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방위산업 ‘손 큰 로비’가 주도한다

매출 수천억대 88개 방산업체 커넥션 대해부… 극비계획 특성 따라 퇴역장교 동원 군사기밀 빼돌려

6월 9일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개최된 대한민국 해군 최신형 잠수함 손원일함 진수식. <청와대 사진기자단>

‘연탄차’ ‘청상어’ ‘백상어’….

군(軍)과 방위산업체 관계자 사이에서 통용되는 은어다. 연탄차는 ‘탄약운반장갑차’를 뜻하고 청상어는 잠수함 등에서 쓰는 ‘경어뢰’, 백상어는 ‘중어뢰’를 일컫는다. 일반인이 듣기엔 어촌에서나 쓰는 말 같지만 실상은 가공할 위력을 갖고 있는 살상무기다. 보안을 생명으로 여기는 방위산업은 이렇듯 평범한(?) 단어조차도 은어로 바꿔 부르거나 기호로 표기를 한다. 그만큼 보안에 각별한 신경을 쓴다.

방위산업=일부 계층의 전유물=돈

방위산업은 대부분 국가에서 ‘황금알을 낳는 산업’으로 여긴다. 소수의 특정인만 접근할 수 있는 분야인 데다 정치권 실력자 또는 군 관계자와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지 않을 경우 진입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독점권과 결제가 분명하다는 장점이 있다. 이렇다 보니 ‘방위산업=일부 계층의 전유물=돈’이라는 공식이 공공연한 비밀이 된 지 오래다. 더욱이 정부가 발주 주체라 무엇보다 보증이 확실하다.

우리나라 방위산업을 주도하는 것은 크게 군수품을 납품하는 방산업체와 외국 무기를 도입하는데 중재자 노릇을 하는 군수품 중개상으로 나뉜다.

현재 방위산업을 좌지우지하는 방산업체는 88개 정도다. 2004년 기준으로 직접적인 종사자만 2만3000여 명에 달한다. 방산업체 대부분은 굴지의 재벌그룹과 직간접적으로 인연을 맺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이 한국항공우주산업(주)이다. 국방력 강화 정책과 분위기에 힘입어 2002년 12월 기준으로 8853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한국항공우주산업은 국산기종인 KT-1과 KE-16, T-50 등을 주력제품으로 생산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산업은 대우중공업과 삼성항공, 현대우주항공 등 3사가 항공관련 부문을 통합해 설립한 회사로 대우·삼성·현대 등 우리나라 선두 재벌의 공통분모를 집약한 회사다. 사장은 YS시절 통상산업부 장관, DJ시절 국무조정실장을 지낸 정해주씨로 정통 관료 출신이다. 재벌과 관료 결합의 상징적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매출 2위인 삼성테크윈(주)은 4596억 원을 기록했다. 또 각종 탄약류를 생산하는 (주)한화와 (주)풍산 등은 각각 2548억 원, 2214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밖에 함포와 화포를 생산하는 위아(주)는 702억 원의 매출을 올렸고 대한항공은 723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들 기업에는 적지 않은 전직 군 관계자가 활약하고 있다.

월남전을 계기로 무기 현대화에 본격 나섰던 우리나라 방위산업체는 꾸준한 투자에 힘입어 창군 이후 처음으로 K-9 자주포와 T-50 고등훈련기, 통신·야간투시 장비 등 국산 무기를 아프리카에 수출했다.

수억 원을 현찰로 건네주는 로비스트

세계 최초 자동화 탄약운반장갑차 K-10.

이들 방위산업체 중 규모가 큰 것은 재벌 총수가 직접 로비에 나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무기 구매 결정권을 가진 정권의 실세는 물론, 국방부 조달 관계자를 평소 관리하는 것은 물론이다. 예산배정의 키를 쥐고 있는 국회 국방위원과 예결위원도 주요 관리대상이다.

