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한대련’ 시대 가고 ‘전총모’ 시대 오나

비운동권 ‘전국총학생회모임’ 출범 앞두고 고려대 총학생회 한대련 탈퇴 추진

고려대학교 총학생회가 ‘한대련(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 탈퇴’를 결의했다. 고대 총학은 2009년 한대련에 가입한 뒤, 한대련 서울지부인 서울대련 소속으로 활동해 왔다. 그러다가 지난해 말 ‘한대련 탈퇴’를 제1공약으로 내세웠던 학생들이 2012년 총학생회에 당선됐다. 고대총학은 10일부터 사흘간 고대생들을 대상으로 정책투표를 열어 한대련 탈퇴 여부를 확정할 계획이다.

비운동권 학생들이 운동권 학생들을 누르고 총학생회에 당선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개별 대학의 사례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번 고대 총학의 한대련 탈퇴는 9월 중으로 예정된 비운동권 총학생회 연합조직인 전국총학생회모임(전총모)의 공식 출범을 앞두고 벌어진 일이라는 점에서 다른 의미를 갖는다.

지난 8월 23일 전총모는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와의 토론회에서 반값 등록금 실현을 요구했다. 박 후보 왼쪽에 앉아 있는 사람이 박종찬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 | 박민규 기자

전총모 소속인 박종찬 고려대 총학생회장(31)은 “35개 대학 총학생회장이 모여 전총모의 방향에 대해 논의했고, 총 50개 대학이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한대련만이 대학생을 대표하는 유일한 연대조직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2000년대 초반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이 약화되면서 대학가에 ‘비운동권 열풍’이 불었다. 2000년대 초반 비운동권 학생들은 전총모 수준의 전국조직을 꾸리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일부 비운동권 학생들은 뉴라이트 전국연합 등 보수단체의 지원을 받은 사례도 있었다. 2002년 고려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손창일씨는 2004년 한나라당 비례대표 공천 신청을 하기도 했다.

‘반값 등록금’ 등 대학생 문제에 집중

전총모는 ‘한대련을 대체할 대안 연대체’를 내걸고 있다. 일부 운동권 학생들은 “전총모의 뒤에도 보수세력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전총모를 이분법적으로 ‘보수주의 학생운동 조직’으로 보기는 어렵다. 박 회장은 “우리는 예전 우파 운동권 학생들과 달리 기성 정치세력이나 배후세력이 없다. 오히려 학생들로부터 보수성향인 줄 알고 뽑았는데 왜 보수가 아니냐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겉으로 드러난 전총모의 행적은 ‘반값 등록금’ 등 대학생 문제 해결에 집중돼 있다. 지난해 말 전총모는 청와대 측과 만나 등록금 인하를 위한 실질적 대책을 주문했다. 올 초에는 10·26 선관위 디도스 공격사태에 대해 12개 대학 합동 시국선언문을 한대련에 앞서 발표하기도 했다.('한대련처럼' 삭제)

8월 23일에 전총모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를 만나 “여러분들의 등록금 부담을 반드시 반으로 낮추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기도 했다. 전총모는 조만간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와도 반값 등록금 관련 공청회를 열 계획이다.

박 회장은 “전총모는 기성 정치세력이나 이념으로부터 자유롭게 활동하고 싶은 학생들이 모인 일종의 연석회의다. 대학생들이 사회적 목소리를 내야 할 사안이 있다면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거리 집회 등 사회적 책임을 다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한대련을 대체할 대학생 연합조직을 찾기는 어려웠다. 20여개 총학생회가 한대련 이름을 내걸고 활동했으며, 단과대 학생회로 범위를 넓히면 80개 대학이 한대련에 참여하고 있었다. 한대련은 전국에 지부를 갖춘 전국조직이었다.

지난 8월 1일 서울 종로구 국세청 앞에서 열린 한대련 통일대행진 발대식에서 한대련 학생들이 한·일 군사협정 폐기를 촉구하는 행진을 하고 있다.

