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낙점된 히로인 ‘알리시아 비칸데르’는 좀 더 현실적으로 보이는 인물을 연기함으로써 과거와의 차별성을 부각시킨다. 적어도 시종일관 차가운 피의 철인 모습으로 일관하던 기존의 라라에 비해서는 말이다.

워너브라더스 코리아(주)
제목 툼 레이더(Tomb Raider)
제작연도 2018년
제작국 미국
러닝타임 118분
장르 액션/ 모험
감독 로아 우다우그
출연 알리시아 비칸데르, 월튼 고긴스, 오언조 리처드
개봉 2018년 3월 8일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중견 시나리오 작가인 블레이크 스나이더가 집필한 시나리오 작법책 <세이브 더 캣>(Save the Cat!)은 하나의 뚜렷한 목표에만 집중한다. 원론적 이론을 분석하기보다 성공한 흥행작들의 특징을 집요하게 관찰해온 작가가 전하는 성공적 시나리오의 목적은 단 한마디로 요약된다. “팔릴 만한 시나리오를 써라!” 그리 두껍지 않은 한 권의 책 안에는 영화제작사들이 좋아하는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명심해야 할 또는 반드시 피해야 할 항목들이 예시될 만한 유명작품의 제목과 함께 줄줄이 나열된다. 아직 숭고한 예술로서 영화의 가치를 믿는 이들에겐(적어도 작가 본인에게만큼은 이전에 비해 충분한 명성과 경제적 이득을 안겼을) 이 한 권의 책이 얄팍하고 파렴치한 기교 모음에 불과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 영화시장에서 성공하고 싶어하는 상당수의 솔직한 사람들에겐 희미하나마 현실적이고 직관적인 좌표를 제시하는 희망이 될 수도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영화의 제목이자 작자가 시나리오 불변의 법칙의 첫 번째로 꼽는 ‘세이브 더 캣’이란 영화 속 주인공은 초반에 반드시 관객들에게 호감을 얻거나 공감대를 형성할 만한 행동을 해야만 한다는 원칙이다. 예를 들어 곤경에 처한 ‘고양이를 구한다’든가, 어렵게 훔친 음식을 자신보다 더 배고픈 아이들에게 나눠준다든가 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작가의 능력에 따라 예의 노골적인 형태를 피해 이루어질 수도 있다. 블레이크는 이 원칙을 무시해 실패한 영화로 자신 있게 <툼 레이더 2: 판도라의 상자>를 꼽는다.
리부트 붐에 편승한 새로운 부활
원래 비디오 게임에서 선풍적 인기를 얻은 여세를 몰아 스크린까지 진출한 <툼 레이더>는 이미 두 편의 영화가 만들어졌다. 동명의 첫 번째 영화가 2001년, 두 번째 영화 <툼 레이더 2: 판도라의 상자>가 2003년에 공개됐으니 벌써 15년 전이다. 당시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영화의 내용은 까마득히 잊을지언정 여주인공 ‘라라 크로프트’를 연기한 ‘안젤리나 졸리’의 강렬한 인상은 기억할 것이다.
처음으로 돌아가 <세이브 더 캣>의 작가 블레이크는 <툼 레이더 2: 판도라의 상자>에 대한 불만을 이렇게 토로한다. “나는 라라 크로프트라는 주인공이 싫다. 왜? 차갑고 유머감각도 없기 때문이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주장이다. 적어도 앞서 만들어진 영화들은 그랬다. 안젤리나 졸리라는 배우가 지닌 매력과는 별개로 극중의 라라 크로프트는 부각되는 막강한 재력과 뛰어난 운동능력 이상의 인간적 매력은 발산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또 매우 도식적으로 흐르는 이야기의 전개도 유연해 보이지는 않았는데, 이 작품이 컴퓨터 게임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다시 상기하는 것이 이런 문제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어떻든 이제는 점차 열기가 사그라지는 분위기인 영화계 내 리메이크, 리부트 유행의 끝자락에 라라 크로프트가 새롭게 돌아왔다.
