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미국 투자자 재산권을 한국 정부는 절대 보호?

한·미 FTA ‘간접수용’ 보상 규정 우리 법 체계와 마찰 논란

“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여야 한다.” (헌법 23조3항) 한국의 헌법은 토지 수용과 같이 투자자의 자산을 정부가 몰수하는 직접수용의 경우 법률에 정해진 대로 보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 등과 같은 근거 법률이 있어야 국가가 배상을 하는 것이다.

11월 6일 서울 대한문 앞에서 한 시민이 FTA 비준 반대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박민규 기자

소유권 이전 없어도 재산권 침해 보상
하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 직접수용처럼 한국 정부로 소유권 이전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한국 정부의 정책에 따라 미국 투자자의 재산권이 직접수용에 유사한 정도로 침해될 경우 보상을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한·미 FTA에 포함된 간접수용에 따른 보상 규정이다.

이 규정에 따르면 한국 법률에 보상 규정이 없더라도 한국 정부는 미국 투자자의 재산권 침해를 보상해야 한다. 쉽게 말해 ‘재산권의 보호를 절대화’하는 미국 헌법 정신이 국내법 체계에 이식되는 것이다.

통상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저서 <한·미 FTA 핸드북>에서 미국에서 간접수용 법리가 뿌리내리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는 1921년 주거용 건물의 지반을 침하시키는 방식의 무연탄 채굴을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하지만 미국 연방대법원은 이 법률이 광산의 재산권 가치를 현저히 감소시킨 과도한 규제라고 판결해 광산 투자자에게 주 정부가 보상하라고 명령했다. 이 판결 이후 미국에서는 사유재산을 직접 ‘취득’한 것은 아니지만, 이와 동등한 효과를 갖는다고 판단될 수 있는 규제의 인정범위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결국 정부의 취득행위는 아니지만 이와 동등한 규제인 간접수용에 대해서도 보상을 하는 게 미국 헌법의 정신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이 간접수용이라는 법리는 한국 법제상 익숙지 않은 개념이다. 법무부는 지난해 펴낸 <한국의 투자협정 해설서>에서 “간접수용이란 의미는 우리 법제상 없는 개념”이라며 “간접수용은 우리의 법제로 보면 결국 보상규정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김민호 교수는 2006년 발표한 ‘외국과의 투자협정에 있어 간접수용 규정의 합헌성 검토’에서 “우리 헌법상 손실보상은 침해된 재산권 자체에 대한 공용침해를 전제로 한 것이지, 정부 조치의 효과(영향)에 의한 간접적 손실을 예정하고 있지 않다”며 “결론적으로 간접수용은 우리 헌법의 해석상 도입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송기호 변호사는 “재산권의 명의를 이전시키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수용으로 보고 국가가 보상을 해주어야 하는 또하나의 독자적 영역이 생기는 것”이라며 “이 보상금은 국민의 세금에서 빠져나가기 때문에 국가재정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외교통상부도 한국이 현재 국내법 상으로 직접·간접수용 개념을 사용하고 있지 않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외교통상부는 “헌법재판소는 10년 이상 도시계획 미집행 상태로 환매권도 부여하지 않은 사안에 대해 보상규정이 없는 도시계획법 규정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며 사실상 간접수용 개념이 존재한다는 입장이다. 또 “헌법재판소는 구체적 권리가 아닌 단순한 기대이익, 반사적 이익, 경제적 기회 등은 재산권에 속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며 정부가 보상을 해야 할 범위가 크지 않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외교부는 예외적인 사례를 제시하며 한국도 간접수용을 인정한다고 하지만, 원칙적으로 간접수용은 한국의 법체계와 맞지 않는 개념”이라며 “한국 헌법에는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고 말했다.

간접수용은 재산권을 절대화하는 미국식 법리라는 점도 문제지만, 그 개념이 모호해 분쟁을 발생시키는 불씨가 될 수도 있다.

외교통상부는 “부동산 가격 안정화 정책, 공중보건, 안전 등 공공복지 목적의 정부 조치는 간접수용의 원칙적인 예외로 규정해뒀다”고 밝혔다. 하지만 원칙에는 늘 예외가 따르게 마련이다. 한·미 FTA 협정문(부속서 11-나)은 정부의 조치가 공공복지 목적이더라도 ‘극히 심하거나 불균형적인 때와 같은 드문 상황’일 경우에는 투자 유치국이 투자자에게 배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예외의 예외’가 존재하는 셈이다.

NAFTA 투자분쟁 2/3 간접수용 관련
실제로 2007년 한·미 FTA가 타결된 뒤 국토해양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산하 연구기관들은 ‘드문 상황’에 해당해 간접수용의 예외에 해당하지 않는 사례가 발생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국토연구원은 2008년 <투자자-국가소송제(ISD)에 대비한 토지규제 개선연구>에서 새로운 개발제한구역 설정, 장기 미집행 도시계획시설, 기부채납 등 공공시설부담제, 토지거래허가제 등이 투자자-국가 분쟁으로 비화할 우려가 있다고 분석했다.

주택도시연구원(현 토지주택공사 산하 토지주택연구원)은 2007년 ‘한·미 FTA가 한국 주택 및 부동산 정책·제도에 미치는 영향과 대응방안’에서 “FTA 이후 새롭게 지역, 지구, 구역이 지정된다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간접수용 결정이 내려진다면 기존의 유사 사례에 대한 파급효과가 예상된다”며 “미국 투자자에게만 보상을 해준다면 내국민에 대한 차별문제가 제기될 것”이라고 밝혔다.

주택도시연구원은 또 “분양가 상한제의 경우 미국법의 관점에서 시장에 대한 과도한 규제로 인식될 가능성이 있다”며 “(분양가 정보 공개) 과정에서 기업의 핵심적인 영업비밀이 공개된다는 측면에서도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외교통상부는 “공공목적을 위해 비차별적으로 정부의 조치를 집행할 경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지만 미국인 투자자와 한국 정부가 분쟁이 발생할 경우 정부의 조치가 드문 상황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곳은 결국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이다. 김인숙 경기대 법대 교수는 2008년 ‘한·미 FTA 상 간접수용에 관한 연구’에서 “한국에 투자를 한 미국인들은 한·미 FTA 투자규정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고자 할 것이기 때문에 FTA의 해석 문제가 빈번히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간접수용 이슈는 한·미 FTA 협상과정에서 국내외적으로 논란을 야기한 바 있으며 향후 한·미 FTA가 발효될 경우 많은 실행 상의 문제를 유발시킬 것으로 예측된다”며 “이는 2006년까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투자분쟁 사례들 가운데 3분의 2 정도가 간접수용 관련 조치와 연관해 문제가 되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고 밝혔다.

<김지환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bald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