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캐나다·호주·일본 ‘과거사 반성’

원주민에 대한 차별과 탄압 ‘역사적 사죄’… 터전과 고유문화 지켜온 투쟁의 승리

인간은 죄를 지으며 살아가는 존재다. 또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다. 애써 모른 척하며 태연하게 지내기도 하고, 때로는 그것을 떨쳐버리기 위해 종교를 찾기도 한다.

최근 ‘자신의 죄’를 씻으려 나선 나라들이 있다. 캐나다·호주·일본 정부에서 원주민들에게 자신의 죄를 사죄하거나 원주민에게 존중을 표시할 수 있는 조치를 공식 발표했다. 이것으로 끝나는 것인지, 아니면 이제부터 시작인지는 지켜봐야 할 문제다. 하지만 이들의 사죄는 ‘역사적’이라고 하기에 전혀 손색이 없다.

캐나다의 반성
지난 6월 11일 오후 캐나다 하원 의사당. 스티븐 하퍼 총리는 엄숙한 표정으로 의회 연단에 올랐다. 수백 명 원주민 대표의 눈은 총리를 향해 있었다. 하퍼 총리는 이 자리에서 “캐나다 정부가 지난 세기 동안 지역 교회 기숙학교를 통해 실시한 원주민 동화정책으로 수천 명의 어린이에게 고통을 준 것에 대해 사과한다”고 말했다. 이제까지 원주민 어린이 수천 명은 강제로 집을 떠나야 했고, 자신들의 말과 풍습, 전통에서 떨어져 지내왔다. 솔직한 고백과 반성도 이어졌다. “이 정책들은 원주민 어린이를 전통의 영향으로부터 분리시킴으로써 주류(백인) 문화에 동화시키려는 목적에서 나왔다”고 말한 하퍼 총리는 “원주민의 고유 문화와 영적인 신념이 열등하다는 전제를 바탕에 둔 이 정책들은 인디언 말살을 위한 것이었다”고 용기 있게 말했다. “역사의 슬픈 장면으로 기록될 것”이라며 “용서를 구한다”고까지 말했다.

야당 지도자들도 하퍼 총리의 사죄에 동참했다. 자유당 대표 스테판 디옹은 “이제 캐나다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장면과 마주해야 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자기 반성도 했다. 그는 “지난 세기에 70년간 집권했던 우리 자유당은 너무 오랜 기간 진실을 부인했으며 침묵으로 일관했다”고 인정했다. 신민당의 잭 레이튼 대표는 “오늘의 사죄는 끝이 아니라 문제를 바로잡는 시작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퍼 총리의 이번 사죄와 더불어 캐나다 정부는 진실·화해위원회를 꾸려 정부 정책으로 인한 희생자와 생존자들에 대한 보상 등 구체적인 절차를 진행할 계획이다. 49억 달러 규모의 예산을 2006년에 이미 확보해놓은 상태다.

호주의 사죄
지난해 말 12년 만에 정권 교체에 성공한 호주에서도 지난 2월 원주민들에 대한 총리의 공식 사과가 있었다. 호주의 케빈 러드 총리는 지난 2월 13일 호주 의회에서 “애보리진 원주민의 자녀를 부모에게서 떼내 백인 가정에서 기른 동화정책이 국가의 정기를 더렵혔다”면서 “같은 호주 국민인 애보리진에 대해 깊은 슬픔과 고통, 손실을 안겨준 역대 의회와 정부의 법률과 정책에 사죄한다”고 말했다.

원주민들은 백인 문화에 편입되기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았다. 호주 정부는 1916~69년 ‘동화정책’이란 이름 아래 원주민 어린이들을 부모에게서 강제로 분리, 백인 가정에 입양시키거나 고아원으로 보냈다. 호주에서는 당시 원주민 어린이들을 일컬어 ‘빼앗긴 세대’라고 부른다. 이들의 실태를 조사했던 노동당은 12년 전부터 정부가 원주민들에게 사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존 하워드 당시 총리는 “현재 세대가 과거의 실수에 죄의식을 느껴선 안 된다”면서 사과 요구를 묵살했다.

죄를 애써 외면한 것이다. 현재 호주 인구의 2%(약 41만 명)인 원주민은 호주 사회의 빈곤층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의 평균 수명은 다른 호주인들보다 17년이 짧고, 13배 높은 투옥률, 3배 높은 실업률에 시달리고 있다. 철저한 차별의 결과다.

일본의 차별 철폐 결의
일본에서는 국회가 결의문을 채택했다. 일본의 중·참 양원은 지난 6월 6일 본회의를 열고 ‘아이누족을 선주(先住) 민족으로 인정하고 정부에 아이누족 지위 향상을 위한 종합적인 시책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아이누족은 북부 홋카이도를 비롯한 북방 섬에 주로 거주하는 소수 민족이다. 그간 일본 정부는 이들을 극심히 탄압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에 대한 국회 결의안이 채택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마치무라 노부타카 관방장관은 본회의에 참석해 “(이번 결의안은) 다양한 가치관이 공생하는, 활력 있는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바람직하다고 확신한다”며 “정부는 지금부터 아이누족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공식 표명했다. 일본 정부는 아이누족의 권리 향상과 지원 대책을 협의하기 위한 전문가 그룹을 설치하기로 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홋카이도 개발이란 미명 아래 아이누족의 생활권을 빼앗고 고유 언어 사용 금지 조치 등을 실시해 탄압해왔다. 생업수단인 수렵과 벌채 등을 제한·금지해 굶어 죽거나 학살당해 에도시대 수십만 명이던 아이누족은 2만여 명가량으로 줄었다. 사회적으로도 차별 대상이 되면서 생활난을 겪고 있다. 2006년 홋카이도 당국의 조사에 따르면 자신이 아이누족이라고 밝힌 아이누족은 2만4000명이지만 실제로는 훨씬 많은 것으로 추산된다.

이제 시작이다
탄압받은 원주민들의 역사는 슬프다. 무력 위협은 말할 것도 없지만 동화정책과 이주정책 등 ‘민족말살정책’은 식민의 아픔을 겪은 우리로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애써 외면해오던 일부 나라가 이렇게 사과에 나선 배경은 무엇일까. 여기에는 원주민의 승리라는 시각과 관용의 확대라는 시각이 상존한다. 원주민들에 대한 사죄는 그냥 이루어지지 않았다. 끊어질 듯 끊어질 듯하면서도 끝까지 자신들의 삶의 터전과 고유 문화를 지켜내려는 이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불완전하더라도 사과와 사죄를 받을 수 있었다. 정복 초기에 남미와 달리 토착 민족들을 말살하는 정책을 펼쳤던 북미와 호주 지역에서 얻어낸 애보리진들의 작지만 소중한 승리는 세계의 많은 원주민에 대한 희망이 되고 있다. 유엔 차원의 범정부적인 노력도 있었다. 1980년대부터 논의가 이루어졌지만 지난해에 와서야 유엔 총회에서 ‘원주민 권리선언’이 채택됐다. 이 선언에는 원주민에 대한 인권·자유 보장과 함께 전통 문화의 유지, 민족자결권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이 선언에 대해 ‘정복자’인 미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는 국내법과 충돌을 이유로 반대했다. 일본은 ‘민족자결권은 독립을 의미하지 않는다’면서 찬성을 표시했다. 아직 갈 길은 먼 셈이다.

<국제부┃정환보 기자 botox@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