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쏟아지는 ‘선거 펀드’ 자칫하면 ‘쪽박 펀드’

6ㆍ4선거 앞두고 기초단체장 예비후보ㆍ교육감 후보들까지 너도나도 출시…

15% 득표 못하면 원리금도 보장 못 받는 ‘고위험상품’ 부작용 우려

요즘 정치자금 조달 창구로 ‘선거 펀드’가 인기다.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출마자들이 선거자금을 모으기 위해 잇따라 펀드를 출시하고 있다. 과거 일부 광역단체장 출마자들만 개설했던 ‘선거 펀드’는 최근에는 기초자치단체장 예비후보들로까지 확산됐다. 여기에 교육감 후보들까지 선거자금 마련을 위한 돈줄로 펀드를 선호하고 있다.

하지만 ‘선거 펀드’ 열풍이 거세질수록 선거가 끝난 이후에 원리금을 갚지 못하는 등 부작용이 속출할 것이라는 경고음도 나오고 있다.

후원회 둘 수 없는 출마자들에게 인기
‘선거 펀드’는 선거비용 마련을 위해 지지자들로부터 일정액을 투자받는 형태로 이뤄진다. 후원회를 둘 수 없는 예비후보자들로서는 단기간에 많은 자금을 모을 수 있어 정치자금 조달의 새로운 통로가 되고 있다. 여기에 출마자들 입장에서는 펀드 모집 자체가 하나의 이벤트이자 홍보이다. ‘선거 펀드’가 선거전략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얘기다.

‘선거 펀드’는 지난 2010년 지방선거 당시 경기도지사에 출마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유시민 펀드’를 결성한 것이 시초였다. 그때만 해도 생소했던 ‘유시민 펀드’는 출시 3일 만에 41억원을 모집해 선풍을 일으켰다. 당시 중앙선관위는 선거운동을 활성화시킨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판단해 ‘선거 펀드’를 인정해 줬다. ‘선거 펀드’가 일종의 유사수신행위라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 선관위는 “‘선거 펀드’는 금융상품이 아닌 개인간의 거래이기 때문에 관련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유권해석을 내렸다. 만약 ‘선거 펀드’가 금융상품이라면 유사수신행위를 금지하고 있는 현행법(‘유사수신행위 규제법’)에 따라 위법이다. 금융상품은 감독당국의 엄격한 약관 심사 등을 거쳐야 출시될 수 있는 데 비해 ‘선거 펀드’는 그런 절차를 밟고 있지 않다.

새정치민주연합 경기도당 창당대회가 열린 3월 18일 경기도 수원실내체육관에서 경기지사 출마를 선언한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 김진표 의원, 김창호 전 국정홍보처장, 원혜영 의원(왼쪽부터)이 참석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김진표·원혜영 의원은 ‘선거 펀드’를 출시했다. / 박민규 기자

‘선거 펀드’는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도 간간이 등장했다. 최근에는 기초단체장 후보들과 소속 정당이 없는 교육감 후보들까지 ‘선거 펀드’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충남 천안시장에 출마한 무소속 박성호 예비후보는 ‘시민펀드’를 출시해 9일 만에 목표액인 1억5000만원을 채웠으며, 광주시 서구청장에 출마하는 임우진 예비후보는 ‘희망 새자치 펀드’를 출시해 법정 선거비용인 1억8500만원을 모집하고 있다.

일반 정치인들보다 재력이 떨어지는 교육감 예비후보들이 기댈 곳은 ‘선거 펀드’밖에 없다는 말도 나온다. 교육감 후보들은 일정 기간 교육계 경력이 있어야 출마가 가능하기 때문에 대부분 교사·교수 출신으로 경제력이 충분치 않다. 광주시교육감에 도전하는 윤봉근 예비후보자는 법정 선거비용인 6억9300만원을 펀드로 모으고 있으며, 김지철 충남교육감 예비후보도 ‘새교육드림펀드’라는 이름으로 5억원을 모집할 계획이다.

