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법 위의 재벌가’ 주먹이 운다

SK가 2세 ‘매값 폭행’ 일파만파…제품 불매운동 번져

‘매값 폭행’의 가해자로 ‘재벌가 망나니’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최철원 M&M 전 대표(42)는 SK가의 2세다. 고 최종현 SK 회장의 동생인 최종관 전 SKC 고문의 장남이며, 최태원 현 SK 회장의 사촌 동생이다. 최 전 대표는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한양대학교 대학원 산업공학 석사를 수료하고 SK그룹에 입사했다. 이후 2002년 33세의 나이로 SK글로벌 상무를 거쳐 자기 소유의 M&M그룹 회장을 맡아오다 얼마 전 대표 자리에서 물러난 상태다.

‘야구방망이 폭행’의 장본인 M&M 전 대표 최철원씨가 12월 2일 오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지방경찰청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최 전 대표가 최태원 회장으로부터 증여받은 3억5000만원과 퇴직금을 더한 5억원을 자본금으로 2002년 세운 M&M은 SK그룹의 방계회사다. 주요 사업은 창고임대 및 운송, 물류·부동산개발, 외제차 판매업 등이다. 대기업 물류자회사들이 다 그렇듯이 그룹의 안정된 물량 지원 속에서 빠르게 성장했다. 여기에 군수사업도 얹었다. 한때 정부 혜택사업 논란이 제기됐던 화물차 매연 저감장치 사업자 중 한곳이기도 하다.

최 전 대표는 해병대 출신으로 178㎝, 80㎏에 이르는 탄탄한 체구다. 별명이 ‘탱크맨’으로 이메일 주소도 탱크맨의 줄임말인 ‘티맨’(Tman)을 쓴다. 회사 이름도 ‘힘껏’이라는 뜻의 ‘with might and main’에서 따왔고, UDT 부대와 자매결연도 했다. 물류업계의 한 인사는 “그의 회사를 방문해 보니 마치 병영처럼 회사 곳곳이 국방색이었다”고 전했다. “사무실 곳곳에 군 장비 모형이 있었고, 벽에는 상륙작전 사진이 걸려 있었다”는 그는 “이 회사는 직원들도 군인처럼 행동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최 전 대표의 가훈은 ‘정리정돈’과 ‘반공’이라고 전해졌다.

그룹 방계회사로 특혜받아 급성장
재벌가의 아들답게 씀씀이도 크다. 최 전 대표는 지난 2월 10일에는 모교인 고려대 경영대 신경영관 건립기금으로 10억원을 기부했고, 고려대는 이에 신경영관 내 대형 강의실 이름을 ‘M&M 강의실’로 명명할 예정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지난 3월 육군사관학교 내 육군박물관에서 소장해온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의전세단 자동차를 자비 1억여원을 들여 외관에서 엔진까지 구동 가능한 상태로 완전 정비한 뒤 3월 19일 공식 복원식을 가졌다. 그는 당시 연합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하루 세끼 밥’ 문제를 해결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과학기술 리더십이 꼭 살아 돌아온 느낌”이라고 밝혔다.

대중들의 분노는 관련 그룹의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으로 번지고 있다. SK그룹의 광고를 빗댄 ‘방망이가 사람을 향합니다. 고객이 KO할 때까지’ 등의 패러디가 등장하기도 했다. SKT 사옥 전경.

재벌 2세인 최철원 전 대표의 ‘매값 폭행’이 공분을 사고 있는 것은 이 사건이 지금껏 펼쳐졌던 재벌 2세들의 활극의 정점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동안 일부 재벌 2·3세는 ‘돈 많은 아버지’를 믿고 안하무인 행태를 보여왔다. 유학생 시절 서울 강남에서 옆 차선의 프라이드 승용차 운전자와 동승자를 끌어내 벽돌과 화분으로 집단 구타해 중태에 빠뜨렸던 한 재벌 2세는 집행유예를 받았지만, 6년 후 음주단속 경찰관을 자신의 승용차에 매달고 달아났다. 또 다른 재벌 2세는 수년 전 동업자를 산으로 끌고 가 집단폭행하고 물고문까지 했다. 믿고 싶지 않지만 섬뜩한 ‘사실’이다.

