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물 전성시대]서스펙트-상처 받은 인간과 개, 서로를 보듬다

총소리만 들으면 벌벌 떨고, 각종 통증에 시달리는 사람과 개가 어떻게 서로를 받아들이고, 하나의 무리가 되어 극복해 가는 과정을 <서스펙트>는 보여준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개나 고양이가 늘 함께 있었다. 적을 때는 한 마리, 많을 때는 개 두 마리, 고양이 한 마리 정도가 있었다. 애완동물이라고 했다. 인간의 필요를 위해서 곁에 두는 것이 개라고 일반적으로 생각했다. 일부는 복날에 잡아먹기 위해 개를 키우기도 했다.

<서스펙트> 한국어판 표지 | 오픈하우스

세월이 흘렀다. 이제는 애완동물이 아니라 반려동물이라고 한다. 때마다 예방접종을 하고, 사람 못지않게 생활용품이 필요하다. 고양이를 키우는 이들은 스스로를 집사라고도 부른다. 고양이가 상전이고, 인간은 그를 위해 모든 것을 시중들고 편하게 해주는 존재가 된다. 개와 고양이는 단지 인간의 즐거움과 편리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만의 존재 이유가 있고, 인간과 함께 하는 것은 서로에게 이득이 있기 때문이다. <서스펙트>에 나오는 말처럼 ‘감정은 쌍방향으로 흐르는’ 것이다.

동료와 파트너를 잃은 아픈 기억들

로버트 크레이스는 엘비스 콜과 조 파이크 시리즈로 유명한 범죄소설 작가다. 방송작가로 탁월한 경력을 쌓은 후 소설가에 도전했고, 엘비스 콜을 내세운 <몽키스 레인코트> 이후 탄탄대로를 걷게 되었다. 탐정으로 함께 일하는 콜과 파이크는 성격이 딴판이다.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다니는 콜은 입만 열면 농담이다. 파이크는 대답도 잘 하지 않는 과묵한 성격의 행동파다. 그럼에도 콜과 파이크는 서로를 전적으로 믿는다. 서로 다른 성격의 캐릭터가 좌충우돌하며 하나가 되는 이야기는 스크루볼 코미디와 로맨틱 코미디, 버디 무비 등 익숙하면서도 언제나 흥미로운 소재다.

<서스펙트>는 팀이 되는 개와 인간의 이야기다. 개와 사람 모두 상처 받았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피트와 함께 정탐 및 탐지를 하는 해병견 매기가 프롤로그에 등장한다. 적의 공격을 받은 매기는 두 발의 총알을 맞으면서도 죽은 피트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 스콧 제임스는 파트너인 스테파니 앤더슨과 함께 순찰을 돌다가, 5명의 남자가 벤틀리 승용차에 중화기로 총격을 가하는 상황을 목격한다. 스테파니는 현장에서 사망하고, 스콧은 심각한 부상을 당한다. 보통이라면 은퇴하거나 사무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스콧은 K-9 소대에 지원한다. 그리고 매기를 만나게 된다.

9개월이 지난 후에도 스콧은 심각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고 있다. 파트너를 무참하게 살해한 범인들은 멀쩡하게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을 것이다. 스테파니를 위해서라도 멈출 수는 없다. 스콧에게는 더욱 비참한 기억이 남아있다. 총을 맞고 쓰러진 스테파니를 구하려 했다. 하지만 결국 구하지 못했고, 스테파니는 스콧이 자신을 떠나가는 것으로 오해했다. 매기가 어떻게 부상을 당했는지를 들은 스콧은 말한다. “너는 나보다 더 훌륭한 일을 했어, 아가씨. 너는 네 파트너 곁을 떠나지 않았잖아. 너는 실패하지 않았잖아.”

