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집권 4년차 MB측근 비리 ‘신호탄?’

이국철 SLS그룹 회장 신재민 스폰서 폭로… 꼬리 자르기 넘어 실세 겨눌지 주목

이국철 SLS그룹 회장이 폭로한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의 스폰서 논란이 이명박 정부의 실세 이름까지 나오는 상황으로 번졌다. 이명박 정부의 레임덕을 급격하게 불러올 수 있는 사안으로 확대된 것이다. 올해 이 대통령의 친인척·측근 비리가 연이어 쏟아지고 있다. 정치권은 검찰의 칼끝이 꼬리 자르기에 그칠 것인지, 아니면 실세까지 겨눌지를 주목하고 있다.

9월 21일 이국철 SLS그룹 회장이 서울 강남의 사무실에서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에게 건넨 상품권 카드 구입 명세표를 가리키고 있다. / 정지윤 기자

이국철 회장은 지난 10여년 동안 신재민 전 차관에게 수십억원을 줬다고 폭로했다. 이 회장은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과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 임재현 청와대 정책홍보비서관의 이름까지 거론했다. 이 회장은 이들에게 돈을 주거나 접대를 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이를 받아 ‘포항 인맥’까지 거론했다. 9월 27일 박지원 의원은 국회 법사위 서울고·지검 국정감사에서 “이국철 회장에게 30억원을 받아간 인사는 여권인사 측근”이라며 “전직 한나라당 중앙위원회 지도위원인 윤모씨, 포항지역 인사인 문모씨, 한나라당 박모 의원의 보좌관 등 3명”이라고 주장했다.

‘검찰, 권력의 핵심까지 조사하지 못할 것’
정치권에서는 박 의원이 말했던 포항 인맥이 ‘권력의 실세’라며 구체적인 이름이 나오기 시작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권력의 실세 이름이 국회에 돌고 있다”면서 “이와 함께 한때는 실세였지만, 지금은 친이계와 등을 돌린 정치인의 이름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소문으로만 떠돌던 권력의 실세를 구체적으로 밝힌 정치인은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다. 홍 대표는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의 가까운 친인척과 측근들에 대해선 모두 그 뒤(비리의혹)를 살펴볼 것이다.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등도 예외가 없다”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어느 누구도 쉽게 입에 올리기 힘들었던 이 대통령의 형 이름을 구체적으로 적시한 것이다.

하지만 한나라당 내에서 검찰이 권력의 핵심까지 조사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는 드물다. 한나라당의 한 친박계 의원은 “지금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는 인사들은 청와대가 쳐내도 된다고 판단한 인물들일 것”이라며 “측근 비리가 어떻게 흘러가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이(상득) 의원까지 수사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국철 회장이 신 전 차관의 스폰을 폭로할 당시에는 검찰에서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검찰 수사가 지지부진했다. 하지만 상황이 180도 변하기 시작했다. 이 회장이 거론한 곽 위원장, 박 전 차관, 임 비서관 등 3명은 명예훼손 혐의로 3억원대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검찰이 수사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신 전 차관은 이 회장에 대해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이 회장은 이에 대해 소송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주고 있다. 이 회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창원지검 특수부 수사 때 검찰이 계열사 사장 노트를 압수했다”면서 “그 노트에는 일본 법인장이 박 전 차관을 일본에서 접대한 내용이 적혀 있다”고 대응했다. 이 회장이 말한 ‘창원지검 특수부 수사’는 2009년 9월부터 열린우리당 비자금 전달 의혹과 관련해 한 달 넘게 창원지검에서 수사를 받았던 것을 말한다. 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9월 27일 서울중앙지검 국정감사에서 이 회장이 발언한 노트를 제기했다. 서울중앙지검장은 “아직 창원지검 기록은 확인하지 못했다”고 답변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가 이 사건을 맡아서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갔다.

이국철 회장과 관련한 또다른 폭로가 10월 4일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이뤄질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폭로의 주인공은 박지원 의원이다. 이에 대해 박 의원은 “국감장에서 폭로를 할지, 아닐지는 지금 말할 단계가 아니다”라면서 “우선 좀 지켜보자. 언론에서 요즘 많은 것들이 터지고 있어 지켜보고 있다”고 대답했다. 9월 22일 이국철 회장은 기자회견 이후 언론과의 접촉을 꺼리고 있다. 이 회장의 전화기는 꺼져 있는 상태고, 서울 신사동에 있는 SLS중공업 서울사무소에도 잘 나오지 않고 있다.

비리 의혹에 무기력한 야당의 대응
이국철 회장의 폭로로 과거에 발생한 이명박 대통령 친인척·측근 비리 사건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과거에 벌어졌던 정권 비리에 대해 수사는 어디까지 진행되고 있을까.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인 것은 부산저축은행 로비스트 박태규 리스트다.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 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 김해수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 등이 연관되어 있다. 김두우 전 수석, 은진수 전 감사위원은 구속된 상태다. 이국철 회장 리스트에 올라 있는 ‘왕차관’ 박영준 전 차관은 ‘C&K 카메룬 다이아몬드 사업’과 ‘KMDC 미얀마 가스전 개발’ 사업에 개입했다는 의혹까지 사고 있다. 이번 국정감사에서는 이명박 정부가 자랑했던 ‘자원외교’가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의 친인척 비리도 끊이지 않고 있다. 그 시작은 2008년 이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의 사촌언니 김옥희씨가 공천 명목으로 30억원을 수수한 사건이었다. 김옥희씨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에 관한 법률에 의한 사기 혐의로 징역 3년이 확정돼 수감 중이다. 4대강 건설사업권을 주겠다며 건설업자로부터 3억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이 대통령 사촌형 이모씨와 두 아들 사건도 검찰이 수사 중이다. 아파트단지 철거권 수주를 도와주겠다는 명목으로 5000만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는 이 대통령 이종 9촌 조카 정모씨는 2008년 12월에도 분양대행권 사기로 구속 기소돼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은 바 있다. 이 대통령 셋째 사위 조현범 한국타이어 부사장은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를 받았는데,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정권 실세와 이 대통령 친인척의 비리가 연달아 터지지만, 이에 대응하는 야권의 모습은 무기력하기만 하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지도부가 너무하는 것 아니냐. 이렇게 정권 비리가 쏟아지는데, 너무 무기력하다”면서 “지도부가 관료 출신이 많아서 정치력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협상만 하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과거 지도부 구성원이었던 민주당 의원도 “내가 현 지도부를 비판하는 것은 좀 그렇다”면서 “하지만 이 대통령 측근 비리에 당 지도부가 너무 안일하게 대응하는 것 같다. 지도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의원들을 독려해야 하는데, 그런 움직임이 전혀 없다”고 토로했다.

얼마 전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 권력형비리 진상조사특위’를 구성했다. 위원장은 박주선 최고위원이 맡았다. 법제사법위원회나 정무위원회에 속한 의원들이 특위에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아직까지 특위 구성이 지지부진하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10월 3일 서울시장 후보 경선이 끝난 후에야 특위가 제대로 구성될 것 같다”면서 “아직까지 이명박 대통령 측근 비리에 관련된 제보도 없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한나라당 대다수 의원들은 이 대통령 측근 비리를 외면하고 있는 듯한 모습까지 보여주고 있다.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도 마찬가지다. 한나라당 한 소장파 의원은 “홍(준표) 대표가 이 대통령 측근 비리에 대해서 계속 언급하고 있지 않나. 우리(소장파)까지 나설 필요는 없다”면서 “우선은 국감 준비로 전혀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