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키운’ 마윈 회장, 열 외교관 안 부럽다

중국 온 말레이시아 총리의 호감 사

그동안 마윈 알리바바 회장은 어려운 외교 현장마다 소방수로 나서왔다.

마 회장의 뛰어난 돌파력과 언변으로 열 외교관이 부럽지 않은 특급 외교를 펼쳤다.

외교 현장에서 소방수로 나선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의 창업자인 마윈. / EPA·연합뉴스

8월 17일부터 21일까지 닷새간 중국을 찾은 마하티르 모하맛 말레이시아 총리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저장(浙江)성 항저우(杭州)다. 항저우에서의 첫 행선지는 알리바바 그룹 본사였다. 마윈 회장이 마하티르 총리를 직접 맞았다. 마윈 회장은 전자결제와 스마트 물류 등 알리바바의 최첨단 기술을 직접 시연했다.

19일 베이징에서는 중국을 대표하는 400여명의 기업가들이 모여 마하티르 총리를 환영하는 ‘중국-말레이시아 기업가클럽 포럼’을 열었다. 마윈 회장은 마하티르 총리를 거의 밀착 수행했다. ‘립서비스’도 훌륭했다. 마 회장은 1995년 상업용 웹페이지인 ‘차이나옐로페이지’를 창업했을 때만 해도 뭘 해야 할지 정말 몰랐는데 1997년 신문에서 말레이시아의 MSC(멀티미디어를 기반으로 한 국가 정보화) 계획을 보고 영감을 얻어 창업을 하게 됐다고 마하티르 총리를 추어올렸다. 그가 언급한 MSC는 마하티르 총리가 첫 번째 총리직을 맡았던 기간(1981~2003년)에 나온 정책이다. 마하티르 총리가 마윈 회장과의 만남을 상당히 흡족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는 20일 리커창 총리와 회담을 한 후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중국의 첨단기술이 말레이시아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알리바바에서 직접 본 것을 예로 들었다.

마하티르 총리의 이번 방중은 중국으로서는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사업의 향후 성패가 달린 중요한 외교 행사였다. 마하티르 정부가 지난 7월 중국이 사업비의 85%를 융자하는 조건으로 추진돼온 220억 달러 규모(약 24조원)의 동부해안철도(ECRL) 건설과 송유관·천연가스관 등 사업에 대해 중단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현대판 육·해상 실크로드를 구축하겠다며 100여개 국가 및 국제기구와 추진 중인 일대일로 구상이 새로운 암초를 만난 것이다. 이 철도는 미군기지가 있는 싱가포르를 거치지 않고 중동의 원유를 수송할 수 있는 통로이기 때문에 일대일로 구상의 핵심으로 꼽혀왔다. 친중 성향의 나집 라작 전 정권에서 막대한 부채를 물려받은 마하티르 정부는 수익성이 없는 철도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고 있다. 일대일로 구상은 스리랑카, 파키스탄, 미얀마 등에서 재정 악화, 반중 감정 확산, 재검토 등의 위기를 맞은 바 있어 말레이시아까지 철도사업을 폐기하면 일대일로가 좌초할 위기에 처한다.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에서 영향력이 큰 말레이시아까지 일대일로에 반기를 들면 도미노 현상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중국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은 마하티르 총리는 당장 사업 재개를 약속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폐기를 선언하지도 않았다. 마하티르 총리도 “시 주석의 일대일로 구상은 지역 교류·협력을 촉진해 지역 국가에 이익을 가져다 준다”며 “말레이시아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결과를 이끌어 낸 데는 마윈 회장의 공이 작지 않다.