2011년, 한대련은 반값 등록금 의제를 주도하면서 여론의 폭발적 관심을 받았다. 박자은 당시 의장을 중심으로 한대련은 거리 시위와 정치권과의 대화를 통해 반값 등록금 문제를 사회 이슈화하는 데 기여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는 박원순 후보와 서울시립대 반값 등록금, 학자금 대출이자 지원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 정책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서는 황우여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만나 대학 등록금 인하를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대련의 활발한 대외활동이 총학생회 당선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지난해 한대련은 서울시내 12개 대학 총학생회에서 당선자를 배출했지만, 올해는 9곳에서만 당선됐다.

박종찬 회장은 한대련 조직의 일방성과 비민주성이 한대련의 몰락을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대련이 주장한 것 중 대학생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도 많이 있었지만, 문제는 총학생회가 학생들의 의사수렴 과정 없이 한대련의 생각을 그대로 학내에 전파하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지난해 고대에서 열린 한대련 새내기 콘서트를 의사수렴 과정이 없었던 사례로 꼽았다. 지난해 4월 한대련 소속 고대 총학은 단과대 학생회장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려대 중앙광장에서 한대련 새내기 콘서트를 추진했다.

한대련, 비민주성과 정치화 비판 직면

한대련 소속인 조우리 2011년 고대 총학생회장(25)은 “총학생회 운영에서 학내 여론수렴이 부족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에 “일면 맞는 부분이 있다”고 인정했다. 조 전 회장은 전총모에서도 한대련이 주장한 대학생 문제에 관심을 갖고 활동한다는 점도 인정했다.

그는 학생운동 세력이 침체되고 비운동권 학생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상황에 대해 “학생 사회가 전반적으로 학생회를 실용적으로 보는 부분이 있다”고 진단했다. 정부 비판과 같은 사회문제에 참여하기보다 학내 복지 등에 집중하는 비운동권 학생회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졌다는 뜻이다.

또한 한대련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한대련이 지나치게 기성 정치권과 연관되어 있다”며, 지난 5월 통진당 중앙위원회 폭력사태 때 한대련 전·현직 간부들의 모습이 나타난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에 대해 조 전 회장은 “나도 그렇고 한대련 간부들이 통진당 당원이라는 점은 사실이다. 학생 대표자로서의 공적인 영역과 특정 정당 당원이라는 사적인 영역을 구분하지 못한 실수가 있어서 그런 비판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려대 내에서 벌어진 전총모와 한대련의 갈등 와중에 고려대 학내언론 <고대문화>는 김재연 의원이 지난해 고대 총학생회 운영에 개입했다는 사실을 폭로하기도 했다. 김 의원은 지난해 한대련 집행위원장을 지냈다.

<고대문화> 2012년 가을호는 조우리 전 총학생회장이 한대련 의장 출마를 고민하던 시점에 김 의원이 나타나 “회장님이 출마하겠다는데 집행부원들이 뒷받침을 해줘야지 일이 많아질 것을 걱정해서야 되겠느냐”며 압박을 줬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한대련 윗선의 개입 때문에 총학생회 간부진 상당수가 활동을 그만뒀다고 한다.

이에 대해 조 전 회장은 “김 의원이 한대련 중앙사업을 소개하기 위해 학교에 온 적은 있었지만, 총학생회 운영과는 관련이 없었다. 김 의원이 한대련 일로 의견을 말할 때도 있었지만 그걸 압력으로 생각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조 전 회장은 전총모가 반한대련 이상의 구체적 방향성을 제시하지 못하면 대학생 대표조직으로 기능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대련은 매년 행동 방향과 강령을 토론을 통해 정하지만, 전총모의 구체적 방향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또한 전총모는 학생회가 정치적 편향을 가지면 안 된다고 하는데, 이런 주장은 우리 사회가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정치에 대한 혐오와 불신을 조장하는 것 아닌가?”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