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 과밀화, 그것이 문제로다

서울 골목장사 10명 중 7명이 동일업종 임금노동자 평균임금보다 소득 적어

벌이가 시원찮아도 ‘사장’ 소리를 들으며 영업을 계속할 것인가, 대신 사업을 접고 일자리를 구해 ‘월급쟁이’로 살 것인가. 쉽게 결정내리기 어려운 문제다. 지난해보다 큰 폭으로 오른 최저임금으로 인건비 부담이 늘어난 자영업 소상공인 입장에서는 최저임금을 단계적으로 올리는 정책이 자신의 목줄을 죄는 쪽으로 받아들여질 법하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이미 한계상황에서 버티던 영세자영업자들로서는 전망이 어두운 자영업을 유지할 바에야 전보다 높아진 임금을 받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쪽이 나을 수도 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닮은 최저임금 인상 논쟁에는 또 한 가지 생각해야 할 변수가 있다. 바로 포화상태에 이를 정도로 과밀화된 자영업의 현실이다.

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용품상가에 폐업한 음식점에서 나온 중고 주방용품이 비닐에 담긴 채 쌓여 있다. / 연합뉴스

최저임금 인상 이전부터 과밀화 여파

“최저임금이 오르니 직원 인건비 비중은 높아지고 반대로 내 주머니에 들어오는 돈은 줄어드네요. 앞으로 사정이 펴기만 한다면 좀 더 지켜보겠지만 그럴 기대도 하기 힘드니….” 서비스업종을 중심으로 ‘동네장사’를 하는 자영업자들이 다수 회원으로 가입한 인터넷 카페에서 심심찮게 발견되는 내용이다. 서울 성북구에서 커피전문점을 하는 이모씨(45)가 공감하는 고민이기도 하다. 3년 전 대학가 주변 골목에서 아내가 커피전문점을 차릴 때만 해도 이씨는 영업관리직으로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다니던 회사가 다른 대기업에 넘어가고 구조조정이 시작되면서 이씨는 하던 일을 접고 아내와 함께 지금의 가게 영업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점원을 한 명 줄이는 대신 이씨와 아내가 교대로 점포 운영을 맡는 식으로 긴축에 들어간 것이다.

퇴사하며 받은 퇴직금을 더해 더 넓은 매장을 임대하려는 생각도 했지만 돌이켜보니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판단하게 됐다. 2~3층을 터서 좌석수도 많은 프랜차이즈 커피가게를 차린 주변의 경쟁업소들도 길게 버티지 못하고 사업을 접는 모습을 여럿 지켜봤기 때문이다. 음료 가격을 낮춘 대신 테이크아웃 위주로 운영하는 이씨의 가게는 바쁜 시간대에만 점원을 써서 근근이 유지될 정도지만 매상이 차츰 줄어들면서 위기는 더욱 피부에 와닿는다. 이씨는 “임대료에 인건비·재료비 빼고 순수하게 들어오는 수익을 아내와 내가 일하는 시간으로 나눠보니 최저임금 시급보다 별로 차이도 나지 않는다”며 “대학가 상권이라 방학에 매상이 더 줄어들면 당장 애들 학원비도 간당간당할 정도인데 이 점포를 계속 유지해야 할지 접어야 할지 답이 안 나온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인상은 이씨와 같은 소규모 사업장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에게 당장 눈에 들어오는 위협이다. 그러나 보다 시야를 넓혀 보면 위기의 조짐은 전부터 나타나고 있었다. 한 골목에만 서너 곳이 들어선 커피전문점뿐만 아니라 이미 점포를 빼고 ‘임대’ 알림을 붙인 인형뽑기집, 그리고 여름을 맞아 그곳에 대신 들어서고 있는 빙과·맥주·해외과자 할인판매점들까지, 비슷한 업종이 한 곳에 여럿 몰려 있으면서 한정된 수요를 갈라먹는 자영업의 현실은 반복되고 있는 양상이다. 이씨가 퇴사 후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자의반 타의반으로 자영업에만 집중한 것처럼 퇴직 후 소득이 필요한 중년층 이상 은퇴세대들이 자신이나 가족의 무급노동력만으로 유지할 수 있는 소규모 자영업 사업장에 유입되는 상황이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기존 소상공인들의 영업환경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경기상황에서 새롭게 유입되는 자영업자들 탓에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과밀화 현상이다. 중소기업연구원이 6월 발표한 ‘소상공인 과밀, 어느 수준인가?’ 보고서를 보면 문제의 근본적 원인은 갈 곳 없는 노동력이 결국 자영업으로 유입되면서 나타나는 심각한 과밀화에 있다. 서울에서 음식점업이나 도·소매업 등 소규모 자영업을 하는 사업자 10명 가운데 7명가량은 같은 업종에서 일하는 임금노동자의 평균임금보다도 사업소득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사업으로 벌어들인 소득이 도시가구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사업자의 비중이 40%선을 넘길 정도로 과밀화의 폐해는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보고서를 보면 특히 서울의 영세자영업 과밀화 수준이 심각한 형편이다. 직원 5명 미만의 사업체를 운영하는 숙박·음식점업 소상공인들의 사업체당 평균 영업이익은 1845만원(2015년 기준)으로 집계됐다. 같은 해 전국의 동종업계 5인 이상 사업장 노동자 평균임금 2160만원보다 14.8% 적다. 아예 영업손실이나 적자를 보는 사업장도 전체의 4.8%를 차지했고, 같은 업종의 노동자 평균임금에 못 미치는 영업이익을 올리는 사업체 비중은 68%에 이르렀다. 도·소매업 역시 과밀상태로 인한 소득 저하는 심각해 소상공인 평균소득이 전국 동종업계 노동자 평균임금보다 낮은 비율은 72.3%, 적자상태인 비율은 7.4%에 달했다.

