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빙하기’ 정부 대책 글쎄요?

백화점식 내수활성화 정책 근본 처방으로 미흡하고 효과도 의문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 사는 주부 이모씨(38)는 올해 들어 ‘냉파’를 열심히 실천하고 있다. ‘냉파’란 냉장고 파먹기의 줄임말로, 외식을 하지 않고 냉장고에 넣어둔 재료들로 집에서 음식을 해먹는 일을 말한다. 이씨는 양가 어른들께 받아와 냉동실에 쌓아둔 재료들을 차곡차곡 꺼내 먹으며 지난 두 달간 외식을 두 번밖에 하지 않았다. 이씨는 “주중에는 집밥을 먹으려고 해도 주말 이틀 동안 아이랑 나가서 한 끼씩만 사먹어도 외식비가 한 달에 30만원쯤은 나갔다”면서 “주말마다 집에서 ‘냉파’를 했더니 한 달에 20만원은 절약되더라”고 말했다.

그야말로 소비 ‘빙하기’다. 밖에서 사먹지 않고 식재료를 사더라도 싼 제품을 골라서 사든지 강제로 저축하기 등 극단적으로 소비를 절약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소비 빙하기는 수치도로 증명되고 있는 가운데 전반적으로 소비심리가 나아질 전망이 보이지 않아 내수 위축이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말 정부는 백화점식으로 갖가지 내수활성화 대책을 내놨다. 그러나 효과는 미미할 것으로 보여 근본적 처방이 시급하다.

한 여성 소비자가 서울 시내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다. / 장지윤 기자

‘냉파’, ‘봉투 살림법’ 등 극단적 소비 절약

주부들의 극단적 절약 형태는 ‘냉파’ 이외에도 다양하다.

신용카드 해지는 그 중 가장 기본적인 소비 절약 방법이다. 괜히 홈쇼핑 등을 보면서 신용카드를 긁게 되는 일을 애당초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한 번 가면 10만원은 훌쩍 넘게 쓰게 되는 마트에 아예 발길을 끊는 것도 주부들 사이에 회자되는 소비 절약법 중 하나다. 최근 주부들이 많이 이용하는 지역 온라인 카페를 보면, ‘이번달 마트 한 번도 안 갔어요’, ‘신용카드 다 해지했어요’, ‘냉파했더니 식비가 확 줄었네요’ 등의 글을 종종 볼 수 있다.

‘봉투 살림법’은 하루 생활비를 봉투 30개에 일정 금액씩 나눠서 넣어두고 매일 그 봉투에 들어 있는 돈만 쓰는 방법이다. 그날 돈이 남는다면 모두 저축한다. 이 방법을 제안하는 사람들은 불필요한 소비를 차단하는 동시에 필요한 물품도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고 말한다.

‘캘린더 강제저축’은 매월 1일에는 1000원, 2일에는 2000원, 3일에는 3000원, 30일에는 3만원 등 한 달간 하루씩 저축금액을 늘려간다. 이 방식으로는 46만5000원, 연간 550만원 이상의 돈을 모을 수 있다. 매달 금액이 부담스럽다면 16일부터는 역산해 1만5000원, 17일 1만4000원 등 저축액을 줄여가는 방법도 있다.

최근에는 가성비 대신 ‘가용비’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가격 대비 용량이라는 의미로 예를 들어 포장만 빵빵하고 실제 내용물은 극히 조금 들어 있는 ‘질소과자’와는 정반대로 1㎏에 5000~8000원 수준으로 사놓고 오래 먹을 수 있는 과자 같은 제품을 의미한다. 이런 대용량 간식은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 ‘인간 사료’라고도 불린다. 동물 사료처럼 큰 크기 때문에 이 같은 신조어가 생겨난 것이다.

소비 빙하기는 수치로 증명되고 있다.

