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시장은 안정을 찾아가는 걸까

아파트 매수우위지수 연중 최저치… 9·13대책 이후 거래 급감

“부동산시장이 9·13대책 이후 안정세를 찾아간다고 본다.”

김수현 신임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 11일 취임 후 가진 첫 번째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참여정부에 이어 이번 정부에서도 부동산정책을 총괄해 왔다. 9·13대책은 발표 하루 전날까지도 문구를 고쳤는데, 당시 주요 내용을 꿰고 있던 건 김 실장밖에 없었다는 말이 돌 만큼 막후에서 진두지휘해온 인물이다.

서울 강남 일대 아파트 전경 / 연합뉴스

발언으로 미뤄보면 김 실장은 9·13대책을 성공적으로 평가하는 듯하다. 집값 급등의 원인은 “부동산시장은 주기성이 있다. 노무현 정부 때와 박근혜 정부 후반부터 상승 주기에 들어섰다”고 외부 요인 탓으로 돌리고 “조금이라도 불안한 여지가 있다면 선제적으로 대처하겠다”며 부동산시장이 다시 불붙더라도 ‘제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나타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정책 조합의 효과로 진정국면에 접어든 게 아니다”라며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 등으로 숨을 죽이고 있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불씨는 아직 살아있다는 것이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면 불씨는 또 큰불로 번질 수 있는 이야기다.

가격 하락과 거래절벽이 주는 ‘착시효과’

최근 부동산지표를 보면 일견 김 실장 말대로 주택시장은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KB국민은행 ‘주간 아파트 매수·매도 동향’에서 지난 5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수우위지수는 67.2를 기록했다. 지난해 4월 3일(65.4) 이후 1년 6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지난 9월 3일 171.6까지 치솟았던 매수우위지수가 두 달 만에 104.4포인트나 떨어지며 연중 최저치를 기록한 것이다. 매수우위지수는 기준점인 100을 웃돌수록 집을 사려는 사람이, 100에 못 미칠수록 집을 팔려는 사람이 더 많다는 의미다. 두 달 전만 해도 집값을 더 올려받기 위해 집주인이 자취를 감춰버리는 매도자 우위 시장이었다면 지금은 호가를 1억원 이상 낮춰도 좀처럼 사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 추가 하락 가능성을 염두에 둔 매수자 우위 시장이기 때문이다.

가파르게 치솟던 서울 집값도 안정국면에 접어들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 12일 기준 서울 아파트값은 0.01% 하락했다. 지난해 9월 둘째 주 이후 1년 2개월여 만에 서울 아파트값 상승세가 꺾인 것이다. 그간 집값 급등의 진원지로 꼽혀왔던 ‘강남3구’는 지난달 22일 이후 4주 연속 하락세다. 서초와 강남은 각각 0.05%, 0.07% 떨어졌으며 송파는 2주 연속 0.10%나 하락했다. 강남3구가 하락세로 전환했을 때 아랑곳하지 않고 상승세를 지속하던 강동도 이번주 0.03% 하락세로 돌아섰다.

주로 재건축단지를 중심으로 집값이 급등했던 지역에서 가격 하락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분위기다. 서울 강남구의 대표적 재건축 추진 아파트인 대치동 은마아파트(전용면적 76㎡)는 9·13대책 발표 직전 18억5000만원에 거래가 이뤄졌다. 그러나 최근에는 16억원대에도 매물이 나와 있다.

