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물 전성시대]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1억엔을 둘러싼 세 가지 사건의 기묘한 결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짐승들’이라는 복수형 제목 그대로 세 명의 인물이 중심이 된다. 아카마쓰 간지는 사우나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중년 가장이다. 그는 치매에 걸린 노모를 모시고 아내와 어렵게 생활하던 중 심야에 사우나를 찾은 한 손님이 현금이 가득 든 보스턴백을 두고 사라지자 이를 두고 갈등한다. 에바토 료스케는 지역 생활안전과 소속 형사로 야쿠자에게 큰 빚을 져 날마다 갖은 협박에 시달리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악화된 건 연인 최영희가 돈을 들고 사라졌기 때문. 마침내 료스케는 살아남기 위해 도주 중인 옛 친구의 돈 1억엔을 강탈하기로 결심한다. 가정주부 쇼다 미나는 남편 몰래 거액의 빚을 진 탓에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남편의 폭력을 묵묵히 감내하는 중이다. 생활비조차 받지 못해 과자공장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다 현재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매춘까지 하게 된 상황. 미나는 성매매를 통해 만난 청년 무토 신야가 자신의 남편을 대신 죽여주겠다고 하자 결국 남편의 무지막지한 학대 끝에 이를 수락한다. 남편의 사망보험금으로 예정된 1억엔은 순전히 덤이었을 뿐이다.

소네 케이스케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한국어판 표지 / 아르테

당연하게도 이들 세 명의 계획은 모두 예정대로 풀리지 않는다. 갑작스레 아내가 입원한 탓에 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돌볼 이를 구하지 않은 이상 간지는 직장에 나갈 수 없다. 이게 빌미가 되어 간지는 하루아침에 해고되고, 점점 생활에 쪼들리자 결국 사우나에 처박아둔 현금 가방을 가져오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일부러 고르고 고른 심야시간대에 찾아갔건만 가장 마주치고 싶지 않은 지배인과 맞닥뜨려 도망치다시피 가방을 들고 나와야만 했다. 료스케 역시 마지막 희망으로 점찍어둔 친구가 나타나지 않아 점차 궁지에 몰린다. 야쿠자들이 점점 목을 죄어오는 가운데 도쿄에서 파견된 형사와 짝을 이뤄 그 친구를 쫓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이고, 도망친 연인 최영희의 것으로 보이는 토막 시신까지 발견되면서 료스케는 살인용의선상에 오를 것을 염려해야 하는 지경에 이른다. 미나의 경우는 더욱 기이하다. 남편을 죽였다는 신야의 전화를 받고 얼떨떨한 것도 잠시, 미나의 남편은 곧 멀쩡한 모습으로 귀가한다. 과연 신야가 죽인 이는 누구란 말인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이들 세 명의 이야기가 하나씩 차례로 교차하면서 결말에 이르기 직전까지도 모두가 독립적인 사건임을 가장한다. 심지어 각각이 탐하는 1억엔 역시 액수는 같을지언정 전혀 상이한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이들 각자의 목적의식과 위기, 시기나 공간은 물론 이를 타개할 방법마저도 전혀 다르게 그려진다. 세 명의 주인공은 각자의 위치에서 그저 각자의 파국을 향할 따름이다. 그렇게 이들 중 단 한 명만이라도 돈을 쟁취하길 바라며 무심코 책장을 넘기다보면 세 사건이 합일되는 기묘한 결말과 맞닥뜨리게 된다.

세 개의 범죄가 교차 전개하며 만들어낸 차별화된 재미만큼이나 종국에 이르러 독자의 허를 찌르는 이 효과는 무척이나 감탄할 만하다. 하나같이 범인(凡人)에 불과한 세 주인공은 처음부터 결코 감내할 수 없었던, 영리한 악인이 승리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비정한 세계의 진리마저 슬그머니 고개를 드니 말이다.

장르물 전성시대

이런 구성은 순전히 문학작품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소설이기에 당연히 시간순서일 거라 생각했던 흐름을 뒤엎는 것도 용이하고,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 이상 호명되는 여러 명칭만으로도 키를 쥔 한 인물을 감추는 것도 가능하다. 현재 이 작품은 전도연·정우성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돼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과연 영화는 미스터리문학 특유의 서술 트릭이자 이 작품의 결정적 한 수를 어떻게 변형하고 적용했을지 무척 궁금하다.

<강상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