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중심’ 요금제는 데이터 ‘비싼’ 요금제?

‘음성통화 수익 감소’ 통계로 입증… 데이터 사용량은 크게 늘어

이동통신사들이 이달에 선보인 이른바 ‘데이터 중심 요금제’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뜨겁다. 이 요금제는 월 최저 2만원대의 요금으로 휴대전화로 거는 음성통화와 문자메시지를 이통사 관계없이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 음성·문자 무제한을 기본으로 한 뒤, 월별 기본 데이터 제공량에 따라 요금 수준이 달라지는 구조다. KT는 이 요금제를 출시한 지 나흘 만에 10만명이 넘는 가입자를 확보했다.

이 요금제가 발표되자 통신업계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다. 그간 이통사들의 요금 수준을 좌우하는 주요 변수는 음성통화와 데이터였다. 이번 요금제에서는 이 변수를 데이터 하나로 줄였다. 이 때문에 데이터 ‘중심’ 요금제라고 불린다.

기존 요금제에서 이통사와 관계없이 음성통화를 무제한 제공하는 요금제는 최소 월 5만원대 이상이다. 이를 감안할 때 이통사들이 음성통화로 얻을 수 있는 수익을 일정 부분 포기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음성통화가 이통사에 더 이상 큰 수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통계로 입증되고 있다.

KT는 지난 7일 데이터 사용량에 따라 요금을 정하는 데이터 선택 요금제를 내놓았고, LG유플러스는 15일 월 2만9900원부터 휴대폰간 음성통화를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데이터 중심 LTE 요금제를 출시했다. SK텔레콤은 미래창조과학부의 요금 인가 절차를 밟고 있어 이번 주면 승인 날 전망이다.

약정할인 없어 실납부금액 적용받아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2014 통신시장 경쟁상황 평가’ 자료를 보면 발신 기준 음성통화량은 2010년 국내 전체 1077억분에서 2013년 1105억분으로 2.6% 증가했다. 이는 같은 기간 이통 가입자 증가율인 7.7%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그나마 2011년을 정점으로 감소추세이던 음성통화량이 2013년 들어 소폭 증가한 것은 당시 이통사들이 일제히 음성통화 무제한 요금제를 선보인 덕분으로 연구원은 분석하고 있다.

음성통화 수익 감소 문제는 해외도 마찬가지다. 시장조사업체 오범(OVUM)은 2012년 발표한 전망자료를 통해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30개 국가의 이동통신 음성통화 매출이 2012년 3410억 달러에서 2017년에는 2621억 달러로 5년간 23.1%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감소하는 음성통화에 비해 데이터 사용량은 매년 크게 늘어나는 중이다. 국내 모바일 데이터 사용량은 스마트폰 도입 초기인 2009년 12월 409테라바이트(TB)에서 지난해 9월에는 269배 증가한 11만164TB를 기록했다. 데이터를 잘 팔아야 돈이 되는 셈이다. 이통사들이 데이터 중심 요금제를 내놓은 건 당연한 결과다.

데이터 중심 요금제는 기존 대비 저렴한 요금으로 무제한 음성통화 사용을 원하는 소비자들에게는 분명히 유리한 요금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음성 무제한’이라는 조건에 끌려 무작정 이 요금제로 바꿨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요금제 자체가 기존 요금제들보다는 월 기본료가 비싸게 설계된 데다 데이터 요율 자체도 기존 요금제보다 비싸게 책정됐기 때문이다. 일부 소비자들은 그래서 “데이터 ‘중심’이라더니 데이터값은 오히려 비싸졌다”고 꼬집고 있다.

이 요금제는 월 최저 2만9900원부터 최대 9만9900원까지, 7개의 요금 구간으로 설계됐다. 주의할 점은 약정계약에 따른 요금할인이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우리가 흔히 ‘정액요금제’로 부르는 일반 스마트폰 요금제의 경우 2년 약정계약을 하면 월 기본료를 깎아준다. 월 3만4000원짜리 정액요금제에 2년 약정 가입하면 약정할인을 적용받아 월 실납부금액이 2만7000원으로 할인된다. 반면 월 2만9900원짜리 데이터 중심 요금제는 약정할인이 없어 실납부금액 역시 2만9900원이다.

최저 2만9900원짜리 요금제를 이통사들의 표현대로 ‘월 2만원대 요금제’로 볼 수 있는지도 논란거리다. 이동통신요금에는 실납부금액에 10%의 부가세가 붙는다. 2만9900원 요금제에 10%의 부가세가 붙으면 3만2890원으로 3만원을 훌쩍 넘는다.

‘월 2만원대’라면서 실제는 3만원 넘어
데이터 요율도 비싼 편이다. 동일한 수준의 실납부금액을 기준으로 정액요금제와 데이터 중심 요금제의 기본 데이터 제공량을 비교하면 정액요금제의 데이터가 50%가량 더 많다. 정액요금제의 데이터 요율이 다른 데이터 특화 요금제에 비해 싼 조건이 아님을 감안하면 데이터 중심 요금제의 데이터 요율은 상당히 높은 편이라고 볼 수 있다.

데이터 중심 요금제 중 월 4만9900원 이상 요금부터는 기존 요금제와 큰 차별성도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이통3사 모두 2년 약정계약 기준 월 실납부요금 5만1000원 수준인 요금제에서 음성·문자를 무제한 주는 요금제를 제공 중이다. 이미 음성·문자 무제한 요금제를 쓰는 가입자들은 데이터 중심 요금제로 혜택을 보는 것이 거의 없다.

이 때문에 데이터 중심 요금제에서는 월 3만~4만원대 요금 구간을 찾는 가입자들이 많을 것으로 통신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무제한 음성통화만을 쓰기 위해 월 5만원대 이상 요금제를 쓰던 가입자들이 월 3만~4만원대 수준의 데이터 중심 요금제로 이동할 경우 이통사는 일부 손실을 보게 된다. 그러나 음성통화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50대 이상 장년층과 중저가 요금제 가입자들이 데이터 중심 요금제로 유입될 경우 가입자 1인당 매출(ARPU)이 오르는 효과가 나타나 이 같은 손실을 상당 부분 만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기존 이통사들보다 저렴한 음성통화 요금을 앞세워 영업 중인 알뜰폰 업체들은 상당한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이통사들이 데이터 도매대가를 비싸게 받는 탓에 알뜰폰은 데이터 요금제에서는 이통사 대비 경쟁력이 거의 없다. 그나마 가격 대비 음성통화가 싸다는 게 알뜰폰의 장점이었지만 이통사들이 데이터 중심 요금제를 통해 음성통화 가격을 사실상 ‘덤핑’ 처리하고 나서면서 가입자 이탈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송진식 경향신문 산업부기자 truej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