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킹, 뚫으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

데이터 암호화 기술인 ‘양자암호통신’이 최선의 방어책… 미국, 중국, 스위스, 호주만 성공

지난해 12월 발생해 여전히 진행 중인 ‘한국수력원자력 해킹사건’은 사이버 범죄가 국가 전체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충격을 던져주고 있는 사건이다. 정보기술(IT) 업계에서는 국가 기반시설을 대상으로 삼는 해킹 공격을 ‘파이어세일’이라고 지칭한다. 원전 해킹의 경우 파이어세일 중에서도 가장 공격 수위가 높은 3단계에 해당한다.

한수원 해킹으로 원전의 안전에 문제가 생길 일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시만텍 등 보안전문가들은 특정 국가나 기업을 대상으로 길게는 10여년가량 장기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이뤄지는 대규모 해킹 범죄가 갈수록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해킹 위협이 증가하면서 새로운 보안기술을 개발하려는 노력도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창(해커)과 방패(보안시스템)의 싸움이다.

지난 2월 SK텔레콤 직원들이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에 양자암호통신기기를 출품하기 위해 각 부품들을 조심스럽게 포장하고 있다. / SK텔레콤

한국도 시제품 개발로 상용화 수준
해킹을 막기 위한 조치 중 가장 우선시되는 것이 바로 ‘데이터의 암호화’다. 암호화는 사실 가장 궁극적인 방어책이기도 하다. 데이터를 완벽하게 암호화할 수 있는 기술만 있다면, 해커들이 설사 그 데이터에 접근하더라도 내용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주목받고 있는 암호화 기술이 바로 ‘양자암호통신’이다.

양자암호통신은 양자역학 고유의 특성인 ‘중첩’과 ‘측정 발생 시 중첩 상태의 붕괴’라는 두 가지 성질을 이용해 해킹이 불가능한 암호로 통신을 한다. 이 기술에서는 광자로 데이터를 주고받는데, 데이터를 가로채기 위해 광자에 접근할 경우 광자의 상태가 즉각 변질돼 데이터의 내용을 알 수 없게 되고, 송·수신자 모두 해킹 시도를 알아채게 된다. 또 지속적으로 새로운 암호방식이 만들어져 기존의 암호방식은 효력을 완전히 잃게 돼 해킹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현존하는 가장 안전한 암호화 기술이기 때문에 세계 각국이 양자 관련 기술을 개발 중이다. 보안의 중요성이 특히 강조되는 국가안보나 국방 등의 분야에서 양자암호통신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기술이다. 주요 선진국들은 이미 양자암호통신기술 상용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중국의 경우 범국가 차원에서 양자암호통신망 구축, 양자암호 위성체 발사 등을 진행하고 있다.

양자 기술을 활용한 양자컴퓨터, 양자프로세서 등의 응용분야도 유망한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인 MRM은 양자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시장이 오는 2020년 30조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기술도 상용화 수준에 와 있다. 상용화 바로 전 단계의 양자암호통신기 시제품 2대가 있다. SK텔레콤은 지난해 국내 중소기업 7곳과 함께 독자적인 국내 기술로 양자암호통신기 개발에 성공해 올 초 열린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등에서 선보였다.

SK텔레콤이 개발한 시제품은 가로 데스크톱 컴퓨터 본체 두 대 정도의 크기로, 부품 원가와 조립비만 해도 수억원에 달하는 ‘귀하신 몸’이다. 시제품의 성능을 시연하기 위한 부대장비만 30~40개에 달한다. 스페인에서 열린 MWC에 시제품을 수송할 때는 진동에 저항하는 특수차량에 2~3명의 전담직원이 동원됐다.

SK텔레콤은 이 시제품으로 50㎞ 거리에서 10Kbps의 속도로 암호키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현재 대표적인 양자암호통신 상용 제품인 스위스 IDQ사 제품의 경우 25㎞ 거리에서 1Kbps의 속도로 암호키를 만드는 점을 감안할 때 우수한 성능이다.

현재까지 양자암호통신기의 상용 제품 출시에 성공한 국가는 미국, 중국, 스위스, 호주 등 4개국이다. SK텔레콤은 2017년까지 시제품을 상용화한다는 계획이다. 국내 최대 광검출소자 제조사인 우리로광통신과 양자암호통신 핵심부품 국산화 및 상용화를 위한 양해각서도 체결하고 추가 기술개발에 나서고 있다.

생체 이용한 바이오 인식 기술도 유용
데이터를 보호할 ‘자물쇠’를 더욱 튼튼하게 만들기 위한 새로운 연구도 진행 중이다. 대표적인 게 생체신호를 이용한 바이오 인식 기술이다.

바이오 정보인 지문·얼굴·홍채·정맥 등을 활용한 보안기술로 이미 상용화돼 있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간 것이 뇌파나 심전도를 활용한 보안기술이다. 지문이나 홍채의 경우 경우에 따라서는 위·변조가 가능한 부분이 있지만, 뇌파나 심전도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개인별로 특성도 고유하기 때문에 위·변조가 훨씬 어렵다는 장점이 있다. 예컨대 스마트폰 잠금상태를 풀 때 스마트폰을 귀에 갖다 대기만 하면 센서가 알아서 뇌파를 감지해 잠금을 해제하는 기술도 가능해진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은 사물인터넷 분야에서 비대면 인증수단으로 활용 가능한 뇌파·심전도 등 생체신호를 이용한 차세대 바이오 인식기술 개발 및 표준화에 착수한 상태다. 기술 연구를 통해 국내외 생체신호 개인 식별기술 분석, 모바일 생체신호센서(웨어러블 스마트기기 등) 인터페이스 국내 표준화, 뇌파·심전도 등 생체신호 개인 식별 및 보호기술 표준화 등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생체신호는 보안 이외에도 의료·헬스케어 등과 융합해 활용될 여지도 많다. 이미 심박센서가 내장돼 사용자의 건강상태를 측정할 수 있는 웨어러블 기기도 시판 중이다. 생체신호 센서로 뇌파나 심전도 측정이 가능해지면 보다 자세한 신체정보 수집이 가능해 다양한 헬스케어 서비스가 이뤄질 수 있다.

인터넷진흥원은 “정보통신기술(ICT) 융합서비스사업자·통신사업자·바이오인식업체 등 산업계 전문가 및 대학병원과 ‘생체신호 인증기술 표준연구회’를 구성하고, 오는 5월부터 ‘스마트 융합 보안서비스를 위한 텔레바이오 인식기술 표준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설 계획”이라며 “2018년 2월까지 텔레바이오 인식기술 개발을 완료해 민간에 이전하겠다”고 밝혔다.

<송진식 경향신문 산업부 기자 truej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