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스크린]트루스 오어 데어-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청춘공포물

<트루스 오어 데어>의 주인공들은 어른들은 신경쓰지 않는 그들의 세계, 스냅챗과 페이스북 메신저를 활용하여 자신들이 걸려든 이 마수의 게임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추적한다.

제목 트루스 오어 데어

원제 Truth or Dare

제작연도 2018

감독 제포 와드로

출연 루시 헤일, 타일러 포시, 바이올렛 빈

상영시간 100분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개봉 2018년 5월 22일

UPI코리아

오랜만이다. 청춘남녀를 주인공으로 한 공포영화. 물론 각 대학 영화과나 독립영화계를 중심으로 꾸준히 제작되어 왔겠지만 전 세계 극장에 걸릴 만큼 대중적으로 알려진 영화는 한 10년 가까이 없었던 것 같다. 얼핏 떠오르는 것이

<스크림>(1996) 시리즈나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무엇을 했는지 알고 있다>(1997) 시리즈 정도. 2000년대에 들어와서도 <데스티네이션>(2000) 시리즈 같은 것이 없진 않았지만, 한동안 뜸했다.

트루스 오어 데어. 진실 혹은 대담. 걸리면 묻는 질문에 진실만 말하거나 아니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 실제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많이 하는 게임이다. 봄방학. 집짓기 봉사활동을 가려고 했던 올리비아(루시 헤일 분)는 멕시코로 놀러 가자는 절친 마키의 유혹에 뜻을 접는다. 멕시코 휴양지에서 마지막 밤, 올리비아는 한 남자를 만난다. 카터라는 이름의 이 남자는 폐쇄된 수도원으로 이들을 초대하는데, 밤 늦은 시각 심심해진 이들은 게임을 하기 시작한다. 그게 트루스 오어 데어 게임.

한국의 진실게임도 마찬가지만, ‘진실만 말하기’를 고르든지 ‘도전!’을 선택하든지 곤란하고 짓궂은 요구를 받게 마련이다. 같이 게임하는 누군가 중 좋아하는 이성이 있냐든가, 커플 사이에 끼어들어 커플 중 이성에게 진한 키스를 하라는 둥. 그냥 장난으로 하는 게임이면 멈추면 그만이건만 영화 속에서 벌어진 이 게임은 주관자가 있었다. 영화의 시놉시스엔 그냥 ‘악령’이라고 번역되어 있는 이 주관자는 게임을 극한으로 몰고 가고 있었다. 멕시코 휴가에서 돌아온 다음에도 이 게임은 끝나지 않았고, 게임의 룰을 지키지 않은 참여자에겐 죽음이라는 벌칙이 기다리고 있다. 악령의 존재는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대신, 직전의 참가자에게 깃들어 흉측하게 비웃는 모습으로 ‘트루스 오어 데어’를 요구하는 형식이다.

‘악령’이 주관한 진실 혹은 대담 게임

청소년 문화가 공포영화의 주된 소재로 사용된 시점은 언제부터였을까. IMDB(인터넷무비데이터베이스)의 ‘10대 공포영화(teen horror movie)’ 카테고리에 올라 있는 59편의 영화 중 맨 앞머리에 있는 영화는 ‘캐리(Carrie, 1976)’다. 돼지피를 뒤집어쓴 왕따 소녀의 처절한 비명과 그녀의 초능력에 아수라장이 되는 졸업파티 장면은 영화를 안 본 사람이라도 한 번쯤 본 클립일 것이다. <트루스 오어 데어>의 주인공들은 어른들은 신경쓰지 않는 그들의 세계, 스냅챗과 페이스북 메신저를 활용하여 자신들이 걸려든 이 마수의 게임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추적한다. 그리고 찾아낸 원인. 문제는 그 멕시코의 수도원이었다. 또 다른 또래그룹의 장난이 악령의 봉인을 풀었고, 그래서 이 지옥 같은 게임이 시작되었다. 이 게임을 멈추려면 수도원으로 다시 가 풀린 봉인을 다시 막아야 한다는 것이 이들이 내린 결론이었다.

