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니야와 카스티요 그리고 김광현의 ‘계약’

메이저리그의 7월 1일은 매우 특별한 날이다. 메이저리그 전체는 아니고, 뉴욕 메츠에게 특별한 날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2011년 7월 1일부터 특별한 날이 됐다. 가슴 아프고, 열불나는 날이다. 이른바 ‘보니야 데이’. 피 같은 ‘생돈’이 나가는 날이다.

왼쪽부터 바비 보니야·러스니 카스티요·김광현 / 게티이미지·이석우 기자

바비 보니야(56)는 1990년대 메이저리그를 풍미한 강타자다. 통산 타율 2할7푼9리, 안타를 2010개나 때렸고, 홈런도 287개를 기록했다. 3루수와 1루수, 외야수를 두루 거치면서 올스타에 6번이나 뽑혔다. 1998년에는 박찬호와 함께 LA 다저스에서도 뛰었다. 7월 1일이 ‘보니야 데이’가 된 것은 보니야가 해마다 이날 ‘퇴직연금’을 받기 때문이다.

액수가 적지 않다. 연간 119만3248달러 20센트. 우리 돈으로 약 13억8500만원쯤 된다. 연금은 2035년까지 무려 25년 동안 매년 꼬박꼬박 지급된다. 그때가 되면 보니야의 나이는 72세다.

2035년까지 매년 120만 달러 받아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보니야는 1991년 겨울 뉴욕 메츠와 당시 최고 계약인 5년 2900만 달러에 도장을 찍었다. 기대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 이른바 ‘먹튀’에 가까웠다. 연평균 24개의 홈런을 때렸지만 팀을 가을야구로 이끌지는 못했다. 결국 4년째 볼티모어로 트레이드됐다. 보니야는 1996시즌 플로리다(현 마이애미)와 다시 4년 2330만 달러에 FA 계약을 했고, 이번에는 플로리다를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1986년 이후 월드시리즈 우승을 못 한 메츠는 보니야에 다시 눈독을 들였다. 플로리다에서 다저스를 거친 보니야를 다시 데려왔고, 이게 결국 발목을 잡았다. 보니야는 1999년 타율이 겨우 1할6푼에 그쳤다. 메츠와의 인연이 좋지 않았다.

메츠로서는 보니야에게 계약기간 1년 남은 연봉 590만 달러를 줄 수가 없었다(실은 주기가 아까웠다). 전력 보강을 위해 다른 포지션에 돈을 써야 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 남은 590만 달러를 장기할부로 나눠주면 어떨까. 양측이 협상에 들어갔다. ‘10년 거치, 25년 상환’ 조건이었다. 연 금리는 8%로 정해졌다. 당시 미국의 우대금리(프라임레이트)가 8.5%였던 시절이었으니 당시로써는 나름 합리적이었다. 물론 향후 이렇게 금리가 떨어지리라 예측하기는 힘들었다.

보니야에게 남은 돈을 주기 아까운 이유는 또 있었다. 뉴욕 메츠의 프레드 윌폰 구단주는 당시 버니 매도프 전 나스닥 증권거래소 회장이 운영하던 ‘사업’에 투자를 했다. 10% 이상의 수익을 보장하는 (것으로 알려진) 사업이었다. 보니야에게 일시불로 주느니 8% 이자 주고, 10% 이상 수익 남기는 곳에 투자하는 게 ‘남는 장사’라고 판단했다. 물론 세상에 공짜는 없다. 매도프는 ‘폰지 사기’로 알려진 일종의 투자금 돌려막기 사기꾼이었다. 윌폰뿐만 아니라 스티븐 스필버그도 사기를 당했다. 매도프는 징역 150년형을 받았다.

어쨌든 보니야는 10년 거치 25년 상환이라는 독특한 바이아웃 조건으로 메츠에서 방출됐다. 이후 애틀랜타와 세인트루이스를 거쳐 은퇴했다. 2011년부터 매년 7월 1일이면 13억8500만원을 받는다. 올해도 어김없이 받아챙겼다. 메츠로서는 환장할 노릇이지만 계약은 계약이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러스니 카스티요(32)는 촉망받는 유망주 외야수였다. 야시엘 푸이그처럼 어렵게 쿠바를 탈출해 미국에 올 수 있었다. 2013년 보스턴과 계약했고, 2014년 빅리그에 데뷔했다. 2015년에는 빅리그에서 80경기에 나섰다. 2016년에도 간간이 경기에 나섰지만 6월에 웨이버 공시되면서 40인 로스터에서 빠졌다. 보스턴의 트리플A 팀인 포투켓 레드삭스에서 뛰었다. 2017년에도 2018년에도, 그리고 올 시즌에도 계속 트리플A 경기만 뛰었다.

