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물 전성시대]시지프스-시간여행 플롯을 짜기 어려운 이유

레이 브래드버리의 단편 ‘천둥소리’(1952)는 공룡시대로 시간여행을 떠난 한 관광객이 실수로 나비를 밟았다가 원래 자기 시간대로 돌아와 완전히 뒤바뀐 세상과 마주하는 이야기다. 타니가와 나가루의 라이트노벨 <스즈미야 하루히의 소실>(2004)에서 주인공은 자신을 제외하곤 주위 사람 모두 신상정보와 기억이 바뀌어버린 대체현실을 다시 원상복귀 시키고자 미래의 자신과 한 시공간에 동시에 존재하지 않으면서 함께 협력한다. 이런 예들은 주제가 무엇이건 타임패러독스를 피하려는 노력을 잘 보여준다.

jtbc 드라마 ‘시지프스’의 한 장면 / jtbc 제공

요즘 한국 드라마에서 시간여행이 낯설지 않다. 그러나 시간여행 플롯을 설득력 있게 짜긴 생각보다 어렵다. 시간여행자가 무슨 짓을 하든 인과율이 흔들리지 않아야 하니까. 평행지구의 다른 시대로 갈아타는 변칙수를 쓰지 않는 한 말이다. 최근 종영한 JTBC의 드라마 <시지프스>는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면 매우 아쉽다. 몇가지만 짚어보자.

1. 한태술(조승우 분)이 타임머신을 개발할 운명이라 치자. 그럼 미래인들이 굳이 개발 이전 시점의 한태술에게 타임머신 설계도를 내놓으라거나 조속한 개발을 강권하는 이유가 뭘까? 미래인 시그마는 자신의 재정지원이 없었다면 타임머신 개발이 불가능했다고 공언한다. 그러나 타임머신이 개발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시그마가 현재로 건너와 투자할 수 있을까?

2. 미래에서 온 시그마의 획책으로 핵폭발이 일어나 한반도 정치경제가 괴멸된다 치자. 그런데 만약 한태술이 타임머신을 개발하지 않는다면? 또는 살해당하거나 자살한다면? 세상이 혼란스러워지는 일을 원천 방지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도 폐허가 된 미래의 한국에 살던 강서해(박신혜 분)가 한태술을 지키려 과거로 떠나는 이유가 무엇일까? 외려 그가 한태술을 암살하면 게임 끝 아닌가? 그러자마자 강서해 역시 해당 시간대에서 사라지겠지만 같은 시간대에 있을 어린시절의 자신은 앞으로 핵폭발을 겪을 일도 엄마가 방사능 피폭으로 죽을 일도 없다. 미래의 아빠도 무법천지의 폭도들에게 총상 입을 일이 없다.

3. 강서해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로 자기 일기장을 내세운다. 일기장은 일찍이 그가 몇번이고 과거로 돌아가 한태술 사건에 개입했다 실패한 증거다. 드라마 중반 이후 강서해는 한태술에게 지난번 왔던 자신은 단속국 직원의 총탄에 죽었으나 이번에는 운명이 살짝 바뀌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미래에서 온 시간여행자가 과거 어느 시점에서 죽었는데 어떻게 또다시 미래에서 같은 인물이 과거로 찾아올 수 있을까? 단일시간선 우주에서는 서로 다른 시간대를 몇번 넘나들건 간에 어디선가 죽어버리면 더 이상 이동이 불가하다. 이미 강서해가 떠난 미래에서 어떻게 또 다른 강서해가 찾아온단 말인가. 이것은 스카이넷이 터미네이터(로봇)를 계속 복제해 과거로 보내는 플롯과는 본질적으로 결이 다르다.

4. 타임머신을 이용하다 시리즈 후반이 되면 특정약물을 체내에 주사해도 시간여행이 가능해진다. 이 경우 육신은 이동 못 하고 의식만 갔다 오지만 그런 일이 화학물질만으로 가능할까?

장르물 전성시대

5. 시그마가 죽는다고 끝일까? 시그마도 강서해처럼 자신이 실패할 것에 대비에 뭔가 단서를 남겼다면 미래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또 다른 자신을 보내지 않을까? 한태술이 막판에 그렇게 했듯이. 그렇다면 드라마는 끊임없는 시간전쟁의 미궁에 빠져든다. 한태술과 강서해는 단지 이번에만 이겼을 뿐이다. '

<고장원 SF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