했다.

박 PD의 집도 직장으로의 이동시간을 줄이는 데에만 초점을 맞춘 탓에 장마철이면 벽에 곰팡이가 스는 좁은 집이다. 그는 “유명인들이 사는 최고급 펜트하우스는 가끔 나와도 곰팡이가 피거나 한겨울 영하로 떨어지는 옥탑방은 다큐에서나 나올 뿐”이라고 말했다. 장판이나 벽지 도배를 요구해도 들어주지 않는 집주인들이 허다한데 잠깐 살다 나갈 것으로 생각하는 집에 인테리어 같은 사치는 꿈도 꾸기 어려운 형편이다.

하지만 청년층을 중심으로 한 1인 가구의 삶을 다루는 내용도 많기 때문에 집방이 집을 대하는 보다 다양한 시각을 보여주는 순기능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 수 있는 공간을 중요시하거나, 재택근무 환경에 중점을 둔 집을 구하는 등 현실적인 변화가 방송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에 월세·전셋집이라도 수요자의 요청에 응하는 집주인들 역시 점차 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 마포구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고 있는 신동현 공인중개사는 “공유 사무실 대신 저렴한 다가구 주택을 빌려 주거와 업무를 한 곳에서 하는 쇼핑몰 운영자 같은 사람들의 수요도 조금씩 늘고 있다”며 “일반 가정집을 오피스텔처럼 꾸며서 빌려주면 임대료도 더 받을 수 있으니 임대인 입장에서도 밑지는 장사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더 살기 좋은 집 꾸미는 <신박한 정리>

부동산 가격이 걷잡을 수 없이 오르는 상황 속에서 집을 투자의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실거주의 공간으로 보는 시각에서 접근한 집방도 나름의 의의를 인정받고 있다. 출연자들이 현재 살고 있는 집을 변신시키는 프로그램들이 화제를 모으는 것도 ‘더 비싼’ 집 대신 적은 돈과 노력을 들여 ‘더 살기 좋은’ 집을 꾸미는 데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지난 6월부터 시작한 tvN <신박한 정리>는 정리 전문가들이 출연자들과 함께 나와 집 안에 묵혀 뒀던 물건을 정리하고 이미 있던 공간을 더 유용하게 쓸 수 있게 돕는다.

프로그램을 연출한 김유곤 PD는 ‘미니멀리스트’를 자처하는 고정 출연자 신애라의 제안으로 ‘정리’라는 주제에 집중한 기획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그는 “요즘 다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서 집에 관심이 많으니, 집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시청자들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해주려 했다”면서 “채우기보다 비움으로써 인생의 소중한 것을 찾으려는 트렌드와도 맞아떨어졌다”고 설명했다. <신박한 정리>는 시청률이 꾸준히 올라 기존 예정된 8회를 넘겨 정규 편성될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다.

먹방의 뒤를 이어 집방이 인기를 끄는 큰 흐름이 1인 가구 시대의 특성을 반영하는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여럿이 사는 집이건 혼자 사는 집이건 밥솥과 세탁기, 냉장고 등 생활에 긴요한 가전제품이 똑같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게다가 밥을 짓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등의 활동은 과거처럼 가족 중 한 사람이 전담하는 대신 1인 가구 구성원이 각자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관심이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집을 꾸미지는 못해도 청소하고 유지해야 하는 고단한 현실을 겪다 보면 혼자 사는 집에 대한 ‘로망’이나 ‘판타지’를 방송으로나마 대리만족시키길 원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집에 대한 판타지를 방송으로 보여준 SBS의 파일럿 프로그램 <나의 판타집>은 단지 멋진 집을 보여주는 데서만 그치지 않고 로망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노력을 보여준다. 방송에 출연한 이승윤은 ‘아이언맨 하우스’를 꿈꾸지만 넓은 집을 관리하고 집안 가구와 인테리어 등을 배치하는 과정에서 집값과 관리비 같은 현실적인 요소를 고민했다. 제작진이 ‘거주감을 체험하는 관찰 예능’이라고 표현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김유진 문화평론가는 “물론 집방 프로그램들이 나름의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시청자들의 눈을 붙잡기 위해 현실적인 판단을 가미해 진화하는 것도 사실”이라며 “위화감을 불러일으키는 연예인 집 소개 내용만으로는 바뀌고 있는 시대의 분위기를 반영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