그동안 마윈 회장은 어려운 외교 현장마다 소방수로 나서왔다. 마 회장의 뛰어난 돌파력과 언변으로 열 외교관이 부럽지 않은 특급 외교를 펼쳤다. 2017년 1월 미국 뉴욕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 당선자를 만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마윈 회장은 향후 5년간 알리바바의 전자상거래 사이트에 미국 중소농업인들의 제품 판로를 마련하고 이를 통해 10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트럼프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만났을 때나 일본 최고 부호로 꼽히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을 만났을 때보다 더 환하게 웃었다. 트럼프 타워의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고 1층까지 직접 배웅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내내 중국이 700만개의 일자리를 빼앗아갔다고 비판한 데 대한 해답을 마윈 회장이 준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마윈 회장 모두 모험심이 강한 사업가라는 점에서 통했을 수도 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오른쪽)과 만난 마윈 알리바바 그룹 회장이 가볍게 주먹을 쥐어 보이고 있다. / 신화망

민간 외교관 넘어 특급 외교관 역할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취임 이후 중국과 필리핀 관계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두테르테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인 2016년 7월 필리핀 정부가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에 제기한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결과가 나왔다. PCA에서는 중국의 영유권 주장이 법적 근거가 없다는 승소 판결을 받았지만 두테르테 대통령은 중국에 판결 이행을 요구하지 않았다. 남중국해 문제로 국제사회에서 벼랑에 몰린 중국의 손을 두테르테 대통령이 잡아줬다.

마윈은 필리핀 민간외교로 힘을 보탰다. 마윈은 2017년 필리핀 명문대 라샬대학교 명예 학위를 받았다. 이 대학은 건교 106년 이래 처음으로 IT기업 창업자에게 명예 학위를 수여했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 “세계 어디를 가든 인터넷 속도를 먼저 체크하는데 마닐라의 인터넷 속도는 너무 느리다. 그러나 모든 문제는 기회가 된다”며 “기회가 많은 곳에서 가장 많은 불평이 나오고, 내가 알리바바를 창업했을 때도 중국의 인터넷 속도는 너무 느렸다”고 말해 필리핀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다. 고등학교 시절에 두 차례 퇴학당하고 7년 만에 졸업했지만 최고지도자 자리에 오른 두테르테 대통령과 고등학교와 대학은 모두 낙방하고도 세계적인 그룹을 만든 마윈 회장은 공통점이 많다. 두 사람은 국제 포럼 등에서 여러 차례 만나 악수를 나눴다.

미국, 유럽 등의 기업인들에게는 나라를 대표해 외국 지도자를 만나고 협상하는 일이 낯설지만 정치와 경제계가 밀착된 중국에서는 드문 일이 아니다. 미국에 서버를 둔 중화권 매체 둬웨이도 “마윈에겐 사업적인 목적 외에 정치적 임무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만 해도 마윈 회장은 9월에는 캐나다 토론토에서 개최된 중소기업 포럼 ‘게이트웨이17’에 참석해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대담을 가졌다. 같은 달 뉴욕에서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만났다. 10월에는 러시아의 싱크탱크인 발다이클럽 회의에 참석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회견을 가졌다.

마윈 회장은 입지전적인 개인 스토리와 스타성, 또 영어에 능숙해 통역이 필요 없다는 점에서 ‘특급 외교관’으로 꼽힌다. 중국 IT 공룡 BAT(바이두·알리바바·텅쉰)의 다른 CEO들과도 차별되는 장점이다. 바이두(百度)의 리옌훙 회장은 잘생긴 외모에 명문대인 베이징대 출신이다. 텅쉰(騰訊)의 마화텅 회장은 선전시 항운총공사 사장을 지낸 아버지 밑에서 자란 ‘금수저’다. 마르고 왜소한 체격에다 개성 있는 얼굴, 영어 말고는 공부를 못해 고등학교도 한 번 떨어지고, 대학도 몇 차례 실패 끝에 들어간 마윈 회장의 스토리에 상대방은 쉽게 마음을 연다. 여기에 유머까지 더한 그의 언변은 외교 현장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다.

<박은경 경향신문 베이징 특파원 yama@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