재벌가 후세들은 그룹의 정보와 후원을 발판으로 종종 금융시장도 어지럽힌다. 이들이 낀 주가조작 사건들로 개인투자자들이 깡통을 차기도 하지만 어쩐지 사법당국의 수사는 늘 지지부진하다. 특히 증권가의 ‘대박’엔 최 전 대표의 경우처럼 재벌가의 방계 2·3세가 주로 등장한다. 방계 친·인척들이 소유한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들이 은근히 재벌 본가와의 관련성을 내세워 이익을 챙기고 있는 것는데, 뿌리가 같다는 후광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최 전 대표도 2000년대 중반 코스닥시장에 입성해 후광효과를 보았다. 2002년 물류회사인 마이트앤메인(현 M&M)을 창업해 SK그룹의 물류사업을 기반으로 성장해온 최씨는 2007년 4월 코스닥 상장기업인 디질런트FEF를 인수해 마이트앤메인을 우회상장시켰다. SK가 일원이 오너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회사의 주가는 2배가량 상승했고, 최 전 대표는 수십억원의 시세차익을 얻었다.

최 전 대표가 M&M의 최대주주가 된다는 소문은 그 이전부터 시장에 쏟아지면서 주가는 급등했고, 그러고는 몇 년이 흐른 뒤 최 전 대표는 지분을 매도했다. 그러나 최 전 대표가 최대주주가 된 이후 디질런트FEF는 2006년 44억원이던 영업이익이 이듬해 적자로 곤두박질쳤다. 최 전 대표가 온 이후 흑자는 없었다는 게 증권가의 평가다. 이 회사는 지난해 매출 313억원에 당기순이익은 93억원 적자를 냈다.

재벌가 자녀들, 뺑소니·물고문에 주가조작도
이번 사건에 대해 “돈이면 다 된다는 재벌가 기업인의 비뚤어진 심리와 재벌에겐 관대한 정부와 사법부의 탓”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LA타임스가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 경제성장을 이뤄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재벌은 경제성장을 위해 필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억제하기 쉽지 않은 존재라는 인식 때문에 재벌에 대해 엄정하지 않은 분위기가 있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을 소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에서라면 회사 파산은 물론 최고경영자가 수십년의 실형을 받을 회계부정이나 비자금 사건이 국내에선 집행유예로 마무리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매값 폭행’의 파장은 거세게 진행 중이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은 재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한국의 힘 없는 사람들은 너무 오랫동안 하찮은 취급을 받아왔다”는 유씨의 말처럼 그동안 ‘유전무죄’ 혜택을 받아온 한국사회 재벌의 문제점이 다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자를 구속하고 엄벌에 처하지 않는다면 그게 정당한 사회일까”라는 한 네티즌의 제안에 보도 5일 만인 11월 3일 이미 4만명 가까운 네티즌들이 최 전 대표의 구속을 요구하고 나섰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커녕 최소한의 양식도 없는 ‘재벌가의 망나니’에 대한 공분이 구속수사 촉구를 넘어 관련 그룹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 움직임으로까지 번질 태세다. “힘없는 개인들이 뭉치면 커다란 소비자가 된다” “우리가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SK 물건을 사지 않는 것” 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 한 네티즌은 포털사이트에 SK제품 불매운동을 하자며 SK 관련 회사 목록을 올려놓고 “011(SK텔레콤)부터 끊자”고 주장했다. 또 다른 이는 “아직 휴대폰 약정이 있어서 통신사 이동은 못 하겠고, 일단 메신저(네이트온)부터 끊고 인터넷쇼핑몰(11번가)도 탈퇴했다”고 덧붙였다.

‘운수노동자’라고 밝힌 네티즌은 “일단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을 제안한다”며 “SK 일가가 공식입장을 표명할 때까지 SK주유소를 이용하지 말자”고 제안했다. 이와 함께 “(SK)주유소 사장님들이 억울하다면 본사에 ‘빨리 사과하고 대책 세워라’고 항의를 하라”고 주문했다. 현재 SK그룹은 최 전 대표의 불똥이 그룹에 튀지나 않을지 전전긍긍하고 있다.

<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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