이들의 특징은 손이 크다는 점이다. 율곡비리 사건을 보면 별로 크지 않은 방산업체 사장이 당시 육군참모총장에게 수억 원을 현찰로 그 자리에서 건네준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이렇게 방위산업체가 군과 정치, 재벌과 커넥션을 이룰 수밖에 없는 이유는 독특한 사업추진 방식 때문이다. 방위산업은 우선 국방부에서 첨단 무기 등 군수품 구매 계획이 극비리에 세워지고, 이때부터 방위산업체는 물론 군수품 중개상의 치열한 ‘탐색전’이 시작된다. 군수품 거래의 성패를 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가 정보력이기 때문에 정보에 모든 역량을 쏟는다. 방위사업은 시작과 끝이 모두 기밀로 다루어지기 때문에 일반인은 접근 자체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군 출신 인사의 ‘선(線)’이 대거 동원된다.

이에 따라 방위산업체 또는 군수품 중개업체는 대개 퇴역 장성이나 장교를 중역으로 고용하고 있다. 퇴역 장교 스스로 군수품 중개상으로 나서는 경우도 많다. 방산업체가 앞 다퉈 연줄을 대고, 관리하는 게 하나의 특화분야로 굳어졌을 정도다.

워낙 전직 군인들의 비리가 많아 공직자윤리법에는 ‘대령 이상 장교 및 이에 상당한 군무원’은 퇴직 후 2년 이내에 관련 기업체에 취업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고급장교 중 상당수는 직접 관련이 없는 기업이나 연구기관에 취업한 후 비공식적으로 무기중개업체나 방산업체에서 일을 한다. 무기중개상이나 방산업체가 군 출신 인사를 중역으로 고용하거나 군 출신 인사가 무기중개상으로 직접 나서는 것은 군내 인맥을 통해 정보를 얻거나 로비를 하는 것이 한결 수월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방위산업 관련 정부기관에 취업한 사람은 ‘출세 가도’가 보장됐다고 자축했을 정도였다. 한 전직 방위산업체 관계자는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1990년대 중반만 해도 방위산업 관련 정부기관에 취업한 사람 가운데 일부는 박봉인데도 비교적 부유한 삶을 살았다”면서 “일부는 외부의 방위산업체 고위 관계자로부터 끊임없는 영입제의와 관리를 받았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러니 몇 년 근무하지 않은 관계자도 방산업체로 옮기는 현상이 종종 벌어졌다. 한 관계자는 “당시만 해도 이들에 대한 수요가 높아 짧게는 1∼2년 근무한 사람도 방산업체로 이동할 정도로 큰 인기를 모았다”라고 설명했다.

“이젠 품질에 따라 군수품 선택된다”

물론 이로 인한 부작용도 끊이지 않았다. 대표적인 경우가 1998월 9월 발생한 ‘린다 김 로비’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육·해·공 3군의 영관급 장교 4명이 기소됐고, 전직 국방장관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또 당시 ‘백두시스템 설계 참고자료’ 와 ‘공군 전자전 장비’ 등 군사 기밀이 새나가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했다. 1999년에는 무려 세 건의 기밀이 방산업체에 빠져나간 사건이 적발되기도 했다. 육군본부 △△사업 집행장교였던 김모 중령이 재미무기상 최모씨에게 소형 정찰 헬기용 레이더 회피용탄 구매수량과 예산을 전해줬고, 또 최씨를 통해 알게 된 재미 무기상 윤모씨에게는 △△전차 주포 개량사업 연도별 소요량 등 모두 9회에 걸쳐 군사 기밀을 누설한 것. 2004년 12월에는 군납 관련 청탁과 함께 무기중개상으로부터 수천 만원을 받은 혐의(배임수재)로 우리나라 대표적 방산업체 권모 전무가 불구속 기소가 되기도 했다. 또 지난 5월에는 프랑스 방산업체가 수억 원을 주고 우리 군의 기밀을 빼내온 것이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나기도 했다. 최근엔 공군 현역 소령이 공군의 장비구매 사업 관련 군사 기밀 4건을 빼돌린 혐의(군사 기밀보호법위반)로 구속되기도 했다. 이 사건에는 예비역 장성 출신인 양모 사장이 연루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이들 사건의 공통점은 대부분 내부자 또는 관계자의 공모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거의 사라졌다는 게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한 방산업체 관계자는 “이제는 연줄보다 기술력과 품질에 따라 군수품이 선택되는 시대가 됐다”면서 “종전과 같이 연줄에 의해 사업권을 따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남상태 대우조선해양사장, 류진 풍산회장, 정순원 로템부회장, 정해주 한국항공산업사장, 조양호 대한항공회장, 최길선 현대중공업사장(왼쪽부터).