야구를 못 하는 것도 아니다. 카스티요는 2018년과 2019년 연속해서 팀 내 최고 선수에게 주어지는 포투켓 최우수선수(MVP)에 뽑혔다. 2018년에는 포투켓에서 타율 0.319를 기록했고, 올해는 홈런을 17개나 때렸다. 포투켓 빌리 맥밀런 감독은 계속해서 보스턴 레드삭스에 카스티요의 승격을 추천하지만 그때마다 ‘거부’ 당하는 일이 반복됐다.

사치세 때문에 1군에서 못 뛰어

카스티요가 뭔가 잘못을 한 것은 아니다. 잘못이라면, ‘돈 많이 받은 죄’다.

카스티요는 쿠바 국가대표로 활약한 중견수였다. 보스턴은 카스티요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 2014년 ‘7년 7250만 달러’라는 거액에 계약했다. 야시엘 푸이그가 LA 다저스와 2012년 말 맺은 계약이 7년 4200만 달러였던 것을 고려하면 카스티요의 계약은 ‘대박’에 가깝다. 그만큼 보스턴의 기대감도 컸다는 뜻이다.

하지만 모든 계약이 뜻대로 굴러가지는 않는다. 보스턴은 마침 카스티요 계약 이후 걸출한 외야수들이 쑥쑥 성장했다. 재키 브래들리 주니어, 무키 베츠, 앤드류 베닌텐디가 버티는 외야에 카스티요의 자리는 만만치 않다. 백업 외야수로는 충분하지만 여기서 ‘변수’가 등장했다. 메이저리그 노사협약(CBA)가 개정됐고, 초과 연봉 총액에 대한 ‘사치세’ 부담이 커졌다.

카스티요의 2016시즌 연봉은 1050만 달러였다. 메이저리그 사치세는 40인 로스터 선수들의 연봉 총액으로 결정된다. 카스티요의 연봉이 총액에서 빠진다면 구단은 약 300만 달러를 아낄 수 있었다. 그해 겨울 CBA가 개정되면서 사치세 부담이 더 커졌다. 2017년 이후 카스티요를 40인 로스터에 넣으면 보스턴은 사치세 부담이 약 700만 달러나 늘어난다. 백업 외야수를 위해 700만 달러를 더 쓰는 건 상당한 부담이다. 보스턴은 카스티요를 마이너리그에 묻어두기로 했다.

카스티요는 여전히 펜웨이파크 근처에 살면서 매일 1시간 이상 걸리는 트리플A 구장으로 출퇴근한다. 연봉 1000만 달러가 넘는, 마이너리그 최고 연봉 선수다. 카스티요는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와 인터뷰에서 “나는 여전히 보스턴 레드삭스(메이저리그)에 소속돼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2020년에도 카스티요가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뛸 가능성은 높지 않다. 계약기간이 끝나고 나면, 카스티요는 34세가 된다.

‘보니야 데이’는 물론 ‘마이너리거 카스티요’ 모두 환장할 노릇이지만, 계약은 계약이다. SK 김광현이 메이저리그 진출 의지를 밝혔다. SK와의 계약기간이 남았고, FA가 되려면 2년을 기다려야 하지만 ‘허락해달라’는 요청이다. 사정이 다르고 상황이 복잡하다. ‘김광현 딜레마’를 막기 위해서는 ‘계약’이 더 세분화돼야 한다.

처음에 9년, 나중에 또 4년을 묶어두는 20년된 FA 제도는 확실히 개선이 필요하다. 다양성을 담아낼 수 있는 계약이 돼야 더 큰 힘을 가질 수 있다. ‘구단주 맘대로’ 흔들리는 리그가 아니라 제대로 된 비즈니스가 될 수 있는 길이다.

<이용균 스포츠부 기자 noda@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