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2012년 총선·대선, 전초전 불붙었다

야권 ‘연합정치론’·여권 ‘MB차별화’ 조기 가시화될 듯

“통상적으로 정치권의 새판짜기가 일어나는 것은 대선을 앞두고서다. 그런데 유의해야 할 것은 2012년은 총선과 대선이 한 해에 치러진다는 것이다.

총선과 대선이 한꺼번에 치러지는 2012년에 앞서 2011년엔 정계 지각변동이 점쳐지고 있다.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한 후보의 거리유세에 나온 시민들이 후보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한국 정치에서 흔치 않은 경우다.” 정대화 상지대 교수의 말이다. 2012년의 총선과 대선은 8개월의 시차를 두고 치러진다. 이 경우 총선은 대선의 전초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가장 최근엔 1992년에 그런 일이 있었다. 당시 총선을 앞두고 새 당이 만들어졌다. 정주영의 통일국민당. 정주영 당시 총재는 그해 12월 대선까지 완주했다.

‘백만민란’ 진보개혁연합 추동할까
2011년은 바로 그 2012년의 대회전(大會戰)을 예비하는 해다. 가장 빨리 이 흐름을 캐치해 움직이고 있는 쪽은 정치권 바깥에 자리잡고 있다. 백만민란 국민의명령(이하 ‘민란’). 영화배우 문성근씨와 김두수 사회디자인연구소 상임이사 등이 주도하고 있다. 백만의 국민들이 모여 야권 단일화를 ‘명령’하면 야권대통합을 통해 2012년 양대 선거에서 진보개혁 진영이 수권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지난 2010년 6·2 지방선거 직후부터 준비를 시작했다. 백만의 결집은 가능할까. 2010년 12월 24일 현재 홈페이지에 표시된 참여시민 수는 4만5000여명. “연말까지 5만을 모으겠다”며 31일까지 남은 시간을 분·초 단위까지 카운팅 하고 있었다.

전국을 순회하면서 ‘백만민란’ 회원 가입을 호소하는 문성근씨를 찾았다. 2010년 12월 21일 오후. 서울 노원역에서 거리유세를 하고 있었다.문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한나라당이 너무 짜증나서 나왔습니다. 예산안을 날치기했어요. 이게 가능한 건 야당이 다섯 개로 분열돼 있기 때문입니다. 2012년, 자기들이 또 해먹을 수 있을 것 같아 국민을 우습게 보는 겁니다. 이래선 안되겠다, 국민의 힘으로, 국민의 힘을 끌어모아서 하나로 묶어내자. 전국에서 골고루 지지받는 야권 단일정당을 만들어내자. 그렇게 이명박 정부를 혼내주고,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1대 1로 ‘맞짱’을 떠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문씨의 호소는 비교적 쉬운 단어로 명료하게 메시지를 전하는 식이었다. 오고가는 시민들은 선뜻 문씨의 호소에 호응했다. 특히 젊은층의 회원 가입 참여가 많았다. 문씨는 마이크를 잡는 틈틈이 백만민란 회원 가입을 마친 사람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문씨는 기자에게 “아직 집계 안한 참여신청도 많기 때문에 연말까지 5만을 모으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며 “내년 5만이 다시 10만이 되면 그 힘을 민주당도 무시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민주당의 권력의지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도 2012년을 앞둔 2011년, 야권의 가장 큰 ‘화두’가 연합정치가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김 교수가 말하는 권력의지란 권력 교체와 진보개혁세력의 연합을 위해 민주당이 얼마나 ‘양보할 수 있느냐’를 의미한다. 김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야권의 핵심전략은 ‘반MB’가 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감동’을 얼마나 결합시켜내느냐가 야권으로서는 숙제다.” 야권 정당들 사이의 연합정치 논의가 상층의 정치공학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정치권에 부여된 과제는 두 개다. 하나는 진보와 개혁을 공통으로 묶어 세울 수 있는 가치의 재구성. 또 하나는 현실적인 ‘이익의 양보’다. 2011년엔 1년 내내 이와 관련한 논의가 벌어질 것이고, 그를 위한 ‘아래로부터의 강제’가 김 교수가 말하는 ‘감동’이다. 김 교수는 “문성근씨가 추진하는 민란프로젝트는 그 ‘아래로부터의 강제’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2010년 12월 21일, 서울 노원역 앞 광장에서 문성근씨 등이 야권 단일정당 추진 거리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 정용인 기자

여권에서 조직적 움직임은 상대적으로 잘 보이지 않는다. 정치권 주변에선 박근혜 의원이 지난 2010년 12월 20일 주관한 ‘사회보장기본법 전부 개정안 공청회’가 사실상 박 의원의 ‘대권 출사표’로 보고 있다. 여권 유력 대권주자로 간주되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최근 무상급식을 ‘복지 포퓰리즘’으로 규정하며 서울시의회와 교육감에 각을 세우는 것도 ‘대권행보’의 일환이라는 것이 지배적 해석이다. 보수·여권의 사정에 밝은 한 보수 인터넷매체 대표는 “(오 시장의 행보는) 초조함의 발로”라고 말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이명박 대통령의 낙점이 김문수 경기도 지사 쪽으로 기울었다. 무상급식 논란을 일으키는 것은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려는 적극적인 공세인 동시에 친이(親李)의 무게중심이 쏠리는 것을 막으려는 시도다.”

