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친쌀반농? 농민 빠진 MB식 쌀사랑

이명박 대통령의 잇따른 쌀소비 아이디어 화제… 대북 쌀 지원 없인 한계 지적

쌀종이 등 이명박 대통령이 쌀 소비 촉진 아이디어를 연이어 내놓고 있지만 근본대책은 등한시한다는 지적이다. 사진은 지난 8월 쌀가공업체를 찾아 쌀로 만든 가공식품을 둘러보는 이 대통령. <연합뉴스>

이명박 대통령의 ‘쌀사랑’이 화제다. 쌀국수, 쌀라면에 이어 쌀종이까지 아이디어를 내놓으며 쌀소비 촉진에 앞장서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 산하 농촌진흥청에선 태스크포스(TF)팀을 만들어 연구개발에 들어갔다. 실현 여부를 떠나 대통령이 농업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쌀 문제에 대한 근본적 대책이 빠져 있어 ‘팥소 없는 찐빵’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쌀종이를 만들어 봐라.” 최근 이명박 대통령은 베트남, 태국 등 동남아 3개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뒤 농림수산식품부 현안을 보고받는 자리에서 쌀 소비를 늘리기 위해 국산 쌀로 ‘쌀종이’를 만들어 보라는 지시를 내렸다.

‘라이스 페이퍼(rice paper)’로 불리는 쌀종이는 쌀로 만든 베트남식 만두피의 일종으로, 베트남 음식인 ‘월남쌈’에서 채소를 싸는 쌈 재료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쌀종이는 동남아시아에서 많이 나는 쌀 품종인 안남미(인디카·장립종)로 만들고 있으며, 국내에서 주로 생산되는 자포니카(중·단립종)로는 만들기에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국내 베트남 음식 전문식당에서 사용하는 쌀종이도 모두 수입하고 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베트남 국가주석에게 직접 물어 보니 쌀 품종과 관계없이 만들 수 있다고 하더라”면서 “베트남에서도 다 손으로 만드는데 첨단 제분술이 필요한 게 아니어서 우리도 쌀을 가공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게다가 쌀종이를 과자 포장지로 활용하면 포장에 싼 채 과자를 먹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아이디어도 냈다고 한다.

가격차로 수입쌀 소비만 촉진 우려
이 같은 쌀 소비 촉진을 위한 이 대통령의 ‘쌀 아이디어’는 쌀국수, 쌀라면, 쌀과자에 이은 것이다. 설렁탕에 들어가는 국수와 군대에 납품하는 건빵에 국산 쌀을 쓰자는 아이디어도 이 대통령이 직접 내놓았다. 이 대통령은 지난 8월 인천의 한 쌀 가공업체를 방문해 “쌀국수를 해서 좀 먹자. 군대에 납품하는 건빵도 쌀가루로 만들자”며 쌀 소비 촉진책을 내놨다. 이때부터 농식품부는 서울시내의 3개 설렁탕 음식점과 계약해 설렁탕에 들어가는 국수를 쌀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현재 쌀종이는 농촌진흥청 산하 국립농업과학원에서 연구 중이다. 쌀소비촉진TF팀의 한 관계자는 “동남아시아 쌀과는 품종이 다르지만 생산 가능성은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아직 산업화가 안 돼 수작업을 해야 하는데 노동력이 굉장히 많이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농식품부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의 쌀 가공식품 활성화 아이디어가 실제 국산 쌀 소비를 늘리는 데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면서도 “현재 쌀국수가 기관이나 대기업 공장에 급식으로 납품하고 있는 가운데 반응이 좋아 시장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과 정부의 ‘쌀사랑’은 지난 추석에 청와대가 쌀과 쌀국수를 선물로 선택한 것으로 이어졌다. 또 이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리는 각종 국제행사 때 포도주 대신 막걸리를 내놓자 여의도에서도 여당을 중심으로 ‘소폭(소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 대신 ‘막폭(막걸리와 소주 또는 사이다를 섞어 만든 폭탄주)을 즐겨 마신다. 최근 국방부는 내년도 예산에 생일 장병 대상 쌀 케이크 구입 명목으로 47억2200만원을 올리기도 했다.

80㎏ 한 가마에 평균 16만2000원이던 산지 쌀값이 12만원대까지 폭락한 상황에서 이 대통령의 아이디어는 참신해 보인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이런 쌀 가공식품 활성화가 얼마나 국산 쌀 소비를 늘일 수 있을지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농민단체에서는 수입쌀과 국산 쌀의 가격 차이 때문에 오히려 수입쌀 소비만 촉진시킬 수 있다고 비판한다.

“생계비 보장 쌀값 현실화 대책을”

재고량이 늘면서 쌀가격이 급락했다. 농민들은 ‘대북지원 등 쌀 재고량 조절’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사진은 11월17일 여의도에서 있은 전국농민대회 모습. <연합뉴스>

쌀종이 생산에 대한 쌀가공업체와 식품업계의 반응도 한마디로 ‘시큰둥’이다. 쌀국수, 쌀라면, 쌀종이 등에 대한 시장의 수요가 한정돼 있어 매출에 대한 기대가 높지 않은 데다 ‘쌀식품은 웰빙’이라는 인식이 있어 정부가 원하는 대로 가격을 낮추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한 쌀가공업체 사장은 “돈 들여 개발해 봐야 시장은 한정돼 있다. 쌀종이가 나온다고 월남쌈을 많이 먹겠느냐”고 반문했다. 농민들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곽길자 전국농민회 정책국장은 “막걸리가 인기를 얻으면서 막걸리를 빚기 위한 수입쌀 소비가 늘어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쌀종이 등 아이디어는 좋지만 결국 수입쌀 소비만 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제는 이 대통령의 관심 범위가 식품산업에만 국한돼 있을 뿐 쌀값 문제 등 일반 농민들의 걱정거리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쌀사랑’만 있지 ‘농촌 사랑’ ‘농민 사랑’은 없다는 지적이다.

전국농민회총연맹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등 농민단체들은 ‘대북지원을 통한 쌀 재고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곽길자 정책국장은 “지금의 쌀 대란의 가장 큰 원인은 대북 쌀 지원 중단으로 인한 재고미의 급증에 있다”면서 “해마다 40만톤에 이르는 물량이 대북 지원을 통해 시장에서 격리돼 왔지만 지난해부터 중단된 이래 80여 만톤의 쌀이 재고물량으로 창고에 쌓여 있다”고 지적했다. 쌀 대란 해결의 근본적 방안인 대북 쌀 지원을 즉각 재개하고 최소한의 생산비를 보장하는 쌀값 현실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정부는 매년 예산안에 반영은 하고 있지만 대북 쌀·비료 지원은 전면 중단된 상태다. 내년도 예산안에도 북한에 대한 쌀 40만톤과 비료 30만톤 지원금액이 반영돼 있다. 최근 정부에서 그나마 인도적 지원이라며 ‘옥수수 1만톤’을 보낸다고 발표했지만 남아도는 쌀 대신 중국산 옥수수를 수입해 보내는 것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