리뷰의 시작에서 오랜만이라고 하는 것은 영화가 익숙한 오랜 장르적 전형성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카메라가 포커스를 맞추는 주인공은 올리비아다. 그녀는 주인공이기 때문에 이 게임에서 끝까지 살아남을 것을 관객들은 안다. 술을 한 병 다 마시면서 지붕을 한 바퀴 돌아야 하는 게임을 수행해야 하는 그녀의 여자친구는 아슬아슬한 위기를 겪으면서도 미션을 완료하지만, 하이틴 내지는 스무 살 초반의 청춘남녀에게 금기된 영역(여기서는 술)을 넘어섰기 때문에 ‘악’에 의해 우선순위로 제거된다. 게이 정체성을 가진 청년은 소수자라서, 처방전을 팔아 부수입을 올린 의예과 학생 친구는 부정한 짓을 저질렀기 때문에 우선순위로 스크린에서 퇴장해야 한다. 굳이 영화 리뷰를 전문으로 하는 장르 전문가가 아니라도 느낌으로 아는 공포영화 장르의 규칙성이다. 클리셰가 뚜렷해 너무 상투적이고 진부한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너무 뻔한 장르적 클리셰

악령이 설정한 게임의 규칙-최종적으로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이 목적인-의 틈새를 파고들면서 살아남으려는 주인공들의 몸부림을 보여주는 영화의 플롯도 이미 익숙하다. 바로 <파이널 데스티네이션>(2000)의 설정이다. 엔딩에서 악령의 덫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주인공들의 선택은 또 어떤가. 역시 ‘사다코의 원망’에서 벗어나려고 필사적으로 시도했던 영화 <링>(1998)의 주인공이 취했던 마지막 선택이 떠오를 것이다. 사실 굳이 악령이라는 초자연적 존재를 설정하지 않더라도 이 ‘진실 혹은 대담’ 게임이 모티브로 삼고 있는 인간의 어떤 본성을 건드리는 사이코 드라마를 만들 수 있다. ‘이 게임을 소재로 한 영화가 이전에도 있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영화 보는 내내 떠나지 않았는데, 극장 문을 나선 뒤 검색해보니 <트루스 오어 데어: 죽음의 진실게임>(2012)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집에서 TV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봤었는데, 이 영화에서는 초자연적인 악령의 존재는 개입되지 않는다. 악령이란 인간 본성의 ‘악’에 대한 유비에 불과하므로.

80년대 슬래셔 영화의 ‘괴물’에서 악령으로

<나이트매어> 시리즈의 크리처 프레디 크루거. | 경향신문 자료사진

70∼80년대 하이틴 호러물의 특징은 괴물의 등장이다. 커다란 가위를 들고 사람들을 싹뚝해 버리는 <버닝>(1980)이라든가, 하키 마스크를 쓴 괴인 살인마 제이슨이 등장하는 <13일의 금요일>(1980) 시리즈, 아니면 꿈속에 등장하여 손에 달린 갈퀴로 난자하는 프레디가 주인공인 <나이트매어>

(1984)는 또 어땠나. 흔히 공포영화의 하위장르로 언급되는 슬래셔무비의 주인공은 이들로부터 가학적인 피해를 당하는 젊은이가 아니라 이들 크리처 또는 괴물이었다. <트루스 오어 데어>에서 악령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들 젊은이에게 깃들인다. 그리고 그 악령의 표시, 예고편을 통해 많은 관객들의 화제를 모은 히쭉 웃는 그 얼굴 표정은 한때 필자도 다운로드해 설치한 적이 있는 앱, <헌티드 페이스(haunted face)>에 사진을 넣으면 합성해주던 귀신 얼굴과 꼭 닮았다.

터치스크린

민속학자들이 채록한 괴기목격담들을 읽다보면 “전래의 도깨비나 기이(奇異) 현상은 전기가 들어오면서부터 나타나지 않았다”는 단서가 붙는다. ‘(전기로 대표되는) 근대에 대한 전근대의 복수(revenge)’는 공포담을 해석하는 주요한 도식이었다. 물론 <트루스 오어 데어>의 해석에서도 이와 같은 분석틀은 유효할 수 있다. 하지만 전근대 내지는 되살아난 고래(古來)의 악령이 공포의 원천이라기보다 더 이상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문명이기의 발달 속에서 언제든지 되살아날 수 있는 ‘공포’가 그 원천이지 않을까 싶다. 공포라는 감정은 인류의 진화가 시작된 홍적세 시기부터 축적되어온 원초적 감정이다. 이 감정은 앞으로도 수백 년, 아니 인류가 존재하는 한 없어지지 않을 감정일 것이기 때문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