“올해 11월까지 재편 완료해야”
뉴라이트전국연합의 박경범 대변인은 “보수세력의 입장에서 2011년은 정권 재창출의 기초를 다지는 해”라고 말했다. 보수의 가치는 ‘대한민국 정체성’이다. 박 대변인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 전 10년의 좌파정권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대한민국 정체성에 대해 불확실한 태도를 보였던 정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뉴라이트전국연합은 지난 2007년 대선처럼 노골적으로 한쪽 편을 드는 식의 운동은 하지 않을 것”이라며 “누가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충실하냐에 따라 보수단체가 지지하는 후보가 자연스럽게 결정되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최근 선진통일연합이라는 운동단체를 만든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은 “대선과 같은 현실정치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들과 함께 하는 운동”이라며 현실정치 참여 가능성을 누차 부인한 바 있다. 하지만 정대화 상지대 교수는 “정치인들의 말을 그대로 믿을 필요는 없다”며 “과거에 비춰보면 8룡, 9룡 식으로 여권 쪽에 비교적 인물군이 많은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시사평론가 유창선씨는 “(여권의 경우) 박근혜·김문수·오세훈이 ‘빅3’를 형성하겠지만 지금 시점에서 볼 때 박근혜가 최종적으로 여권 후보가 되는 것은 부동의 사실”이라고 말했다.

여권에 맞선 진보개혁의 연합정치 실현 가능성에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박성민 민컨설팅 대표는 “지금 연합이든 연대든 야권이 모이는 것은 DJP연합 때보다 오히려 굉장히 어려운 과정일 것”이라며 “게다가 반한나라당 진영에 원심력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말한다. “2002년 대선 이후 진보정당, 진보정치세력이 확실히 성장한 것은 사실이다. 지식인 그룹에서도 진보정치 강화론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여기에 2008년 이후 자유주의 정당인 국민참여당이 나타났다는 것도 변수로 봐야 한다. 거기에 민주당이 다른 정당은 말할 것도 없고 자체적으로 당을 하나로 묶어내는 추동력이 있을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회의적이다.”

당장 양보할 여지가 있는 지방선거에 비해 실질적인 희생이 필요한 총선에서 설령 연합후보를 낸다고 하더라도 ‘유력 후보’의 이탈을 막을 힘이 있느냐는 시각이다.

‘보수대안’ 박근혜 넘어 설 수 있나
박 대표는 2011년 한국 정치를 이끌어갈 가장 큰 동력이 2012년 총선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북한 변수가 있을 것이고, MB 집권 4년 차에 들어서면서 각종 스캔들이 터질 가능성이 있다. 야당은 이것을 최대한 이용할 것이고, 여권 내에서도 총선을 앞두고 당·청간 갈등이 고조될 것이다. 대선후보군도 MB정부와 차별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지난 2010년 6·2 지방선거를 앞둔 3월, 야권 정당과 시민단체 대표자들이 야권연대의 원칙과 방향을 담은 1차 합의문을 발표하고 있다. | 우철훈 기자

정치권은 어떻게 생각할까.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우선 시민사회세력과 민주노총 등과 함께 ‘진보대통합을 위한 연석회의’를 만드는 데 합의하고 첫 걸음을 떼었다(<주간경향 905호> 관련기사 참조). 현실적으로 국민참여당의 경우 ‘총선 전 연합보다는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빅딜을 시도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양순필 국민참여당 대변인은 “국민참여당으로서는 다음 총선에서 원내 진입을 하고 교섭단체를 구성하는 것이 당연히 정당으로서 가장 큰 소망”이라면서도 “하지만 국민들이 보기에 야권이 대연합해서 한나라당과 1대 1 구도를 만드는 것이 야권이 압승할 유일한 방법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기 위해서는 민주당이 야권연대에 진정성이 있는 자세로 임해야 결과적으로 민주당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인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민주당에서 야권대통합·연합정치 논의를 이끌고 있다. 그는 “연합과 통합은 당위이면서 절대명제”라며 말을 꺼냈다. 연합보다는 통합이 국민들에게는 더 설득력이 있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연합정부·연립정부를 이야기한다면 왜 연합정당이나 연립정당은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인가. 연합공천을 통한 후보단일화는 법적으로 강제할 방법이 없다. 국민들에게는 오히려 정치공학적인 것으로 비칠 수 있다.” 그는 2011년엔 진보와 개혁세력의 통합에 대한 국민의 요구가 현재 ‘민란’에서 추진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넓은 폭과 깊이로 제기될 것이라고 말했다. “진보정당도 지난 2008년 선거에서 민주당의 참패와 더불어 민주노동당에 대한 지지도 반토막난 것에서 국민의 뜻을 읽어야 한다. 지역구 선거에서는 민주당을, 정당비례에서는 진보정당을 택했던 사람들의 바람 역시 무시해선 안된다. ‘결과와 상관없이 진보정당을 하겠다’면 그냥 하면 된다. 하지만 2012년에 수권 가능한 진보정당을 만드는 방법이 있다면 고려해볼 만한 일 아닌가.” 한나라당 공식라인에서는 “아직은 총선이나 대선 관련 논의를 본격화하는 것은 이르다”는 입장을 보였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리더십이다. 여든 야든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지금 거론되는 인사 말고 ‘제3의 히든카드’가 대두될 가능성이 있을까. 정대화 교수는 “2012년이든 2017년을 내다보는 인사든 현재 거론되는 후보군 중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민란’의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최민희 전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은 “이 판(야권대통합운동)을 감당하고 결국 정리해내는 사람이 야권의 후보가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아직 그 인물이 누가 될지는 미지수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