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는 역시 호러, 영화 말고 게임방송!

여름에 호러 영화나 미스터리 소설을 찾던 사람들이 공포 게임 방송을 찾기 시작했다. 여름을 맞아 오싹함을 즐기고 싶은 시청자들의 요구에 BJ들이 공포 게임 방송을 하는 것이다.

직장인 강모씨(27)는 오후 9시가 되길 기다린다. 자신이 즐겨 찾는 BJ(방송 진행자)가 유튜브에서 오후 9시부터 생방송으로 공포 게임을 시작해서다. <사일런트 힐> <워킹 데드> <바이오 하자드 7> 등 호러 액션 어드벤처 게임을 BJ가 중계를 하면, 그는 해당 채널에 들어가 BJ가 게임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이들 게임에서는 유저들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기괴한 괴물들을 물리치거나 피하면서 미션을 수행한다. 방송 처음에는 BJ 얼굴이 메인에 뜬다. BJ는 채팅방에 들어와 있는 시청자들과 가벼운 대화를 나눈다. 게임이 시작되면 게임 화면이 중심이 되고, BJ와 채팅창은 오른쪽 상단으로 이동한다. BJ가 잔인하고 무서운 장면에 놀라면 시청자들도 깜짝 놀라거나 즐거워한다. 그가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면서 시청자들은 깔깔 웃는다. “여름에 공포 영화나 미스터리 소설을 찾는 것처럼 공포가 주는 쾌감 때문에 게임 방송을 찾는다”는 강씨는 “게임 방송은 영화나 책과 달리 돈이 들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 내가 원할 때 볼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바이오하자드7 : 레지던트 이블」의 한 장면. / 바이오하자드7 공식홈페이지 제공

공포게임 마니아층 두껍고 콘텐츠 풍부

더운 여름에 호러 영화나 미스터리 소설을 찾던 사람들이 공포 게임 방송을 찾기 시작했다. 8월 2일 유튜브에서 ‘공포 게임’을 검색해보면 54만여건의 영상이 뜬다. 2014년 10월 29일부터 유튜브에서 방송을 시작한 공포 게임 전문 BJ ‘푸린’의 방송 누적 조회 수는 2200만건을 돌파했다. 유명 BJ인 ‘대도서관’ ‘대정령’ ‘풍월량’ 등도 여름을 맞아 공포 게임 방송을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게임 BJ들은 최신 발매 게임과 <리그 오브 레전드>, <오버워치>, <피파 온라인> 같은 인기 게임 위주로 방송을 한다. 하지만 여름을 맞아 오싹함을 즐기고 싶은 시청자들의 요구에 BJ들이 공포 게임 방송을 하는 것이다.

BJ ‘대도서관’은 시청자들의 요구로 일본 호러 액션 어드벤처 게임인 「Bathroom」을 7월 25일 방송했다. 그가 게임 속에 등장하는 일본어를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하자, 시청자들이 즉각 번역해 채팅창으로 번역본을 보냈다. 이날 유튜브에서 6000여명. 카카오 TV에서 1500여명의 시청자들이 대도서관의 「Bathroom」방송을 실시간으로 시청했다. 게임 연구자인 강신규 서강대 언론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시청자들은 게임을 보고 BJ를 찾지 않는다. 자기가 즐겨 찾는 BJ에게 자신이 원하는 게임을 요구하여 방송하게 한다. 대도서관이 공포 게임 방송을 한 건 시청자들의 요구에 맞춘 BJ들의 특성이다”라고 말했다.

BJ들이 공포게임을 주제로 방송을 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콘텐츠가 풍부해서다. 공포 게임은 매년 PC와 콘솔(PS/XBOX) 버전으로 출시되고 있다. 고정적인 마니아층이 두껍기 때문이다. 명작 게임들은 리메이크화해 출시되기도 한다. 2001년 PC 게임으로 출시됐던 국산 호러 액션 어드벤처 게임 <화이트 데이>가 대표적이다. <화이트 데이>는 학교에 갇힌 주인공이 학교 괴담 속에 나오는 귀신들을 피해 학교 밖으로 나가야 하는 게임이다. <화이트 데이>는 2009년, 2015년 모바일 게임으로도 출시됐다. 올해 8월 22일에는 PC와 PS4 버전으로 출시될 예정이다. 게임 개발업체인 손노리 관계자는 “<화이트 데이>를 리메이크해 달라는 유저들의 요청이 10여년간 계속됐다. 유저들 요청이 많아 이달 출시되는 <화이트 데이-학교라는 이름의 미궁>의 후속작도 연내 출시를 목표로 개발 중에 있다”고 말했다.