국내 무기중개상 2000여 곳 난립 중

방산업체와 함께 국내 방위산업을 주도하는 무기중개상은 2000여 개가 난립해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사람만 1만여 명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대부분 전직 군 관계자나 인연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규모에 따라 10∼20명에 달하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 1,2명이 운영을 하고 있다. 이들 명함에는 스위스 등 유럽국가에 본사를 둔 기업의 한국지사 근무자 등으로 표기된다.

한동안 무기중개상을 했다는 박모씨(55)는 “퇴직금 등 전 재산을 털어 사업을 했지만 경쟁이 너무 치열하고 정보가 부족해 사업을 접었다”면서 “대부분 종사자들이 한방을 노려 모든 것을 희생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현재 사업을 접고 채소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 중개상들은 대형 전투기와 헬리콥터는 물론 미사일, 전함, 탄환, 낙하산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군수장비를 취급한다. 그러나 군수품 중개상들의 현황과 활동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노출’은 곧 ‘업계 퇴출’이라는 불문율 때문이다.

대체로 국제무기거래는 국가간 직접거래로 진행된다. 즉 정부가 무기를 일괄구매해 다른 나라에 다시 파는 대외군사판매(FMS) 방식이 일반적이다. 그렇다고 국가가 무기거래를 독점하는 것은 아니다. 무기 생산업체가 다른 정부와 직접 판매계약을 맺는 상용베이스방식도 때때로 이용된다. FMS 방식은 정부가 무기를 일괄구매해 다른 나라에 파는 만큼 대부분 주문생산으로 이뤄져 중개상이 낄 틈이 없고 밀거래 가능성도 거의 없다.

그러나 무기중개상들이 개입하는 상용방식은 다르다. 무기 생산업체가 다른 나라 정부를 상대로 무기를 팔 때는 불가피하게 현지 사정에 밝은 무기중개상을 활용한다. 그래서 무기중개상의 활약이 빛을 발한다.

정부나 무기생산업체가 직접 나서기에는 규모가 작은 소형무기 혹은 부품판매에 무기상인을 내세우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정부가 개입하기 ‘껄끄러운’ 경우에 무기상인을 동원하는 경우가 더욱 많다. 냉전 이후 무기상인의 효용성은 오히려 높아졌다.

한 중견 무기중개상은 “한국에서 무기중개업은 황금어장에 비유된다”면서 “무기를 팔기 위한 무기중개상들의 경쟁은 전쟁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 중개상은 “방위산업의 프로젝트 규모가 워낙 큰 데다 통상 거래 규모에 따라 3∼5%의 커미션(수수료)을 받기 때문에 이들의 각축전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치열하다”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지난 1월 군납비리 등을 뿌리 뽑는다는 취지로 방위사업청를 개청했다. 방위사업청은 현역, 예비역 장성과 방산업체 또는 무기중개상들이 얽혀 복마전 같던 군수품 구매사업 비리를 근본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도입됐다. 국방부 외청으로 설립된 방위사업청은 국방부와 육·해·공군, 국방조달본부 등 군내 8개 기관에 분산된 무기도입·개발과 군수품 조달 전담 조직을 떼어내 통합한 기관으로 올해 예산만 7조 원 수준에 이른다. 하지만 방위사업청은 개청 초부터 군사 기밀 유통파문과 초대 청장이 낙마하기도 했다. 비리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방위사업청을 만들었는데 초대 청장이 비리혐의로 낙마한 것은 군대와 방위산업체가 얼마나 뿌리깊은 비리에 함몰돼 있는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 대표적 국방사이트 ‘자주국방네트워크’ 김훈배 대표(46)는 “우리나라처럼 경공업부터 중공업에 이르는 방위산업에 최적의 환경을 갖춘 나라가 없다”고 말했다. 그만큼 비밀 커넥션과 비리의 온상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김재홍 기자 ato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