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T기술, 소외계층 보살펴줄까

서울 성동구, 스마트포용도시 선포… 어린이집 통학차량 근거리무선통신 장착

서울 성동구 금봉 어린이집 통학차량을 운전하는 김형식씨는 아이들이 내리고 나면 차 안을 확인한 뒤 차량에 부착된 NFC(근거리무선통신)를 태그한다. 김씨가 태그를 하고 나면 이내 아이들의 하차 정보는 학부모 스마트폰과 어린이집, 관제센터로 실시간 공유된다. 반대로 태그를 하지 않으면 어린이집 교사와 관계자의 스마트폰에 경고음이 울린다. 아이들의 통학차량 갇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이른바 ‘잠자는 아이 확인 장치(슬리핑차일드체크시스템)’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슬리핑차일드체크시스템의 설치비는 모두 성동구에서 부담했다. 비용부담이 없는데다 절차도 간단하다. NFC 스티커를 부착하고 애플리케이션을 받으면 끝이다. 성동구는 지난해 7월 23일 시스템 도입을 결정한 뒤 나흘 만에 관내 어린이집 통학차량 35대에 슬리핑차일드체크시스템 설치를 완료했다. 백춘희 금봉 어린이집 원장은 “간단한 조치로 아이들의 안전을 한 번 더 살필 수 있게 됐다”며 “무엇보다 학부모님의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슬리핑차일드체크시스템은 복지 정책처럼 보이지만 성동구는 해당 시스템을 ‘스마트포용도시’ 정책의 일환이라고 설명한다. 스마트포용도시는 ‘사려 깊고 세심한 배려를 토대로 ICT의 융합을 통해 일상을 문제를 해결하고 삶의 질을 높이며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도시’(이영성 서울대 교수 ‘스마트포용도시를 위한 방향과 전략’ 보고서)를 뜻한다.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해 도시의 경쟁력과 삶의 질을 높이는 스마트시티와 모든 거주민이 어떤 종류의 차별도 받지 않고 거주할 수 있는 포용도시를 결합한 개념이다. 도시공학(스마트시티)과 복지(포용도시)의 영역을 합친 것이다. 스마트포용도시를 도시 비전으로 선포한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스마트포용도시를 “적정기술을 도시에 접목해 사회적 약자를 포함한 모든 시민의 삶을 똑똑하게 보살피는 도시”라고 설명한다.

아이들 하차 정보 학부모에 통보

스마트시티 조성을 혁신성장 선도사업으로 정하고 정책 역량을 집중해온 정부도 최근 발표하는 도시계획마다 포용적 가치를 언급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7월 15일 발표한 제3차 스마트도시 종합계획에서 3대 목표 가운데 하나로 ‘시민을 배려하는 포용적 스마트시티 조성’을 꼽았다.

그렇다면 기술이 시민을 보살피는 스마트포용도시는 실현 가능할까. 전문가들은 스마트포용도시는 스마트한 ‘기술’뿐만 아니라 포용의 ‘공공성’을 전제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영성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소외되고 배제된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통로가 있어야 그들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 수 있다”며 “스마트포용도시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고루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공공성이 먼저 확보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제까지 국내에서 추진된 스마트시티는 민간기업 주도하에 포용적 가치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정부와 지자체가 톱다운 방식으로 스마트시티를 지정해 예산을 투입하면 민간기업이 사업을 수주해 도시를 개발하는 구조다.

한 관계자가 부산 에코델타시티 부스에서 스마트시티 가상공간 체험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정부는 지난해 스마트시티 국가 시범도시(부산 에코델타시티·세종 5-1생활권)를 선정하고 자율차·드론·개인정보 관련 6종의 특례를 신설했다. 이어 지난 4월에도 민간기업 참여 확대, 토지이용, 신재생에너지 관련 특례 3종을 추가하면서 규제 완화 속도를 높였다. 규제 완화를 통해 민간기업에게 사업의 주도권을 준 셈이다.

이 과정에서 스마트시티 내 개인정보보호와 빅데이터 활용, 공공성 확보 방안에 대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 7월 방한한 조셉 카나타치 유엔 프라이버시 특별보고관은 한국의 스마트시티 프로젝트가 프라이버시 영향평가도 없이 추진되고 있다며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카나타치 특별보고관은 “스마트시티 프로젝트 이행 전에 프라이버시 영향평가를 진행하고 ‘프라이버시 중심설계’ 및 ‘프라이버시 기본설정’의 원칙을 준수할 것”을 권고했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 센터 대표는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 도입한다고 다 스마트시티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시민 참여 절차와 개인정보보호 시스템 설치 여부와 같은 중요한 논의가 4차 산업혁명에 묻혀버렸다”고 말했다.

부산·세종시 등 스마트시티 시범도시

정부는 스마트시티와 관련한 부처 간 협업과 사업계획을 논의하기 위해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산하에 ‘스마트시티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스마트시티 특별위원회의 구성원은 대부분 기업 출신이다. 이 때문에 공공 인프라 사업인 스마트시티가 민간기업 주도로 진행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보인권연구소 이은우 변호사는 “민간기업이 만든 스마트시티는 기업의 사업성에 맞춰 설계된다”며 “사회안전망과 같은 이윤이 나지 않는 안전장치 구축은 도시계획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스마트포용도시는 개념 정립 단계에 있지만 기업·자본은 10여 년 전부터 스마트시티를 ‘개발’ 대상으로 인지하고 사업 준비를 해왔다. 포스코 그룹의 IT 계열사인 포스코 ICT는 2011년 8월 건설사업을 할 수 있는 종합건설면허를 취득했다. 지능형빌딩시스템(IBS) 등 스마트시티 관련 건설사업의 시공권을 직접 따내기 위해서다. 과거 포스코 ICT는 건설사가 시공권을 따내면 하도급 업체로 참여해 IT시스템을 구축하는 역할을 담당했지만 건설면허 취득으로 대형 인프라 사업의 단독 수주가 가능해졌다. 포스코 ICT가 입찰에 참여하는 사업은 과거 신재생에너지단지에서 유비쿼터스단지, 현재 스마트시티로 이어진다.

스마트포용도시가 자리 잡지 못하는 사이 ‘스마트포용’을 악용하는 사례도 나온다. 인천시는 지난해 3월 ‘원도심 프로젝트-스마트포용도시’를 발표했다. 경인고속도로 일반도로 전환과 개항창조도시 조성, 북부 권역 개발 등에 5년간 3조원을 투입하는 대규모 개발사업이다. 해당 사업 대부분은 기존에 추진되던 것들이어서 당시 유정복 전 인천시장이 발표한 스마트포용도시 프로젝트는 지방선거를 앞둔 짜깁기 계획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양준호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소외된 주민을 위한 포용적 가치를 찾아볼 수 없는 전형적인 토목 개발사업”이라며 “개발사업에 대한 비판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스마트포용이란 표현을 끌어다 쓴 것”이라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