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가을에 별이 된 MLB 전설들

2020시즌 메이저리그는 이전의 140여년과 많이 달랐다. 코로나19 때문에 늦게 시작했고, 겨우 60경기만 열렸다. 더블헤더 1차전은 7회까지만 치렀고, 9회까지 승부가 나지 않으면 10회부터 주자를 2루에 두는 ‘승부치기’를 펼쳤다. 내셔널리그에 지명타자가 도입됐고, 포스트시즌에는 16개팀이 진출했다. 이상하고, 독특하고 묘한 시즌으로 역사에 남았다. 그리고 또 하나, 2020년 가을은 ‘전설들이 떠나간 때’로 기억에 남는다. 이 가을, 전설들이 별이 됐다.

톰 시버의 현역 시절 모습 / AP연합뉴스

톰 시버, 통산 311승 3640개 삼진 톰 시버(75)는 야구의 예술가였고, 사색가였고 메츠의 아이돌이었다. 별명이 ‘끝내주는 톰’이었다. 올스타에 12번 뽑혔고, 통산 311승에 3640개의 삼진을 잡았다. 무엇보다 메츠에 극적인 월드시리즈 우승을 안겼다. 메츠 프랜차이즈 사상 최고의 선수였다.

무시무시한 속구를 던졌고 끔찍한 브레이킹 볼을 던졌는데, 이걸 구석구석에 찔러 넣을 줄 알았다. 명예의 전당에 오른 명감독 스파키 앤더슨은 “감독이 뭐 하는 사람이냐 하면, 공을 시버에게 줘. 그리고 편하게 앉아서 시버 던지는 걸 보는 거지”라고 말했다. 개인 통산 홈런 기록으로 오래 갖고 있던 강타자 행크 에런은 1967년 올스타 때 시버를 처음 만났다. 에런은 22세의 어린 시버에게 “젊은 친구, 내가 장담하건대 곧 여기 있는 모든 팬이 자네를 알게 될 거야”라고 말했다. 에런은 나중에 가장 까다로운 투수로 주저 없이 시버를 꼽았다. 시버는 그날의 올스타전을 두고 “내 야구 인생의 터닝 포인트”라고 말했다. 전설이 전설을 알아보고 인정한 순간이었다.

시버는 구속뿐만 아니라 야구의 열정이 넘치는 선수였다. 메츠 시절 팀 동료들은 시버에 대해 ‘보이스카우트’라고 불렀다. 열심히 공부하고, 야구에 자신의 열정을 모두 바치는 충성심 넘치는 선수라는 뜻이었다.

메츠는 1967년까지 창단 6년 동안 5번이나 100패를 넘긴 신생팀이었다. 시버가 마운드의 중심을 잡은 뒤인 1969년 메츠는 100승 팀이 됐고, 월드시리즈에서 볼티모어를 4승 1패로 꺾고 창단 첫 우승을 차지했다. 시버는 메츠라는 팀을 단숨에 최고의 팀으로 바꾼 선수였다. 시버는 은퇴 뒤에도 메츠 팬들의 큰 사랑을 받았고, 야구 해설자로 활약하다 캘리포니아에서 아내와 함께 자신의 와인농장을 만들어 운영했다. 2019년, 메츠의 첫 우승 50주년 행사 때 시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노년에 찾아온 치매 때문이었다. 결국 현지시간 9월 2일, 시버는 치매와 함께 코로나19 합병증으로 세상을 떴다. 시버는 마지막 인터뷰에서 “나는 60피트, 6인치를 너무나도 사랑했다”고 말했다. 마운드에서 홈플레이트까지의 거리였다.

루 브록, 35세에 118도루 성공 루 브록(81)은 시버와는 조금 다른 스타일이었다. 세인트루이스 마이크 실트 감독은 루 브록에 대해 “세인트루이스 역사에 남을, 러시모어산 같은 분”이라고 평가했다. 화려한 기록에도 자신을 한없이 낮추는 겸손함을 가졌지만, 그가 이룬 업적은 산처럼 든든하다는 뜻이었다.

