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물 전성시대]이누야시키 : 히어로 vs 빌런

정의의 사도보다 악당에 더 공감하는 이유는

SF영화 속 슈퍼악당을 부지불식간 심정적으로 지지하게 된다면, 그건 개인의 문제일까? 사회구조적 부조리에서 비롯된 문제일까? 오쿠 히로야의 만화가 원작인 영화 <이누야시키: 히어로 vs 빌런>을 보며 든 생각이다.

영화 <이누야시키 : 히어로 vs 빌런> 포스터 / 조이앤시네마

UFO의 추락으로 두 사람이 비명횡사한다. 머쓱해진 외계인들은 자비를 베푼답시고 되살린다. 하지만 겉만 같지 속은 무시무시한 살상무기가 잔뜩 탑재된 만능 전투로봇이라니. 이 이야기는 엄청난 권능을 우연히 얻은 보통사람이 이를 어찌 쓸지, 그 결과 당사자의 정신세계가 어찌 변할지 묻는 도덕극이다.

한 사람은 형편없는 영업실적에 권고사직 당할 판인 외판사원 이누야시키다. 그는 가족에게 멸시당하면서도 슈퍼파워로 선한 사도가 되려는 고답적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또 한 사람은 딴살림 차린 아빠 탓에 어머니와 가난에 찌들어 사는 고교생 히로다. 그는 울분을 주체 못 해 좌충우돌하다 살상을 남발한다. 급기야 언론의 과도한 취재와 피해자 가족의 압박으로 어머니가 자살하자 히로는 무차별 복수에 나선다. 남의 고통을 안줏거리 삼는 익명의 대중과 오로지 히로의 체포라는 실적에만 연연하는 관료적인 정부 권력에 신물이 나 일본 국민 전원을 학살하겠다고 공언한다.

희한하게도 영화를 보다 최근 ‘인국공 사태’가 떠올랐다. 웬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최근 정부는 장기 경기침체와 부동산값 폭등을 의식해 각종 청년대책을 쏟아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정규직으로 취업할 길이 막막한 젊은이들에게 고액 월세 청년주택 청약자격이나 신혼부부 아파트 청약우선권은 고사하고 실업급여 수령 자체가 그림의 떡이다. 그래선지 사회적 약자였던 히로가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처럼 폭주하며 인간성을 잃어가는 모습은 외려 인간적 절규로 느껴진다. 원작자 눈에 비친 현대 산업사회는 오직 자기밖에 모르는 대중과 누구든 형식 틀에 끼워 맞출 뿐 당사자 사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관료주의 정부로 지탱된다.

이런 세계관은 두 인물의 아이러니한 이름에서도 드러난다. 이누야시키는 ‘집 지키는 개’란 뜻으로, 이 초로의 남자는 가정을 부양하려 무능을 질책하는 나이 어린 직장상사 앞에서 무릎 꿇고 빌지만 정작 가족은 그의 애환을 전혀 이해 못 한다. 그런데도 슈퍼파워머신으로 거듭나자 선행할 기회만 찾는다. 한편 행인들을 보는 족족 저세상으로 보낸 히로는 발음이 영어의 ‘히어로(영웅)’와 닮았다. 히로는 이누야시키처럼 슈퍼맨 흉내를 내는 대신 세상을 심판하겠다고 선언한다. 어차피 고통만 안겨준 세상이니 다 망해버려도 상관없다는 생각이다.

장르물 전성시대

<이누야시키>는 슈퍼히어로보다 슈퍼빌런을 보듬는 묘한 이야기다. 이런 접근방식은 그만큼 세상살이가 혼탁하고 고단하다는 현실을 꼬집는 역설이다. 배트맨이 자경단원치고 호사에 가까운 전투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부친이 물려준 거대한 부(富) 덕분이다. 반면 악당 조커는 고통스러운 현실이 안겨준 트라우마로 머릿속이 가득하다. 조커가 있었기에 배트맨의 이야기는 1세기 넘게 살아남지 않았을까. 정의의 사도보다 악당의 내적 고뇌에 더 공감한다면 분명 문제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일탈을 탓하기 전에 사지로 내몰린 이들에게 인간다운 행복을 추구할 기회를 공정하게 부여하는 것이 우선 아닐까. 인간은 선해질 수도, 악해질 수도 있다. 요는 그 방향을 유도하는 환경이다.

<고장원 SF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