‘선거 펀드’를 출시한 예비후보들은 이구동성으로 선거가 끝나면 국가로부터 선거비용을 보전받아 투자자들에게 원금과 이자를 상환하겠다고 큰소리치고 있다. 그러나 만약에 선거에서 15% 이상의 득표율을 올리지 못할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물음에는 “그럴 리 없다”며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

후보자들이 선거비용을 국가로부터 전액 보전받는 경우는 선거에서 당선했거나 총 투표자의 15% 이상 득표했을 때만 가능하다. 만약 후보자가 10∼15%의 득표를 하면 절반만 되돌려받고, 10% 미만이면 한푼도 돌려받지 못한다. 일반적으로 기초자치단체장과 교육감 선거에서는 후보자가 난립하기 때문에 1~2위 득표자만 득표율이 15%를 넘는 점을 감안하면 ‘선거 펀드’는 안전한 상품이 아니라 고위험 상품인 것이다. 여기에 ‘정치 펀드’는 정식 후원금이 아니기 때문에 선관위에 신고할 필요도 없다.

최초로 ‘선거 펀드’로 선거자금을 조달한 유시민 국민참여당 경기지사 후보가 2010년 5월 16일 경기 수원 월드컵경기장 보조구장을 찾아 체육대회를 하고 있는 주민들과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원리금 반환 둘러싼 소송사태 가능성
실제로 ‘선거 펀드’를 모집했다가 15% 이상을 득표하지 못해 원리금을 제때에 갚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지난 2012년 총선에서 서울 마포을 지역에 출마했던 강용석 전 의원은 연 6% 이자로 돈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하고 ‘선거 펀드’를 출시해 2억원을 모았다. 투자자들 중에는 3만∼5만원 정도의 소액투자가 많았지만 100만원, 1000만원을 투자한 사람도 있었다. 강 전 의원은 총선에서 득표율이 4.3%에 그치면서 선거비용을 한푼도 되돌려받지 못했다. 강 전 의원은 일부 투자자들에게 상환 날짜인 6월 10일을 지키지 못하고, 7월에 가서야 상환했다.

전문가들은 ‘선거 펀드’가 유행하면서 다양한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고, 사회문제로 비화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이번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는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경우 후보자를 공천하지 않을 방침이어서 새정치연합의 적자임을 표방하고 나오는 후보들이 과거 지방선거 때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는 당에서 공천을 통해 후보를 걸러줬지만 이번에는 무공천으로 선거가 치러진다. 새정치연합의 텃밭인 광주 서구청장의 경우 이미 예비후보만 6명이 등록했다. 정식 후보등록 기간인 5월 15∼16일에는 더 많은 후보들이 등록할 것으로 보인다. 4년 전 광주 서구청장 선거의 득표율을 보면 3명이 출마했는데도 불구하고 득표율 15%를 넘은 것은 당선자 한 명뿐이었다.

특정 정당으로부터 선거자금을 차입하기 어렵고 정당의 조직을 활용할 수 없는 교육감들의 경우 ‘선거 펀드’는 더욱 위험한 유혹이다. 선거법에 따르면 교육감 선거비용 제한액은 광역단체장과 비슷한 수준으로, 서울의 경우 38억7200만원이다. 문제는 이 거액을 후보자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서울교육감 선거에 출마할 경우 후보자가 현금으로 최소 20억원은 갖고 있어야 선거운동을 제대로 할 수 있다. 현금이 있어야 방송광고 등 홍보물을 제작할 수 있고, 유급 선거운동원을 이용한 조직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정치컨설턴트는 “후보들이 돈을 주지 않으면 유세차 등 모든 선거지원 조직이 일시에 올스톱 된다”며 “방송광고 등 몇몇 홍보수단은 선불을 지급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선거가 끝나고 만약 후보자가 펀드를 상환하지 못할 경우 민사소송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펀드를 모집한 정치인이 유권자들에게 돈을 돌려주지 못하더라도 선거법과 정치자금법에 따른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비난의 화살이 이를 허용한 선관위로 향할 수밖에 없다. 신율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만약 후보자가 선거에서 15%를 득표하지 못할 경우 원리금을 약속한 날짜에 갚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럴 경우 선거가 출마자와 유권자를 갈라놓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