반면 ‘여름 시장의 단골’이었던 국산 공포 영화는 최근 몇 년 새 자취를 감추고 있다. 지난 6월 17일 영화진흥위원회와 김형호 영화시장 분석가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6년까지 국산 공포 영화는 스크린 50개 이상 기준으로 연평균 4편만 개봉했다. 이 가운데 6~8월에 개봉한 작품은 해마다 줄어 지난해에는 <무서운 이야기 3> 1편만 관객을 찾았다. 올 여름도 지난해와 사정이 비슷하다. 허정 감독의 신작 <장산범>만이 8월 17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씨네 21 이용철 영화평론가는 “작품이 좋다면 관객들이 국산 공포 영화를 많이 찾을 것이다. 하지만 연출, 각본, 연기의 질이 갈수록 떨어지니 사람들이 찾질 않는다. 국산 공포 영화는 해외에 비해 상대적으로 도태됐다”고 말했다.

한 유저가 공포게임 방송을 시청 중이다. / 정상빈 인턴기자 제공

혼자 노는 것에 익숙한 세대의 여름놀이

여름철에는 공포를 체감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아진다. 영화관에서 공포 영화를 보거나, 스카이서빙·번지점프 같은 익스트림 스포츠에 참여하는 등 오프라인에서 공포를 체험하려는 사람들이 여름철에는 부쩍 늘게 된다. 하지만 정보·통신의 발달, 한자녀 가정의 증가로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공포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생긴 것이다. 김종갑 건국대 영문과 교수는 “공포 게임 방송에서 느끼는 공포는 일종의 ‘사이버 공포’다. 사람들은 공포가 진짜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공포 속에 자기를 던져 몰입하고 싶어한다. 공포에서 빠져 나올 때 반발적으로 생기는 기쁨과 안도감이 강렬한 쾌감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공포 게임 방송은 게임 도중에도 시청자와 BJ가 실시간으로 채팅을 할 수 있다. 시청자들은 채팅을 하면서 혼자 방송을 보는 게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본다는 느낌을 받는다. 취업준비생 신모씨(30)는 “BJ가 진행하는 공포 게임 방송은 시청자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서 흥미롭다. 무서운 장면을 보고 놀라는 BJ의 반응을 보면 오싹함도 덜하다. 공포 방송의 매력은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혼자서 보고 있지만, 대화창을 보면 내가 집단에 속해 있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공포 게임 방송을 보는 것이 청년만의 ‘여름 놀이문화’라고 분석한다. 송경재 경희대 인류사회재건연구원 교수는 “지금 청년들은 ‘하나만 낳아 잘 키우자’는 산아제한정책을 펴던 시대에 태어났다. 중·장년층은 형제가 많아 집에서도 사회성을 키울 수 있었지만, 독자(獨子)가 많은 청년 세대는 혼자서 노는 것에 익숙하다. 더군다나 공포 게임 방송은 혼자 시청하기에 좋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고립감과 외로움을 쉽게 느낀다. 공포 게임 방송을 보면서 나의 감정을 BJ나 다른 시청자와 나눌 수 있다. 고립된 개인의 탈출구 역할을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포 게임 방송을 시청하는 문화가 청년뿐만 아니라 중·장년층까지 확산됐다는 분석도 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게임은 청소년과 청년만의 문화가 아니다. 중·장년층도 <갤럭시안> <갤러그> 같은 오락실 게임을 즐기던 세대라 게임에 친숙하다. 반복된 삶에 익숙해져 있는 중·장년층에게 공포 게임 방송은 색다른 놀이”라고 분석했다.

<정상빈 인턴기자 literature0907@naver.com>