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물 전성시대]‘막’-유구한 대주제 색다르게 엮은 퀴어 SF

문학의 책무 중 하나가 사회에 도전하고 저항하는 것임을 SF를 통해 절감할 때가 있다. 대만 퀴어 SF를 대표하는 작가 지다웨이의 <막>은 1995년 제17회 롄허보문학상 중편소설 부문 대상을 받은 작품으로, 작가는 서문에서 이 작품이 ‘성 정치 텍스트’임을 여러차례 강조한다. 에두를 것 없이 작가로서의 사명감마저 느껴지는데, 이는 “퀴어로 하여금 계속해서 해로운 황홀함에 취해 있을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준 과감한 결단”에 감사한다는 수상 소감을 통해 그 무거운 도전의 의미를 재차 확인할 수 있다.

지다웨이의 대표작 <막> 한국어판 표지 / 글항아리

작가의 말 그대로 이 작품이 여성 간의 사랑을 다루는 것은 사실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설정이 더 이상 파격적으로 느껴지진 않는다는 점이다. 20년이 훌쩍 넘는 간극이 성적 지향에 국한되지 않는 미래사회를 그저 당연한 것처럼 보이게 했을 수도 있다. 그사이 이를 더욱 도발적으로 다룬 수많은 작품이 있었고, 수많은 사람의 도전과 저항 또한 편견과 차별의 시선을 일정 부분 걷어냈을 테고. 물론 여전히 가야 할 길이 요원하긴 하지만 SF의 유구한 대주제를 색다른 감각으로 엮어낸, <막>의 다른 장점에 더 눈길이 가는 것은 분명 그동안의 성과로 여길 만하다.

오존층이 파괴되면서 육지는 태양광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피부암이 급증해 목숨을 위협받기에 이르자 급기야 인류는 햇빛이 직접 미치지 않는 해저를 새로운 터전으로 삼는다. 주인공인 서른 살 모모는 이 시대 가장 중요한 직업 중 하나인 피부관리사로서 일찌감치 해저도시에서 일가를 이뤘다. 그러나 유일한 혈육인 엄마와도 소원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도 부러 거리를 둔 채 마치 스스로를 유폐하듯 살아간다. 그러던 중 20년 만에 자신을 찾아오겠다는 엄마의 연락을 받고 그는 적잖이 동요한다.

<막>이 그리는 해저도시는 얇은 막으로 둘러싸인 곳으로, 육지에서의 모순이 더욱 극대화된 공간이다. 인류는 해저 공간을 차지하기 위해 다시금 경쟁하는데, 여전히 국가 간 힘의 논리가 절대적인데다 초국가 규모의 대기업마저 가세한 형국이다. 그렇다고 직접적으로 전쟁을 벌이는 것은 곤란한지라 MM이라 불리는 로봇이 대신 전투를 전담하는데, 이때 반드시 황폐해진 육지를 전쟁터로 삼는다. 흑인들의 피부암 발병률이 현저히 낮은 탓에 오히려 백인이 흑인을 선망하는 것처럼 거의 모든 가치가 전복되고 뒤섞인 기이한 디스토피아를 이렇듯 시종 분방하게 묘사한다.

장르물 전성시대

그럼에도 극의 중심은 온전히 모모가 지닌 미스터리에 있다. 어릴 적 모모의 유일한 단짝이던 앤디는 모모의 대규모 수술과 함께 모습을 감췄다. 이때 어쩐 일인지 모모의 남성기 또한 사라졌다. 작품 중반부 앤디가 안드로이드임이 드러나면서 단지 신체를 대체하기 위한 도구였다는 사실로 충격을 안기는데, 이윽고 이야기는 모모가 지각하는 자아와 세계를 도치시키는 더 큰 반전까지 나아간다. 이를테면 영화 <매트릭스>의 네오는 빨간 약과 파란 약 중 빨간 약을 선택했지만, 과연 그것이 정답이었을까 반문하는 식이다. 때때로 미래세계에 대한 묘사가 부수적으로 느껴지면서도 집요하게 시선을 빼앗는 그대로 그렇게 교묘히 ‘진실편’을 완성한다. 특히 사람들의 ‘피부막’과 도시를 지탱하는 막을 지칭하는 듯한 작품의 제목이 내내 모모의 고독으로 형상화되며 만들어내는 고민과 질문은 그래서 더 오묘한 힘을 갖는다. 세계를 인지하는 우리의 감각을 의심케 하는 영리한 구조는 긴 시간 동안 전혀 낡지 않았다.

<강상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