서울 중구 만리동의 한 상가에 셔터가 내려진 채 점포 임대 안내문이 붙어 있다. / 강윤중 기자

최저생계비 못 버는 자영업자 40% 넘어

한정된 상권에 많은 자영업자들이 몰리면서 나타난 과밀화가 결국 제살 깎아먹기로 나타나는 정도는 임대료가 높은 곳에서 더욱 심했다. 임대료 수준이 가장 높은 강남구와 서초구가 도·소매업 소상공인 사업체 가운데 손실이 발생하는 업체 비중도 16.5%로 가장 높았던 것이다. 서울의 전체 25개 구 중 중구와 성동구, 구로구 3개 구에서만 소상공인의 평균소득이 노동자 평균임금보다 높고 나머지 22개 구에서는 모두 낮았다. 조사된 수치만 봤을 때는 아예 사업을 접고 고용돼 일하는 것이 더 많은 돈을 버는 셈이다.

자영업 과밀화의 정도는 서울이 가장 심각하지만 비단 서울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의 자영업 비중은 전체 취업자의 25.5%(무급 가족종사자 포함)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15.8%보다 훨씬 높다. 가장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음식점업으로 비교하면 인구 1000명당 음식점 수가 미국은 0.6개인 데 비해 한국은 10.8개로 과밀화 수준에서 급격한 차이를 보인다.

국내에서 자영업자 비율이 높은 현실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부터 큰 폭으로 오른 최저임금이 이들 자영업자의 소득에도 악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쉽게 추론할 수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처럼 보이는 통계 결과도 나와 있다. 최저임금 상승이 반영된 통계청의 올해 1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전체 평균 가계소득은 작년 1분기보다 3.7% 증가했지만, 소득수준이 하위 20%에 해당하는 저소득층 가운데 가구주가 자영업자나 무직자인 가구에서만 소득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저소득층 가구라도 가구주가 임금노동자인 가구에서는 노동소득을 포함한 경상소득이 평균 가계소득 상승치와 같은 수준으로 늘어난 것과 대조된다.

통계만 보면 최저임금 인상이 이미 과밀화로 한계상황에 놓인 영세자영업자들의 소득 저하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문제와 해법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역설적으로 최저임금 인상의 배경이 된 ‘괜찮은 일자리’의 부족이 자영업 과밀화를 부른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문가들도 최저임금이 올라 전보다 높은 임금을 받는 일자리가 늘어나야 이미 폐업을 고려할 정도로 한계에 다다른 자영업자들을 큰 충격 없이 노동시장으로 이끄는 요인이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좋은 일자리 부족이 자영업 과밀화 불러

여기에는 도·소매업뿐만 아니라 대량의 고용을 감당하는 제조업까지 현재 동반부진에 빠진 경제적 상황을 감안해야 한다는 분석이 배경이 되고 있다. 부진에 빠진 조선업 등에서 구조조정이 진행된 2016년 하반기부터 2017년 상반기까지의 제조업 일자리는 1년간 월평균 9만개씩 감소한 반면, 같은 기간 도·소매업과 숙박·음식점업 일자리는 월평균 9만6000개씩 늘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에 상반된 흐름이 나타나 지난 5월까지 이들 서비스업종 종사자 수는 6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제조업에서 밀려나온 노동자들을 흡수할 수 있었던 서비스업종이 도리어 과밀화의 역풍을 맞으며 수익성이 악화된 것이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고용을 창출하면서 성장도 함께 이끌어낼 수 있는 방향으로 내수산업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면서 “고령화로 인한 여가·문화·의료 등의 서비스 분야 수요 증가를 흡수하는 쪽으로 산업을 재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최저임금 인상이 포화상태인 영세자영업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다른 업종으로 분산시키는 한편, 수익성이 나빠져도 가장 나중에 탈출할 수밖에 없는 소상공인들에게도 ‘출구전략’을 마련하게 하는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할 수는 있다. 물론 여기에는 전제가 있다.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대책에만 기대는 것을 넘어 전 업종에서 임금노동자들에게 질 좋은 일자리를 늘릴 수 있게 정부의 과감한 재정지출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고령화로 늘어나는 은퇴세대가 일자리 질이 떨어지는 비정규직으로 재취업을 하느니 자영업에 유입되는 구조를 개선할 수 있어야 최저임금 인상의 실효성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다행히 아직까지 한국 정부의 재정건전성은 OECD 회원국들과 비교해도 양호한 수준이다. 주상영 건국대 교수(경제학)는 “결국 구조적 차원에서 내수경제가 다시 살아나기 힘든 상황에 처한 것”이라며 “분배를 조금 개선하는 정도로는 소득주도 성장이 이뤄질 것으로 보기 어려우므로 정부가 보다 앞장서서 재정지출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과밀화를 우선 통제해 자영업자들이 사업성 악화로 폐업해 대규모로 노동시장에 밀려나오는 폐단을 막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는 있다. 중소기업청의 ‘소상공인·영세중소기업 지원대책’은 지역별·업종별 사업체 수, 매출 변동, 수익성, 폐업 등의 추이를 고려해 소상공인 과밀지역을 지정하고 창업자금 대출금리를 조정해 해당 지역의 신규 소상공인 진입을 억제하기로 했다. 또 주요 상권별·업종별 과밀 수준을 지리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과밀지수 대상 업종을 늘려간다는 방침이다. 전인우 중소기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접근성이 소비자 구매력에 영향을 주는 만큼 앞으로 소상공인 정책은 도시계획 등 좀 더 미시적 차원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소상공인 업종 형성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부 정책도 지방자치단체와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