작가 로버트 크레이스와 그의 개. |로버트 크레이스 페이스북

총소리만 들으면 벌벌 떨고, 각종 통증에 시달리는 사람과 개가 서로를 받아들이고, 하나의 무리가 되어 극복해 가는 과정을 <서스펙트>는 보여준다. 전혀 다른 성격만이 아니라 아예 다른 종인 개와 인간은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개는 사람의 눈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볼 수 있다”고 버드레스는 말했다. 개들은 사람들의 심장에 마음이 끌린다. 진심으로 다가간다면, 진정으로 아껴준다면 개들은 마음을 연다. 그들 자체의 본성이 그렇다. “개들은 우리를 기쁘게 해주거나 우리를 구해주려고 자신들의 할 일을 한다. 그들은 다른 건 갖고 있지 않다. 우리는 그들에게 많은 걸 빚졌다.”

작가가 자신의 개를 생각하며 쓴 소설

로버트 크레이스는 이전에 세상을 뜬 자신의 개를 생각하며 <서스펙트>를 구상했다고 말한다. 인간과 개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그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여 서로를 받아들이고 하나가 되는지를 그려내려 한 것이다. “사람과 개의 관계가 얼마나 깊어질 수 있는지에 감동 받았고, 머릿속에서 장면이 그려져 이 책을 쓸 수밖에 없었다”는 로버트 크레이스의 말은 과장이 아니다. <서스펙트>를 읽으면서 감동하고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개라는 존재가 얼마나 위대한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인간에게 얼마나 위안이 되고, 용기를 주는지 알게 하니까. K-9 부대를 이끄는 릴랜드의 “맙소사, 나는 이 개들이 너무 좋아. 이 훌륭한 동물들이 무척이나 좋다고”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오래전 개와 형사들이 함께 주인공으로 나온 영화들을 봤다. 1989년에 함께 나온 <터너와 후치>와 <케이 나인>. 톰 행크스 주연의 <터너와 후치>는 청결 제일주의 형사 터너가 살인사건을 목격한 개 후치와 함께 생활하면서 겪는 모험을 그린 영화다. <케이 나인>에서는 마약상을 쫓는 형사 둘리가 K-9 마약견 제리와 함께 수사를 벌이게 된다. <서스펙트>와 가까운 쪽은 <케이 나인>이다. 형사와 경찰견이 함께 하면서 겪는 일상과 소동을 그리고 있으니까.

하지만 버디 무비의 공식을 그대로 따르면서 인간과 개를 조합시킨 <터너와 후치> <케이 나인>에 비하면 인간과 개의 관계란 대체 무엇인지를 유려하게 보여주는 <서스펙트>가 한 수 위다. 후루카와 히데오의 소설 <벨카, 짖지 않는가>는 개의 관점에서 인간의 역사를 지켜보려는 시도를 한다. <서스펙트>에서도 매기의 시선으로 스콧과 인간들을 바라보는 장면이 나온다. 동물과 함께 생활해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인간을 바라볼 때, 맑거나 혹은 맹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을 때 그들의 마음에는 어떤 생각들이 담겨 있을지 정말로 궁금하다. 나와 같은 생각일지, 아니면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저 너머의 무엇인지.

결국은 상상일 뿐이다. 언젠가 개나 고양이와 대화할 수 있는 통역기가 나오기 전까지는 미지의 세계다. 동물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개와 고양이는 왜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택한 것일까. 스콧은 단지 인간을 피하고 싶어서,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K-9 소대에 들어갔지만 매기를 만나면서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게 된다. 진정한 관계란 무엇인지, 사랑과 신뢰가 무엇인지 매기와 함께 하면서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장르물 전성시대

<서스펙트>에 쓰인, 경찰견에 대한 이야기들이 모두 사실과 부합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로버트 크레이스는 최대한 사실에 근접하게 쓰려고 노력했다고 말한다. 그것이 팩트인지 아닌지는 크게 중요하지는 않다. 개와 인간이 어떻게 하나의 무리를 만들고 성장하는지를 이토록 감동적으로 그려냈다는 점이 훨씬 더 중요하니까. 그리고 로버트 크레이스의 소설답게 수사과정과 액션 묘사에도 탁월하니까. <서스펙트>는 범죄물의 재미와 개와의 우정을 통한 감동까지 모두 만족시킨다.

<김봉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