초인적 여류 탐험가의 탄생기
자전거 퀵서비스로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는 라라(알리시아 비칸데르 분)는 대기업의 후계자임에도 불구하고 상속을 유보하고 있다. 서류에 사인을 하는 것은 7년 전 실종된 아버지 리처드 크로프트(도미닉 웨스트 분)의 죽음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연히 변호사로부터 아버지가 남긴 퍼즐을 전달 받은 라라는 이를 계기로 아버지가 일본의 작은 무인도로 떠났다는 단서를 발견하게 되고 그의 생존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모험의 길을 나선다.
과거에 묻힌 비밀을 캐내려는 행위는 위험할 뿐 아니라 그에 버금가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은 <툼 레이더> 모든 시리즈를 관통하는 교훈이다. 관객의 기억 저편으로 가라앉은 과거의 영화를 다시 소환해 새롭게 선보이는 일 역시 다르지 않다. 최근 리메이크된 대부분의 영화들이 그랬던 것처럼 <툼 레이더> 역시 요즘 관객들이 중요시하는 여러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노력이 역력하다.
이 중 캐릭터의 변화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데, 새롭게 낙점된 히로인 ‘알리시아 비칸데르’는 좀 더 현실적으로 보이는 인물을 연기함으로써 과거와의 차별성을 부각시킨다. 적어도 시종일관 차가운 피의 철인 모습으로 일관하던 기존의 라라에 비해서는 말이다. 또 내용도 그녀가 초인적 여류 탐험가로 거듭나게 되는 출발을 그리고 있다. 연대기적으로 기존 영화의 프리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변화들은 2013년 선행된 오리지널 게임의 리부트에서 이미 완성된 것들이라고 한다. 결국 이 영화 역시 앞선 두 편과 마찬가지로 게임의 이야기 구조와 인물에 철저히 빚지고 있는 작품인 것이다.
팔색조 매력의 배우, 알리시아 비칸데르
![[터치스크린]톰 레이더 - 좀 더 인간적인 모습, 라라 크로프트](https://img.khan.co.kr/newsmaker/1268/1268_75.jpg)
할리우드 최고의 여전사 배역을 차지한 알리시아 비칸데르는 외모로 강렬한 개성을 뿜어내는 배우는 아니다. 그래서 보통의 관객들이라면 <툼 레이더>의 포스터를 보며 “이 여배우 누구지?”란 생각을 할 만도 하다. 그녀가 출연한 작품 목록을 나열해보면 시대와 규모를 넘나드는 다양한 작품을 섭렵하고 있을 뿐 아니라 매 작품마다 확실한 변신을 이뤄내니 차마 같은 배우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법도 하다. 또 뚜렷한 인상과 개성을 지닌 다른 배우들에 비해 평범한 외모인 이유도 클 것이다.
1988년 스웨덴에서 정신과의사인 아버지와 연극배우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려서 발레리나를 꿈꿨지만 지속된 부상과 통증으로 인해 결국 연기로 전향한다.
공식적인 장편 데뷔작은 2009년 발표된 <퓨어>라는 영화로 이 작품은 부산영화제에서 <순수소녀>란 제목으로 첫 공개되었으며 이를 통해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었다. 이후 벌써 10년 가까이 연기생활을 하며 다수의 영화에 출연했는데 국내에도 이 중 상당수가 소개됐다.
2015년 여성형 인공지능 로봇 에이바 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SF 스릴러 <엑스 마키나>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대니쉬 걸>은 배우로서 그녀의 가치를 극상시킨 운명적 작품들이 되었다.
2016년 출연한 <제이슨 본>에서는 미국 중앙정보국(CIA) 소속 사이버 전문가 헤더 리를 연기하며 좀 더 많은 관객들과 만났고, M L 스테드먼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서정적 멜로드라마 <파도가 지나간 자리>에서는 유산의 아픔을 겪는 이자벨을 연기했는데, 함께 부부로 출연한 마이클 패스벤더와 작년 10월 스페인의 한 섬에서 비밀리에 결혼식을 올리며 실제 부부의 연을 맺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미 완성돼 국내 개봉을 예정하고 있는 영화만 두 편이나 대기하고 있으니 당분간 그녀의 모습을 스크린에서 계속 만나게 될 것이다.
<최원균 무비가이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