2일 발표된 통계청의 1월 산업활동 동향을 보면, 소비를 뜻하는 소매판매 증가율은 지난해 12월 대비 2.2% 줄어들면서 3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지난해 11월 마이너스 0.3%, 12월 마이너스 0.5%를 기록하다 올 1월에는 마이너스 2.2%까지 더 떨어진 것이다. 3개월 연속 마이너스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다. 보통 설 명절이 있는 1월은 소매판매가 전월 대비 증가하는데, 올해는 반대였다. 부정청탁금지법(이른바 김영란법) 시행 이후 첫 명절이라 한우나 굴비세트 등 고가의 명절 선물세트 판매가 급격히 줄고 3만원 이하의 저가 선물세트만 팔리면서 명절 특수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특히 승용차의 경우 지난해 12월에 비해 올 1월 소비가 13%나 감소했다. 물론 지난해 연말 판촉 할인행사로 승용차 판매가 증가한 데 따른 기저효과 영향이 있지만 1월 감소폭은 크다.

생산 측면에서 숙박·음식업 사정도 팍팍하다. 1월 숙박·음식업점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마이너스 6.4%로, 5개월 연속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는 2015년 6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이후 가장 저조한 수준이다. 예술·스포츠·여가 업종의 생산도 지난해 같은 달 대비 마이너스 7.5% 수준으로 2개월 연속 하락세를 보였다.

한국은행의 ‘2월 소비자동향조사’를 보면, 소비자들의 경제 상황 인식을 보여주는 소비자심리지수는 지난해 10월 이후 4개월 연속 100 이하를 기록했다. 소비자심리지수가 100 이하면 경제를 비관적으로 내다 본다는 의미다.

금융위기 이후 첫 3개월 연속 소비 감소

소비자들이 지갑을 꽉꽉 닫고 있다는 징후가 뚜렷해지자 정부는 2월 23일 급히 내수활성화 대책을 내놨다. 금요일 조기 퇴근과 전통시장이나 대중교통에서 돈을 쓰면 연말정산 때 10%포인트 소득공제를 더 해주는 방안, 1000㏄ 이하 경차에 대한 유류세 환급액은 10만원 더 늘어나는 등의 대책이다.

정부가 가장 야심차게 내민 카드는 한 달에 금요일 하루는 오후 4시에 조기 퇴근일로 지정하겠다는 정책이다. 월~목요일에는 30분씩 일을 더하고 ‘가족과 함께하는 날’로 지정된 금요일에 정상퇴근보다 2시간 빠른 오후 4시에 조기퇴근을 하는 방식이다. 쉽게 말해 일찍 퇴근해 여행을 가든지 밖에 나가 식사를 하든지 가족들과 나가 돈 쓰라는 뜻이다. 그러나 일반 사기업이 이에 호응할 이유가 사실 전혀 없고 정책 발표 전에 재계와 상의한 바도 없어 시행될지 의문이다.

정부는 또 호텔·콘도가 객실요금을 현행 고시된 가격보다 10% 이상 인하하면 해당 부동산에 대한 재산세(건물분)를 올해 최대 30% 깎아주기로 했다. 하지만 호텔이나 콘도의 객실요금은 대부분 정찰제가 아니기 때문에 인하 여부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재산세는 지방자지단체 재정의 한 축인데, 열악한 지자체는 재산세 인하에 동참하기 어렵다.

오죽하면 이 정책들은 금융시장에서도 호응을 받지 못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소비 진작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며 “실질 가계 소득을 증가시키지 못하는 내수활성화 방안은 궁극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박형중 대신증권 연구원은 “이번 정책만으로는 소비가 의미있게 회복되기는 어렵다고 판단한다”면서 “소비위축을 근본적으로 타개할 경기 진작책이 제시되지 않았고, 소비진작 효과가 크지 않은 것으로 판명된 과거 소비 활성화 정책들보다도 정책의 강도가 약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물가 상승을 반영한 실질 근로소득의 증가율은 0%였으며, 우리나라 가계의 평균 소비성향(처분 가능한 소득 대비 쓴 금액 비율)은 71.1%로 역대 가장 낮았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정부가 탄핵 이후 정책 결정 컨트롤타워가 사실상 없기 때문에 관습적으로 발표하는 대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평가가 나온다.

<임지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visio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