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생각한다

윤 일병 사건, 쓰린 마침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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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을 이어온 싸움이 있다. 2014년 4월, 선임병들의 집단 구타와 가혹행위로 육군 제28사단 소속 고(故) 윤승주 일병이 사망에 이른 ‘윤 일병 사건’이 그렇다.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은 가해자들이 중형을 선고받고 난 뒤로 세간의 관심에서 조금씩 지워졌다. 유가족에겐 꼭 알아야 할 것이 남아 있었다. ‘누가, 왜 윤 일병의 죽음을 숨기려 했는가?’

[오늘을 생각한다]윤 일병 사건, 쓰린 마침표

윤 일병은 2014년 4월 사망했지만, 세상이 그의 죽음을 알게 된 건 그해 7월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가 구타·가혹행위로 사망했다는 진실이 알려진 게 7월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윤 일병의 사인은 ‘기도폐쇄로 인한 질식사’였다. 선임병들과 둘러앉아 음식을 먹다가 목이 막혀 죽었다는 것이다.

시퍼런 멍투성이로 누워 있는 윤 일병을 본 유가족에게 대대장은 심폐소생술 훈련을 하다 그렇게 됐다고 전했다. 아마 사망 전후로 몇몇 병사의 천금 같은 목격과 양심고백이 없었다면 윤 일병은 정말 만두를 먹다 죽은 사람쯤으로 기억됐을지 모른다.

그 뒤로도 군은 폭행과 사망의 연관성을 지우려 부단히 노력했다. 군검사는 가해자들을 상해치사로 기소했다. 집단 구타를 당하던 중 가슴을 맞고 의식을 잃었다가 깨어나지 못한 걸 버젓이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랬다. 아마 국방부 스스로 벌건 대낮에 병영에서 병사가 맞아죽었다는 끔찍한 사건이 가져올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행히 군인권센터의 폭로로 뒤늦게 사건의 전모가 세상에 드러나 가해자를 살인죄로 처벌했지만, 평생 속고 살 뻔한 유가족이 느꼈을 아찔함은 헤아리기 어렵다.

유가족은 사인 조작에 관계된 사람 모두를 고발했다. 군검찰은 고발된 사람 모두를 무혐의 처분했다. 진실을 찾을 방도가 사라진 유가족은 국가배상소송을 걸었다. 개개인을 처벌할 순 없더라도 사법부가 사인 조작의 책임을 규명해줄 수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1·2심 재판부는 기록도 제대로 펼쳐보지 않고 모든 의혹을 부인했다. 심지어 항소심 판결문엔 윤 일병의 사망 과정도 잘못 적혀 있었다. 유가족은 대법원 상고심에 한줄기 기대를 걸었다. 지난 9월 29일, 대법원은 허망하게도 심리불속행으로 기각을 결정했다.

윤 일병의 죽음으로 군대가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세상이 ‘윤승주’라는 청년에게 빚진 것이 그렇게 많다. 하지만 대법관들은 그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밝히는 과정이 심리조차 해볼 필요가 없는 일이라 여겼던 모양이다. 윤 일병의 어머니는 긴 싸움을 끝내며 “승주의 죽음을 가지고 장난치려 했던 이들도 어딘가에서 제 이야기를 듣고 있겠지요”라며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 바란다는 절규를 남겼다. 그들뿐이겠는가. 진실을 파묻는 데 일조한 모든 사람이 그러하길 바란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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