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프리뷰]부모님 유골 이장 여행 <뼈의 기행>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기행’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기이한 행동(奇行)’이고, 다른 하나는 ‘여행하는 동안 보고, 듣고, 느끼고 겪은 것을 적은 것(紀行)’이다. 백하룡 작, 최진아 연출의 연극 <뼈의 기행>은 이 두 가지 의미를 중의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일단 이 이야기는 주인공 백준길 할아버지의 상당히 ‘기이한 행동’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막이 오르면 커다란 여행가방 앞에서 준길이 하염없이 배를 기다리고 있다. 얼핏 보기엔 그냥 평범한 여행가방 같지만 사실 그 속에는 해골과 유골이 담긴 과일박스가 들어 있고, 이로 인해 수하물 규정에 걸려 승선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국립극단 제공

사실 여기엔 준길의 기이한 사연이 숨겨져 있다. 어린 시절 일제의 탄압을 피해 만주로 떠나던 중, 가족과 헤어져 홀로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 준길은 인생의 말년에 이르러 평생 벼르던 숙원사업인 ‘유골 이장 대작전’에 착수한다. 임종조차 못 지킨 부모님의 ‘뼈라도 모셔오겠다’는 일념으로 60년 전 헤어진 여동생이 살고 있는 중국 흑룡강성을 찾아가고, 거기서 부모님 유골을 파내 고향인 경북 김천 금릉 선산에 다시 모시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 작품은 양친의 뼈를 품고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준길의 기묘한 행적에 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한편으로 이 작품은 부모님의 뼈를 찾아 먼 여행길을 떠나는 준길이 그 여행길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기록한 ‘뼈의 기행문’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공연의 첫 장면은 암전 속에서 무언가를 서걱서걱 적어 내려가는 소리로 시작하는데, 이번 여행에서 방문한 곳들과 그곳에서 있었던 일을 하나하나 수첩에 기록하고 있는 준길의 손 글씨 소리이다. 여기에 무대를 감싼 3면의 스크린에는 계속하여 준길의 여행루트가 지도 위에 표시되는데, 인천항에서 배를 타고 다롄항에 도착해 다시 하얼빈까지 기차를 타고, 하얼빈에서 흑룡강성까지 굽이굽이 찾아가는 준길의 여정은 60여년 전, 흑룡강성에서 청진으로 내려와 원산, 경성을 거쳐 고향 김천까지 이어진 소년 준길의 귀향길과 대구를 이루며 3000리가 넘는 두 곳 사이의 거리와 60년이 넘는 역사적 시간 차이를 드러낸다.

이 어마어마한 물리적 거리와 시간 차는 단순히 소년 준길과 노인 준길의 여행길을 대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세대 간의 가치관 차이와 민족 간의 몰이해 등 또 다른 심리적 거리감을 만들어낸다. 준길의 여행길에 동행하는 아들 학종은 아버지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미 너무 많은 현실적인 문제들로 지쳐 있는 그에게 “뼈째 가져가겠다”는 준길의 고집은 노망든 노인네의 집착처럼 느껴질 뿐이다. 또한 준길과 학종이 여행길에 만난 여러 조선족(중국동포)들은 친근하고 정다우면서도 서로에 대한 불신과 편견의 벽을 넘을 수 없는 미묘한 거리감을 보여준다.

문화프리뷰

이를 통해 작가와 연출은 과거와 현재가 한 점에서 만나고, 개인의 역사와 비극적인 한국의 근현대사가 서로를 비추면서 이어지는 순간들을 구현해낸다. 6월 16일까지,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

<김주연 연극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