매매거래도 급감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9월과 10월 각각 1만2319건, 1만247건에 달했던 서울 아파트 매매거래는 이달 15일 기준 2003건으로 쪼그라들었다. 실제 거래일이 아닌 신고일(계약일로부터 60일 이내) 기준인 만큼 실제 거래량은 더 줄었을 것으로 보인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계절적 비수기, 정부의 릴레이식 수요 압박, 수요심리 위축 등이 겹쳐져 지금은 약세장으로 진입했다”며 “내년 1월 겨울방학 이사철 때 적체된 매물이 제대로 소화되지 않으면 가격 조정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진정 분위기를 정책의 효과가 아닌 시장의 에너지 소진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단기간 아파트값이 급등해 피로도가 쌓인 상황에서 가격을 더 이상 밀고 올라갈 동력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다음달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도 높아 투자 목적의 주택 구입 유인도 한풀 꺾인 상태다. 최근 2년새 수억원 올랐는데 몇 달 새 1억원 빠진 걸 집값이 잡혔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냐는 자조 섞인 반응도 많다.

대외여건도 녹록지 않다. 미국·중국 무역분쟁 등으로 대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주식시장은 연일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코스피는 미국 금리 상승과 강달러 기조 속에 미·중 무역분쟁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지난달 23일 급락, 분쟁 완화 기류가 짙어진 지난 2일에는 급등했다. 강남의 한 공인중개사는 “9·13대책이 나왔을 때만 해도 매수 대기자가 20명은 있었는데 코스피 급락 후 매수 문의가 확 끊겼다”며 “정부가 대책 발표를 잘해서 부동산시장에 찬바람이 부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돈이 되는 부동산’ 여전한 불씨

언제든 빈틈만 있으면 다시 부동산 과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신호도 시장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9·13대책 이후 강남에서 호가가 1억원 이상 빠진 급매물이 하나둘 나오고 있지만, 일부 단지는 신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강남구 청담동 ‘청담자이’(전용면적 82㎡)는 지난달 24억원에 거래돼 지난 8월 세웠던 기존 신고가(23억원)를 넘어섰다. 9월까지만 해도 12억5000만원이었던 마포구 아현동 ‘마포래미안푸르지오’(전용면적 59㎡)도 지난달 12억8000만원에 거래가 이뤄져 신고가를 갈아치웠다. 부동산 커뮤니티 등에는 “관망기에도 지역마다 조정받지 않는 ‘강한 놈’이 있다”며 “이런 곳은 대기수요가 많아 값이 조금 떨어져도 바로 매수가 된다”는 식의 조언이 넘쳐난다.

청약광풍도 계속되고 있다. 서울 서초동 서초우성 1차 아파트를 재건축하는 ‘래미안 리더스원’은 중도금대출이 안돼 최소한 현금 10억원은 있어야 청약이 가능했지만, 1순위 평균 경쟁률이 42대 1이나 됐다. 이달 말 추첨제 물량 중 75%를 무주택자에게 우선 공급하는 청약제도 개편안을 앞두고 1주택자들이 몰렸기 때문이지만, 대출 없이도 주택을 구입할 수 있는 ‘현금 부자’ 수요를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분양 열기는 9·13대책에서 비켜난 비규제 지역으로도 퍼지고 있다. 경기 의정부시에서 분양한 ‘탑석 센트럴 자이’는 최근 1순위 청약에서 평균 41.71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1순위 청약통장이 2만여개 몰린 것으로, 최고 경쟁률은 무려 144.63대 1이나 됐다. 인천 서구에서 분양한 ‘루원시티 SK리더스뷰’에도 청약 인파가 몰렸다. 평균 경쟁률은 24.48대 1로, 전용 75㎡에서 84점 만점짜리 청약통장도 나왔다. 이들 지역은 서울과 달리 분양권 전매가 자유롭기 때문으로 보인다. 의정부는 당첨된 지 6개월 후, 인천은 당첨 뒤 1년 후부터 분양권을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다.

이런 현상은 ‘부동산이 돈이 된다’는 인식이 여전히 확고한 탓이다. 이태경 헨리조지포럼 사무처장은 “정부가 현재의 소강상태를 정책이 주효했기 때문이라거나 집값을 물가상승률 차원에서 관리하겠다고 안일하게 생각한다면 큰 패착”이라며 “보유세 강화 등 불로소득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확실한 신호를 주지 않는다면 불길은 다시금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희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ong2@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