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두 전 대통령의 ‘온라인 열람’ 희비교차

퇴임을 6개월여 앞둔 노무현 대통령의 숙원은 ‘온라인 열람’이었다. e지원 시스템에서 대통령기록관리시스템(PAMS)으로 기록물을 이관하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노 대통령은 전문가들에게 봉하 사저에서 퇴임 후 이 자료들을 볼 수 있을지 수차례 확인했다고 한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당시 보안체계나 네트워크망이 구축되지 않아서 온라인 열람이 안 됐기 때문이다.

반면 이명박 전 대통령은 퇴임 이후 사저에서 온라인으로 대통령기록물을 열람할 수 있는 최초의 대통령이 됐다. 2010년 8월 27일 당시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은 전직 대통령이 온라인 열람을 요구할 경우 대통령기록관의 장은 전용회선·열람전용 컴퓨터 등 열람장비를 설치할 수 있고, 열람장비의 설치장소는 전직 대통령의 사저로 한정하도록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재임 중 관련법 개정
‘온라인 열람’ 여부로 두 전 대통령의 희비는 엇갈린다. 노 전 대통령은 온라인 열람이 불가능해지면서 봉하마을에 e지원 시스템을 복사해간다. 이로 인해 2008년 정치권을 떠들썩하게 했던 노 전 대통령의 대통령기록물 유출 논란이 벌어졌다. 이는 이명박 정부로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공격하기 좋은 소재가 됐다. 정작 이명박 전 대통령 본인은 자신의 재임 기간 중에 관련법을 개정해 온라인 열람의 혜택을 보며 이러한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있게 됐다.

2007년 12월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청와대 백악실로 들어오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노 전 대통령의 온라인 열람이 불가능했던 이유는 당시 제도적·기술적 한계 때문이었다. 이 한계는 당시 빠듯했던 예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퇴임 후 봉하마을에서 자신의 기록을 열람, 활용하려는 계획을 검토했다. 봉하마을에서 성남 대통령기록관까지의 거리는 멀었다.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의 기록물을 열람하고 활용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하지만 온라인 열람을 하기에는 아직 보안이 철저한 네트워크망이 구축되지 않은 상태였고, 이는 무엇보다 재임 말기였기 때문에 관련 예산을 확보하기 어려웠던 요인이 컸다.

노무현 정부 말기에 시작된 대통령기록관리시스템 사업은 3차에 걸쳐 진행됐다. 노무현 정부 때는 1차만 진행됐는데, 2007년 5월부터 11월까지 6개월 동안이 1차 사업기간이었다. 이때 사업비는 고작 10억6000만원에 불과했다. 임기 말 레임덕이었기 때문에 1차 사업비로 이만큼의 예산을 확보하는 것도 어려웠다. 당시 행정자치부의 자투리 예산을 겨우 맞춰 1차 사업비를 마련했고, 1차 사업비의 대부분은 e지원의 기록물들을 대통령기록관에 제대로 인수인계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춰서 사용됐다. 과거 교육부 네트워크 시스템이었던 나이스를 개발하는 데 수십억원이 들어간 것과 비교한다면 터무니없이 적은 액수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보안이 확보된 네트워크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엄두를 내지 못했다. 온라인 열람의 길은 기약없이 막혀버린 셈이다. 노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에 e지원 시스템의 사본을 가져가게 된 것은 이러한 시스템 기능 미비 때문이었다. 결국 이 일로 노 전 대통령은 한바탕 홍역을 치르게 된다.

2008년 3월, 이명박 정부는 참여정부가 인계한 e지원시스템 기록에서 ‘기록이관, 인계인수, 퇴임 후 기록활용 준비현황 보고’라는 문건을 발견했다. 이명박 정부는 이를 근거로 대통령기록물이 노무현 대통령의 사저로 유출됐다고 주장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 측은 “대통령 기록의 진본 전자기록은 이미 국가기록원(대통령기록관)에 이관했으며, 열람을 위한 시스템이 갖추어지지 않아 e지원시스템을 복사했으며, 이것은 정당한 열람권의 행사”라고 주장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때는 시스템 미비
하지만 언론에서는 각종 추측성 의혹들이 이어졌다. 40만명의 인사자료가 유출되었다거나, 북핵 기밀문건이 청와대에는 없는데 봉하마을에는 있다는 내용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사저에서 청와대를 해킹한다는 식의 확인되지 않은 보도까지 쏟아져나왔다. 당시 사건은 노 전 대통령의 사저에 보관하고 있던 e지원 시스템의 하드디스크와 백업디스크를 반환함으로써 종결됐다. 하지만 국가기록원은 당시 참여정부 측 인사 10명을 대통령기록물 유출 건으로 고발했고, 결국 검찰 조사에까지 이르게 됐다.

반면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2차·3차 사업을 차례로 진행하면서 퇴임 이후 온라인 열람의 길을 열어두었다. 대통령기록관리시스템 2차 사업은 2008년 9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됐는데, 이때는 기록물의 관리기능 및 보안기능에 중점을 뒀다. 2차 사업에서 보안문제가 해결되고, 2010년 8월 국무회의에서 온라인 열람이 가능한 법 개정이 이루어지자 이명박 대통령은 퇴임을 6개월 앞둔 2012년 7월부터 12월까지 약 6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시스템을 구축했다. 전직 대통령의 온라인 열람이 가능하도록 하는 시스템이었다.

‘기록하라’는 회의 때마다 노 전 대통령이 가장 많이 했던 말이었다. 참여정부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수석비서관 회의 등 각종 회의 때마다 수도 없이 ‘기록하라’ ‘남겨라’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이 기록들은 e지원을 통해서만 이루어졌다. 이는 실무자들에게는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특히 정무와 같은 민감한 영역에서는 더욱 그랬다. 간혹 실무자들 사이에서는 종이문서로 대체할 수 없느냐는 불만들이 제기됐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e지원에) 남기라’는 것이었다.

관계자들의 말을 증명하듯, 노 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 가장 기록을 많이 남긴 대통령이다. 참여정부 이전까지만 해도 대통령기록물은 평균 약 33만건에 불과했다. 참여정부는 825만여건의 대통령기록물을 남겼다. 하지만 기록물을 가장 많이 남긴 ‘기록대통령’은 아이러니하게도 퇴임 이후 자신의 기록물을 자유롭게 열람하지 못했고, 세상을 떠난 지금도 자신이 남긴 기록물로 번번이 홍역을 치르고 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