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경제]나의 독재자-소시민도 특별하게 만든 ‘비전에 대한 공감’

“아빠가 비밀 얘기 하나 말해줄까? 내래 대통령 각하와 국가와 민족을 위한 아주 위대한 연극을 준비하고 있어.”

아빠 성근이 아들 태식에게 귓속말로 소곤댄다. 무슨 뜻인지는 모르지만 꼬맹이 아들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아빠가 자랑스럽다는 의미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김대중 대통령은 일종의 리허설을 갖는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대역을 대상으로 가상 회담을 연습했던 것. 김 위원장이 대화할 때 자주 쓰는 어법이나 몸짓 등이 대외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탓에 정부도 나름 사전 준비가 필요했다. 이런 ‘팩트’에 기반해 만든 영화가 이해준 감독의 <나의 독재자>다.

배경은 1972년 첫 남북정상회담이다. 무명 배우인 성근(설경구 분)은 고대하던 데뷔 무대를 갖지만 너무 긴장한 나머지 연극을 엉망으로 만든다. 자괴감에 빠져 있을 즈음 중앙정보부 요원이 그를 찾아온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대통령이 가질 리허설에서 김일성 주석 역을 맡아 달라는 것이다. 회담은 무산되지만 성근은 김일성 역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평생을 김일성 대역으로 살아가며 정신착란을 겪는다.

[영화 속 경제]나의 독재자-소시민도 특별하게 만든 ‘비전에 대한 공감’

성근은 애초 연극에 그리 소질이 있는 배우는 아니다. 하지만 김일성 역을 준비하다 점차 몰입하게 된다. 그러고는 자신을 마치 김일성으로 생각한다. 무엇이 성근을 ‘몰입’하게 만들었을까.

몰입은 최근 경영계의 화두였다. GE의 전 회장인 잭 웰치(Jack Welch)는 “기업의 건강 정도를 측정하는 세 가지 요소는 고객들의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 기업의 재무 건전성, 직원들의 업무와 회사에 대한 몰입도”라며 “그 중에서도 직원들의 몰입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몰입은 개인이 맡은 업무를 적극적으로 처리하려는 능동적인 태도다. 일을 통해 자신과 기업이 성장한다고 생각하면 좀 번거롭더라도 추가적으로 일을 더할 수도 있다. 업무에 대한 몰입도가 높은 직원은 보통 직원에 비해 3배 정도 성과를 더 내고 기업의 인당 매출액에서도 평균 3800달러가 더 높았다는 분석도 있다.

지금까지 기업들이 직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방법은 ‘만족’이었다. 그래서 성과급을 주고, 근무시간을 단축시키고, 복지제도를 탄탄하게 마련해줬다. ‘직장에 만족하면 업무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직장에 대한 만족도는 이직률이나 결근율을 떨어뜨리기는 해도 성과 자체를 높이느냐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찍힌다. 상사가 시키는 대로만 일을 하거나, 새로운 리스크를 지기보다는 지금까지 해오던 일만 하려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직장 복지가 잘 돼 있으면 ‘그저 일을 하기 위해’ 집과 직장을 오갈 수도 있다. 공공기관이나 공무원 조직에서 흔히 발생하는 병폐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프레드릭 허츠버그(Frederick Herzberg) 교수도 ‘두 가지 요인 이론’을 통해 임금, 직업 안정, 승진, 작업조건, 경영방침, 지시와 지도 등은 조직에서 얻는 기본적 욕구로 충족되지 않으면 불만이 커지지만, 많이 충족된다고 해서 더 동기가 부여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LG경제연구원 박성진 선임연구원의 분석도 비슷하다. 박 선임연구원은 <만족을 넘어 몰입으로> 보고서를 통해 직원들의 ‘몰입’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비전에 공감할 수 있는 업무를 주고, 책임과 권한을 직원들에게 위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또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새로운 도전과 이에 따른 실패를 인정해주는 분위기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영화 속 경제

성근은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뉴스를 보면서 자신이 해야 하는 리허설에 큰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위대한 일을 한다’는 공명심은 김일성 역할에 대한 몰입으로 이어진다. 자신이 하는 일이 조직과 사회에 큰 공헌을 한다는 ‘비전에 대한 공감’은 때로 소시민도 특별하게 만든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