1939년 미국의 가난한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아버지 없이 어렵게 자랐다. 여전히 인종 차별이 심했던 어린 시절, 학교에서 장난치다 걸려 받은 벌이 ‘재키 로빈슨 등 흑인 선수를 조사하라’는 것이었다. 이를 찾아보다 알아낸 사실은 ‘야구선수는 식대로 하루에 8달러를 받는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 브록의 꿈이 결정됐다.

브록은 야구선수가 됐다. 컵스와 계약했지만 첫 두 시즌 동안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고 1964년 세인트루이스의 백인 투수 어니 브로글리오와 트레이드됐다. 컵스에는 이미 어니 뱅크스, 빌리 윌리엄스 등 흑인 선수들이 많았다는 것이 트레이드의 배경이었다.

브록은 트레이드 이후 103경기에서 타율 0.348, 12홈런, 33도루를 기록하며 세인트루이스를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1946년 이후 28년 만의 우승이었고, 브록은 세인트루이스 창단 후 2번째 전성기를 이끄는 주역이 됐다. 이 트레이드는 지금까지도 컵스 역대 최악의 트레이드 중 하나로 남았다.

브록의 최고 무기는 빠른 발이었다. 통산 도루 938개는 나중에 리키 헨더슨에 의해 깨질 때까지 최고 기록이었다. 1974년에는 서른다섯의 나이로 한 시즌 118도루를 성공시켰다. 극심한 투고타저의 시대였던 1960년대, 브록의 빠른 발은 점수를 내는 강력한 무기였다. 브록이 만들어낸 ‘발야구’는 세인트루이스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브록은 어떤 인터뷰에서도 자신의 성과를 자랑하지 않는 겸손함으로 더 유명했다. 누구보다 화려했지만, 누구보다 겸손했던 브록은 시버가 떠난 4일 뒤인 6일 암 투병과 당뇨 합병증 등으로 세상을 떠났다.

밥 깁슨, 야구 규칙을 변화시켜 밥 깁슨(85)은 루 브록과 함께 세인트루이스의 1960년대 전성기를 이끈 투수였다. 세인트루이스를 넘어 역대 메이저리그 최고 투수 중 한 명으로 꼽는데, 누구도 주저함이 없다. 큰 키와 긴 팔을 이용해 폭발적인 속구를 던졌다. 큰 키에서 온몸을 집어 던지는 듯한 투구폼은 타자에게 무시무시한 공포를 안겨줬다. 온 힘을 다해 던진 뒤 1루 쪽으로 쓰러지는 듯한 투구 동작은 깁슨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1968년에는 평균자책 1.12라는 절대 깨질 수 없는 기록과 함께 사이영상과 MVP를 동시에 수상했다. 내셔널리그에서 사이영상·MVP 동시 수상은 46년이 지난 2014년 클레이턴 커쇼(LA 다저스)까지 없었다. 지난해 류현진이 시즌 중반까지 1점대 평균자책을 유지했을 때 밥 깁슨은 국내 팬들에게도 다시 한 번 회자됐다.

깁슨은 1964년과 67년 팀을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끌면서 모두 월드시리즈 MVP에 올랐다. 67년 보스턴과의 월드시리즈에서는 1차전과 4차전, 7차전에서 모두 선발승을 따내는 괴력을 발휘했다. 말 그대로, 리그 전체를 압도하는 투수였다.

깁슨 때문에 결국 야구 규칙이 바뀌었다. 메이저리그는 깁슨이 평균자책 1.12를 기록하자 이듬해인 1969년부터 마운드 높이를 15인치에서 10인치로 낮추고 스트라이크 존을 좁히는 투고타저 완화 규칙을 적용했다. 이는 ‘깁슨 룰’이라고 불리는데, 깁슨은 이런 규칙 변화에도 28번의 완투와 함께 20승 13패, 평균자책 2.18을 기록하며 흔들리지 않았다.

사상 최고의 투수 깁슨도 세월의 힘을 비껴가지 못했다. 깁슨은 지난 2일 췌장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떴다. 세인트루이스 포수 야디에르 몰리나는 “그 어떤 패배보다 더 아프고 쓰리다”는 말로 깁슨을 추모했다.

<이용균 스포츠부 기자 noda@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