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여적]자존감

“자존감이 높을수록 자신의 풍요로운 내적 세계에 감각을 반영해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충동을 더 강하게 느낀다. 반대로 자존감이 낮은 경우에는 자신을 ‘증명’하려는 욕구나 기계적이고 무의식적으로 살면서 자신을 망각하려는 욕구가 더 절박해진다.” 책 <자존감의 여섯기둥>에서 지은이 너새니얼 브랜든은 ‘자존감’을 위와 같이 정의한다. 작가 신경숙의 표절 사건을 ‘자존감’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표현의 충동’보다 ‘증명의 강박’에 굴복된 낮은 자존감이 만든 비극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자존감을 해치는 문단 문화도 이 비극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정신, 지성, 앎, 이해를 가치 있게 여기는 문화는 자존감을 장려한다. 반대로 정신을 폄하하는 문화는 자존감을 해친다. 신경숙의 표절 사건은 정신보다는 이윤, 지성보다는 명예와 권력, 책임지기보다는 인정투쟁에 급급했던 자존감을 해치는 문단의 문화가 만들어낸 초라한 현실이다. 그러나 그 문단 권력은 이번 사태에 적극적으로 사과하고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책임을 회피하는 것도 빈약한 자존감의 특징이다. 일찍이 철학자 김영민은 그의 책 <공부론>에서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는 문사들의 습속을 탄식한 바 있다. “무사들이 정직한(!) 피를 뿌리며 스스로의 무능을 자인하며 죽어가는 순간에도 문사들은 좀비처럼 끝없이 부활한다. 자신의 실수와 더불어 죽을 수밖에 없는 냉혹한 무사들의 세계와 달리, 문사들은 ‘(나쁜) 모방적 상호성의 메커니즘(지라르)’ 속에서 오해의 잔치와 실수의 파티를 벌이면서도 단 한 사람 죽었다는 소식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 | 청와대사진기자단

자신의 무능과 부패를 딛고 끊임없이 좀비처럼 부활하는 게 비단 문사들만의 일일까. 박근혜 대통령은 메르스 사태 확산에 대해 송재훈 삼성서울병원장을 불러 질타했다. 당장 유체이탈의 최정점이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가장 먼저 책임져야 할 대통령이 책임을 회피한다는 것이다. 메르스 사태로 지지율이 급락한 박 대통령은 국면전환용으로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을 행사하며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겨냥해 ‘배신의 정치’라는 말을 남겼다.

<자존감의 여섯 기둥>은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 그 관계가 악의적이고 적대적이라고 쉽게 판단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 상대방에게 거부, 모욕, 배신을 당하리라고 습관적으로 예측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반면 빈약한 자존감은 비합리성, 현실에 대한 무지, 완고함, 방어, 과잉 통제적 행동, 타인에 대한 두려움, 적대감과 관계가 있다고 말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느 쪽일까. 개인이 자존감이 낮을 때 그 당사자가 고통받는다. 그러나 지도자가 자존감이 낮을 때는 사회 전체가 고통받는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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