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서울 종로 한복판에서 이주노동자 비두가 개처럼 끌려가던 모습을 본 나는 이 나라가 이주노동자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듬해 고용허가제가 탄생한 것은 이에 대한 사회적 지탄 때문이었다. 고용허가제는 제조업·건설업·농업·어업 등 너무나 열악해 정주 노동자들이 꺼리는 업종에 한해 이주노동자들이 일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현재 아시아의 16개국에서 온 20만명의 이주노동자들은 3년에서 4년 10개월 동안 일하고 있다.
하지만 고용허가제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우선 노동자에게 계약갱신권이 없다 보니 기업주들의 무리한 요구와 부당한 처사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둘째 사업장 이동의 권리를 제한한다. 사장의 동의 없이는 자신의 직장을 바꿀 수 없고, 사표를 낼 자유조차 없다. 임금 체불이나 폭행 등이 발생하면 바꿔주기도 하나 입증 책임이 이주노동자 개인에게 있다. 민주노총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업장 이동 시 어려움을 겪었다는 응답이 96.5%에 달했다. 제도가 착취와 차별이 만연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장하는 셈이고, 월급만 줬지 사실상 강제노동인 셈이다.
인근의 이주노동자들을 헐값에 들여와 자본의 이윤 증식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 것은 아시아 발전국가들의 ‘종특’이 아닌가 싶다. 지난 5월 브로커에게 큰돈을 빚지고 입국해 수년간 쥐똥이 쌓인 낡은 방에서 노예처럼 일해야 하는 일본 내 이주노동자들의 실태를 지면에 소개한 바 있다. 이는 한국에서도 오랜 기간 만연해왔고, 오늘날 대만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대만 내 71만명에 달하는 동남아 출신 이주노동자들은 정부의 불합리한 브로커 제도로 신음하고 있다. 이들은 비자가 유지되는 3년간 월 7만원가량을 면식조차 없는 브로커에게 지불해야 한다. 대다수 이주노동자는 한국처럼 일터에 대한 선택권도 주어지지 않는다. 딱 한 번 일자리를 바꿀 수 있지만, 또다시 브로커를 찾아 돈을 내야 한다.
홍콩도 다르지 않다. 40만명에 달하는 가사노동자들은 하루 15시간에 달하는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욕설·성폭력·임금 체불 등으로 고통받고 있고 홍콩 시민권자들보다 몇 배나 적은 돈을 받는다. 성차별과 노동 착취 등 모순을 온전히 떠안은 채 금융도시 홍콩이 국제적으로 분업화한 재생산 노동을 감당하고 있다. 싱가포르에서도 재생산 노동은 인근의 가난한 나라에서 온 여성노동자들에 의해 헐값에 떠넘겨지고 있다.
20세기 초 식민지로 전락한 아시아의 점령자들은 그곳에 살던 이들을 노예처럼 부리며 착취했다. 오늘날 이주노동의 현실을 보노라면 영토로서의 식민지만 사라졌지 다수의 노동자가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현실은 그대로인 것 같다. 이주민과 초국가적인 네트워크가 우리 사회의 문화적 정체성을 새롭게 구축하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인종적 차이는 강화되고 있다. 국가 간 경쟁 체제가 우리 삶과는 무관한 허상에 불과한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국경과 인종을 넘어선 연대, 빼앗긴 사람들의 연대가 절실히 필요하다.
<홍명교 동아시아 연구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