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비밀과 거짓말의 저택 가족

펀 홈 - 가족 희비극
앨리슨 벡델 저·이현 역·움직씨·2만5000원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작은 마을에서 사는 소녀 앨리슨은 저택에 살고 있었다. 남들은 그의 집을 저택이라 불렀다. 장의사이자 고등학교 영어교사인 벡델씨, 즉 앨리슨의 아버지는 1867년 지어진 고딕 양식의 목재주택을 1962년 사들인 후, 장장 18년에 걸쳐 보수하고 개조한 끝에 저택이라고 부르지 않을 수 없는 무언가를 만들어내고야 만 것이다. 공들여 으리으리하게 다듬었지만 주위와 어울리지 않는 집, 장의사 가족이 사는 집, 그리고 비밀과 거짓말로 점철되어 있던 집을 그와 주변 사람들은 ‘펀 홈’(Fun home)이라고 불렀다. 장례(funeral)와 웃음(fun)을 이용한 말장난인 셈이다. <펀 홈>은 바로 그 집을 중심으로 동성애자였지만 가족과 친지들을 속여가며 결혼생활을 이어온 남자와 지적이면서도 차가운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는 가운데 자신도 성소수자임을 깨달아가며 아버지와 그가 만든 비극을 이해해가는 딸의 이야기다.

앨리슨의 아버지 브루스 앨런 벡델은 대학에 진학하고 대학원에서 공부를 그만둔 후 군복무를 마쳤다가 유럽으로 여행을 다녀온 그 짧은 기간을 제외하면 평생을 반경 1∼2㎞ 안의 원 속에서 살았다. “아버지처럼 도회적이고 실내장식과 예술에 병적으로 집착하던 사람이 왜 이 조그마한 시골마을을 떠나지 않았는지는 지금도 수수께끼다. 또 뉴욕에서 연기를 배웠던 세련된 엄마가 왜 남편의 친척들과 가까이 부대끼며 살았는지는 더더욱 불가사의다.”(37쪽) 지적인 두 사람이 시골마을에서 가짜 결혼생활을 이어갔다. 저자의 평가는 차갑고 담담하다. “겉으로 보면 아버지는 이상적인 남편이자 완벽한 아버지였다. 하지만 이상적인 남편, 완벽한 아버지란 사람이 과연 10대 후반 소년들과 섹스를 할까? 우리 가족은 완전 엉터리였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 집은 진짜 집이 아니라 박물관처럼 잘 만들어진 모조품이었다고. 그럼에도 우리는 진짜 가족이었고 저택 또한 우리가 진짜로 살았던 집이었다.”(23쪽)

앨리슨은 대학에 진학한 후 스무 살이 되던 해에 본인이 레즈비언임을 밝히는 편지를 부모에게 보냈다. 부모의 반응은 예상 외였다. 어머니는 일단 부정하는 듯했지만 딸이 보낸 회신을 받은 후 전화를 통해 본인이 살아온 가짜 결혼생활에 대해 딸과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그 아버지는 몇 달 후, 정원 일을 하던 중 트럭에 치여 숨을 거둔다. 대외적으로는 사고사로 처리되었지만 앨리슨은 아버지가 자살을 했다고 믿는다. 본인이 커밍아웃을 한 탓에 아버지가 죽은 것일까? 이후 어머니가 이혼을 요구한 탓에 자살한 것일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본인의 아버지를 ‘사회의 편견에 희생당한 불쌍한 소수자’로 치부해 버린다면, “우선 내가 아버지를 비난하는 게 어려워진다. 또 다른 하나, 내 상상이 그야말로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 아버지가 젊은 시절 ‘벽장’ 밖으로 나왔다면, 그래서 어머니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나는 어디에 있게 될까?”(203쪽)

북리뷰

저자는 끝없이 문학작품을 인용하고 비유하면서 동성애, 결혼, 육아, 성장, 정체성 찾기 등 다양한 주제를 240여 페이지 속에 꿰어냈다. 우리 사회가 현재 관통하고 있는 다양한 논쟁들과 궤를 함께 하고 있기도 하다. 말 그대로 현대의 고전인 셈이다. 어머니와의 관계를 담은 차기작 <엄마 맞아?>의 번역 출간 역시 기대하게 되는 이유다.

<노정태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